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섬,

굴업도(掘業島)를 몇해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덕적도(德積島)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굴업도(掘業島)는 덕적도의 "파도막이 섬"으로,

섬의 형태가 사람이 엎드려서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하여 굴업도(掘業島)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며,

"대동지지" 덕적도진조에 “굴압도는 사야곶 서쪽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굴은 굴(屈)자와 오리 압(鴨)자로, 굴압도는 지형이 물위에 구부리고 떠있는 오리의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으며,

1910년경부터는 굴압도가 굴업도(屈業島)로 바뀌었고, 1914년에는 팔 굴(掘)자와 일 업(業)자를 써서 덕적면 굴업리(掘業里)가 되었고..

굴업(掘業)은 땅을 파는 일이 주업이라는 뜻으로 굴업도는 쟁기를 대고 갈만한 농지는 거의 없고,

모두 괭이나 삽 등으로 파서 일구어야하기 때문에 굴업(掘業)이란 지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섬 전체의 경관이 수려하고 굴업도해수욕장은 길이 800m, 폭 40m로 좁지만 모래 색과 입자가 고운 해수욕장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었으며,

"간월재"와 "선자령"과 더불어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굴업도의 "개머리 언덕"은 우리나라 백패킹의 3대 성지이기도 합니다.

 

경관이 서해의 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손꼽히는 굴업도는,

6·25전쟁 전에는 60세대가 살고 있었으나 질병이 만연하고 어획량이 감소하자 모두 덕적도와 인천으로 이주했다가,

6·25전쟁 이후에 다시 거주 했으며 한때 "땅콩섬"으로 불릴 만큼 땅콩 생산량이 많았고,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으나 지금은 어업과 염소 방목이 일부 행해지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육지로 떠났고,

8가구가 남아 민박등에 의존하고 있으며 어업은 거의 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리에 근접한 물때여서 해루질을 해보았으나 물이 탁하여 수중은 거의 불가능하며,

워킹으로 큼직한 소라와 박하지는 볼수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출항하여 배를 갈아 타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라도 많은 이들이 찾으며,

다시가보고 싶은 섬중 하나인 오지의 섬 굴업도(屈業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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