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을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이 도자기와 쌀입니다.

 

그러나 4월에 들면 활짝 꽃피우는 산수유 마을 또한 유명하며,

산수유 마을의 중심에 있는 정자 "육괴정(六槐亭)" 을 찾았습니다.

 

휴일의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백사면 도립리일원으로 가는길은 심한 혼잡이 예상이 되어 차량을 설봉공원에 두고,

공원을 출발하여 이천시내를 돌아서 산수유 축제장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합니다.

 

 

 

 

시골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에다,

수도권에서 비교적 찾기 쉬운곳여서 많은이들이 산수유 축제를 찾았습니다.

 

 

 

 

산수유 축제장임을 알리는,

백사면의 산수유 마을 안내문 입니다.

2016년 4월 1일~3일까지 단 3일간 진행이되며,

이천시 백사면의 도립리-경사리-송말리 일원에서 개최가 됩니다.

 

 

 

 

 

산수유 꽃으로 뒤덮인 마을에 들어서는가 했더니,

 

 

 

 

네모난 작은 연못을 만나게 되고..

육괴정 대문앞에 있는 사각형의 남당이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입니다.

 

기묘사화로 이곳에 은둔한 엄용순이 파서 조성했다고 하며,

모재 김안국(金安國)등 사림파가 도의의 뜻을 강석하고 토론하던 연못으로,

이천의 엣이름인 남천(南川)의 연못이라는 의미의 "남당(南塘)" 입니다.

 

일반적으로 연못을 거느린 정자는 많았지만,

정자의 담장밖에 연못을 파둔 형태는 처음이라 특이했습니다.

 

 

 

 

 

이 정자 앞에 여섯 사람이,

우의를 기리는 뜻으로 느티나무 여섯 그루를 심어 육괴정이라 불렸습니다.

6그루의 나무 중 3그루가 고사하여 나머지 3그루만 살아 있었는데,

고사한 3그루를 대신하여 후손들이 새 느티나무를 다시 심었으며,

처음 심었던 3그루는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에 선비들이 심기 시작한 산수유가 이곳 육괴정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서,

이지역에서는 산수유가 "선비나무" 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육괴정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입니다.

 

 

 

 

외삼문의 정문 안쪽에는,

임진왜란 때 여주의 세종대왕릉인 영릉(英陵)을 지키려다 순절한,

엄용순의 손자 유윤(惟尹)의 "충신정문 편액" 이 걸려 있습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외삼문과 육괴정의 거리가 가까워 눈앞에 바로 들어오며,

 

 

 

 

외삼문의 왼쪽 공간은 창고인듯 보이며,

손잡이가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런히 쌓아둔게 보입니다.

 

 

 

 

작은 안내을 줕여놓아 살펴보니,

교자상(交子床) 이라는 것으로 조상의 묘(墓)에,

시향또는 시제(時享, 時祭)를 지낼때 제물(祭物)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했으며,

제를 올리는 제상의 수(數)많큼 수량이 필요했으므로 여러개가 필요했으며,

교자상의 크기 또는 제물의 양에 따라 2명또는 4명이 한조가 되어,

앞뒤의 손잡이를 이용하여 제물이 흐트러 지지않게 조심스럽게 운반한 도구입니다.

 

 

 

 

육괴정(六槐亭)입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하게 되자,

난을 피하여 도립리로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하였으며,

정면이 9m, 측면이 3.78m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입니다.

 

 

 

 


육괴정(六槐亭)의 현판이구요,

 

 

 

 

화강암을 반듯하게 깍은 주춧돌을 사용하였습니다.

 

 

 

 

정자의 양쪽으로 방을둔 온돌에는,

불을 대었던 흔적이 있는 아궁이의 모습도 있습니다.

 

 

 

 

얼마전 이곳 육괴정에서는,

여섯분의 선비를 모신 제례가 있었나 봅니다.

 

 

 

 

정자의 역사와 다녀간 이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글들로,

"南塘嚴先生六槐亭序", "六槐亭重修記" 등의 현액이 걸려 있습니다.

 

 

 

 

 

온돌방이 있는곳의 마루는 높이를 달리하여 두었고..

 

 

 

 

처음 육괴정은 초당으로 지었다고 하나,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은 팔작집으로 된 본당과,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으로 되어 있어 정자가 아닌 사당의 형태가 되어있습니다.

 

 

 

 

수려한 경치의 강가나,

빼어난 경관을 즐길수있는곳이 아닌곳에 자리잡은 정자로,

은거와 학문탐구와 수양의 목적으로 세워졌슴을 알수가 있습니다.

 

 

 

 

정자에서 내려와,

뒤편으로도 한바퀴 돌아봅니다.

 

 

 

 

당시의 명현인 김안국(金安國)을 비롯하여,

강은(姜濦)·오경(吳慶)·성두문(成斗文)·임내신(任鼐臣) 등 다섯 선비들도 함께 낙향하여,

이 정자에 모여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는데, 이들을 가리켜 괴정육현(槐亭六賢)이라 하였다 합니다.

 

 

 

 

육괴정의 담장을 넘어들어온,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의 모습도 정겹습니다.

 

 

 

 

육괴정(六槐亭)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을 비롯 규정 강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두문 성담령, 남당 엄용순등,

여섯 선비가 모여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각 한 그루씩 모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가져온 글 입니다)

 도립리를 중심으로 일대에는 산수유 1만 7000그루가 있다고 하며,

약 500년전부터 산수유를 심어 왔기에 노거수 산수유 나무가 많이 보입니다.

 

 

 

 

 

산수유꽃을 담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생강나무꽃과 너무 비슷해서 꽃으로는 구분을 하지못하고,

나무가지의 모양이나 나무껍질로 판단할 정도로 두종류의 꽃은 유사합니다.

 

 

 

 

 돌담과 산수유꽃이 어우러진길을 따라가니,

 

 

 

 

 

마을의 낮은 돌담길을 따라,

종이에 소망을 적어 걸어두는 소망터널이 있고,

 

 

 

 

 

"연인의 길" 이라 이름지어진,

돌담길을 따라 바닥에는 무엇인가 깔려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무심코 지나치는 분들도 많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내려다보면 산수유의 씨앗임을 알게 됩니다.

 

 

 

 

 "연인의 길" 옆의 산수유 나무에도,

주렁주렁 많은 소망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수많은 소망들중 하나를 들여다 봅니다.

 

 

 

 

 개나리와 산수유꽃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도 보이구요..

 

 

 

 

 

마을 한켠에서 보이는.

어릴적 시골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하는 병아리와 어미닭의 모습입니다.

 

 

 

 

 산수유꽃을 즐기며 걷다보니,

 

 

 

 

마을옆 한쪽에 마련된,

축제장 가설무대에서의 공연을 즐기는 상춘객들의 모습도 보이고,

 

 

 

 

 많은이들이 산수유꽃 축제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도립리 마을을 한바퀴 돌구서 내려오는길에는,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이들이 산수유꽃을 즐기기위해 이곳을 찾은 모습이며,

 

 

 

 

 

앞만보구서 올라가서 미처보지 못했던,

그리 오래지않아 보이는 사찰의 모습도 산수유꽃과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산수유꽃과 함께 다녀온,

여섯 선비들의 이야기가 있는 이천의 정자 "육괴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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