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의 문화재 탐방에서,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정자, 운흥정(雲興亭)을 찾았습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로 지정된 운흥정(雲興亭)으로,

지리산 골짜기 중 하나인 한천(寒川) 옆 용소(龍沼)를 이루는 경승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천(寒川)을 건너기 전,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하연(河演)과 관련한 유적이 있어 들러 봅니다.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76호로 지정된 "구례 외산리 하연유적비(求禮 外山里 河演遺蹟碑)"로,

비각은 1853년(철종 4) 건립되었고 1870년(고종 7)에 중수 되었으며 정면과 측면이 각 1칸 규모로 팔작지붕 이며,

내부에 1871년 조성한 높이 105㎝·폭 58㎝·두께 19㎝의 "경재 하상공 석애시 이각비(敬齋 河相公 石崖詩移刻碑)"와,

1870년 기록된 중수기(重修記) 등의 편액이 보관 되어 있습니다.

 

 

 

조선초기에  하연(河演)과 용에 얽힌 전설이 있으며 후대에 이를 기록한 비석으로,

운흥정 맞은편에 조선초 영의정에 올랐던 경재(敬齋) 하연(河演, 1376-1453)이 세종4년(1422) 전라도감사로 있을 때,

남원부 중방현사에서 잠을 자는 사이 현몽한 노옹과 잉어, 용에 관한 일화를 새겨 둔 하연유적비(河演遺蹟碑)로,

운흥용소(雲興龍沼) 또는 용견지(龍見地)라 부르고 있습니다.

 

 

 

하연유적비(河演遺蹟碑) 건너편에는 운흥정(雲興亭)이 있어,

한천(寒川)의 소(沼)를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아치형의 다리 용운교를 통하여 건너 갑니다.

 

 

 

다리를 건너며 용견지(龍見地)로 불리는 소(沼)를 내려다 보고,

 

 

 

1926년 이 지역 유지와 선비들이 시사계(詩社契)를 조직하여,

지역 풍속을 아름답게 만들고 시(詩)를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정자인 운흥정(雲興亭)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에 전퇴를 둔 팔작 기와지붕으로 온돌방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마루가 있는 전형적인 호남지방의 정자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자 앞 암반 사이로 흐르는 한천(寒川)은 비가 온지 얼마되지 않은듯 물은 탁한 편이며,

 

 

 

암벽의 편평한 여러곳에서 수많은 암각서를 찾을수 있고,

 

 

 

운흥정(雲興亭)의 현판으로,

앞의 현판은 대나무 그림에 능했던 근대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8~1933)의 초서체 글씨 입니다.

 

 

 

운흥정(雲興亭)은 골짜기의 커다란 암반 위의 일부분에 축대를 쌓고 대지를 형성하여 정자를 얹혔으며,

축대 위에는 따로이 기단을 조성하지 않고 암반위에 주춧돌을 놓고 주변을 흙과 시멘트로 다졌고,

잘 다듬어진 원형의 주춧돌 위에는 다소 가느다란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일반적으로 중층 누각은 기둥을 누(樓) 아래 기둥과 누(樓)위 기둥으로 별개의 부재로 나누어 조립한 것이 통례인데 하나의 부재로 처마 밑까지 올렸으며,

 

 

 

하나의 부재로 처마 밑까지 기둥을 올린것은 누마루가 그다지 높지 않는 까닭일 것이며,

바닥 구성은 좌우측의 툇간은 누마루를 깔았고 중앙은 뒷면 까지 방으로 꾸몄고,

방의 좌우면과 정면은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어 들어서 열개창을 두고 걸쇠를 서까래에 걸어 매달도록 하였습니다.

 

 

 

정자 정면의 문위에도 운흥정(雲興亭)의 현판이 있고,

 

 

 

안쪽 에서는 또다른 운흥정(雲興亭)의 현판을 볼수 있으며,

 

 

 

마루위에는 수많은 기문(記文)과 시문(詩文)들을 볼수 있어 80여개에 달한다고 하며,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정자에 시문(詩文)이 많은 것은 시사계(詩社契)를 위해 지어진 정자여서 인듯 합니다.

 

 

 

기문(記文)과 시문(詩文)들은,

1926년 운흥정 건립내역을 알 수 있는 상량문(上樑文)과 이를 기록한 글인 기문(記文),

그리고 시사계(詩社契) 활동을 볼수 있는 제영문(題詠文) 등에 해당 합니다.

 

 

 

마루 가운데 있는 방도 들여다 봅니다.

 

 

 

방의 삼면이 접어 열수있게 만든 넌출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으로 되어있어 아주 밝은 편이며,

 

 

 

근자에도 운흥정(雲興亭)과 관련한 행사가 있었는지,

태극기와 식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운흥정(雲興亭)의 마루에서 앞을 내어다 봅니다.

 

 

 

정자의 마루위에 올려져 있는 많은 시문(詩文) 가운데,

송전(松田) 이남구(李南九)의 시(詩)를 가져와 봅니다.

落落雲亭物外橫   우뚝 선 운흥정(雲興亭) 속세밖에 가로 놓여 있으니

方壺別業冠南城   방호산속 특별한 정자 호남에서 제일이야 

鶴峰飛下仙人語   학은 날아 내려오는 듯 신선들을 이야기하 듯

龍沼動浮天鼓聲   용소에 떠 움직이는 하늘 북소리라네

 

 

 

정자 아래에는 소(沼)를 이루고 있어 이곳에서 용(龍)을 보았다는 용견지(龍見止)가 전해오고 있으며,

위로는 다리가 있어 건너의 하연유적비(河演遺蹟碑)로 오가기엔 편하지만,

운흥정(雲興亭) 마루에서 보이는 현대식 교량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은 느낌여서 아쉽기만 합니다.

 

 

 

정자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 보다가,

 

 

 

아래의 한천으로 가는 길이 있어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 봅니다.

 

 

 

한천(寒川) 변으로 내려오니 이곳에도 글들이 보여,

 

 

 

바위 여러곳에 암각서가 보이고,

 

 

 

탁해져 있는 용소(龍沼)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역 유지와 선비들의 시사계(詩社契)를 위한 정자로,

마땅히 정자가 있어야할 풍광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1930년에 건립한 정자로 구례군 산동면의 방호정(方壺亭)과 비슷한 시대의 건립과 취지가 같으며,

두곳의 정자가 불과 4km 남짓의 거리에 위치해 있어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데,

정자 주변의 분위기와 정취는 확연히 다른 감흥을 주고 있습니다.

전남 구례의 문화유적 하연유적비(河演遺蹟碑)와 운흥정(雲興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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