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의성으로의 여행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할수도 있는 조문국(召文國)에 대해 알아볼수 있는,

의성 조문국 박물관(召文國 博物館)을 찾았습니다.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에 위치한 조문국 박물관(召文國 博物館)으로,

박물관 앞에는 의성 지역의 대표적 문화재인 국보 제 77호인 의성 탑리리 5층 석탑의 실물 모형으로 세우고,

내부에는 500년 뒤인 2512년에 개봉 예정인 타임캡슐을 보관한 상징 조형물을 세워 두었습니다.

 

 

 

입구에서는 예서체로 돌에 새겨진 "과조문유감(過召文有感)"의 시비가 있어,

조선 후기의 문신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당시 사촌형인 의성현령 허후에게 놀러 왔다가 지은 시(詩) 입니다.

千載召文國(천재조문국)      천년의 세월 저편 조문국이여                            亡墟足悲凉(망허족비량)      망한 옛터 슬프고 처량하여라

繁華不復睹(번화불부도)      번화했던 그 모습은 오간 데 없고                       荒草野花香(황초야화향)      거친 풀밭 들꽃만 향기롭구나

壘壘見古墳(누루견고분)      옛 무덤들 총총하게 늘어섰는데                         濯濯無白楊(탁탁무백양)      벌거벗은 백양은 보이지 않네

田父耕隴上(전부경롱상)      언덕에서 밭을 갈고 있던 농부는                        猶說景德王(유설경덕왕)      아직도 경덕왕을 말하는구나

天地一何悠(천지일하유)      그토록 오랜 세월 흐를 동안에                           終古幾興亡(종고기흥망)      그간의 흥망이 몇 번이었나

物理本無常(물리본무상)      만물 이치는 본래 무상하건만                            人情徒自傷(인정도자상)      인정은 속절없이 슬퍼하누나

感起前古恨(감기전고한)      옛날의 일에 대한 감회 못 이겨                          獨立慨嘆長(독립개탄장)      홀로 서서 오랫동안 탄식하노라

 

 

 

박물관으로 들어가기전,

야외에 있는 전시장을 먼저 돌아 봅니다.

 

 

 

의성 "초전리 지석 묘"인 고인돌 이며,

옛 금성초 조문분교 뒷마당에 있던 지석묘군 1-1호 입니다.

 

 

 

시신(屍身)을 묻기 위해 널길을 통해 무덤방(石室)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돌로 쌓아 만든 무덤인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

굴식 돌방무덤으로도 불리며 삼국시대에 발달한 무덤의 하나로 고구려와 백제, 대가야 등에서 볼수 있으며,

 

 

 

좁은 통로로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에 공간이 있는 형태로,

 

 

 

굴식돌방무덤은 천장돌을 얹은 다음 한쪽의 벽 또는 그 벽의 일부를 열어 바깥으로 통할 수 있게 만든 것인데,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 가족무덤을 만들 때나 여러 차례 주검을 안치할 때 쓰였다고 합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입구로 옵니다.

 

 

 

의성 지역은 고대 국가인 조문국(召文國)이 존재한 지역이며,

박물관이 조성된 인근에 분포하는 260여 기의 고분에서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출토 되어,

조문국 및 의성 지역의 역사와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조사, 수집, 전시, 보존하기 위하여 설립한 박물관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에 상설 전시장, 기획 전시실, 어린이 체험실,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 되었으며,

주로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1,500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가족 합장묘인 대리리 2호분 1차봉토의 주피장자의 인골(복제)이며,

대리리 2호분은 5세기 중반~후반에 축조된 봉토분이며 양장분(兩葬墳)으로 증축분으로,

봉토의 규모는 직경 28m, 높이 7m정도이며 봉토 내에서 매장주체부를 제외하고 8기의 무덤이 조성되었으며,

봉토 주변에서 목곽묘, 적석목곽분 2기의 무덤이 확인 되었습니다.

 

 

 

대리리 2호분 1차봉토의 부곽 출토 인골(복제)이며,

이무던에서 금동제품과 순장의 존재로 보아 무덤 주인은 지배층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매장주체부의 주곽 구조는 경주지역 지배층의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인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의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토기는 대부분 의성양식토기(재지계)로 구성되고 있어 독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문국(召文國)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옛 여성들의 의복을 시대별로 전시해두어,

 

 

 

삼한 시대 여성의 복식이며,

 

 

 

신라의 복식으로,

왕관과 화려한 의복으로 보아,

왕비 또는 여왕의 의복으로 여겨 집니다.

 

 

 

통일신라 여성의 복식이며,

 

 

 

고려시대 여성의 의복이며,

 

 

 

조선시대 여성의 복장 이며,

시대별 여성의 복식은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위주 인듯 합니다.

 

 

 

안쪽에는 시대별 여성의 복식을 걸어두어,

직접 입어볼수 있는 체험을 할수 있도록 해두었고,

 

 

 

효사재 이탁영(李擢英, 1541~1610)이 쓴 일기인 보물 제880호 "정만록(征蠻錄)"으로,

의성군 의성읍 경주 이씨 문중의 소장품과,

1604년(선조 37) 의성현 출신의 문신으로 강원도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이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한 뒤,

글씨·감상문·그림 등을 엮어 작성한 기행문인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17호 "유금강산권 (遊金剛山卷)" 등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실은 의성지역을 줌심으로 시대적 변천사를 살펴 볼수 있는곳으로,

 

 

 

구석시 시대(舊石器時代)의 원시 생활을 표현해 두었고,

 

 

 

움집을 지어 정착을 시작한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로,

 

 

 

식량채집에서 식량생산으로 식량의 지급자족을 위한 생산경제단계에 속하는 시대로,

 

 

 

소규모의 원시 농경과 함께 어로·수렵·채집을 하였으며,

 

 

 

모형과 함께 그림으로 표현해두 알기쉽게 해 두었고,

 

 

 

조그만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보면,

 

 

 

옛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 볼수 있습니다.

 

 

 

김천 송죽리 출토의 "깊은바리토기(深鉢形土器)"로,

토기의 겉면에 빗같은 무늬새기개(施文具)를 이용해 만든 기하학적인 무늬를 배합하여 각종 무늬를 그린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의 복제 토기 입니다.

 

 

 

삼한 시대 여러 유형의 토기를 살필수 있고,

 

 

 

국립 대구박물관 소장의 "철제세잎고리손잡이큰칼" 복제로 고리자루칼은 둥근 고리형태의 손잡이 머리를 가진 칼이며,

고리 3개가 위쪽꽈 좌우에 붙어 삼각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의 손잡이 머리부분이 있는 것을 말하며,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고리자루 칼은 한반도의 경우 B.C. 1세기대부터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학미리 1호 고분 출토의 "은제세잎고리손잡이큰칼"의 복제품으로,

은제 고리 손잡이 큰칼이며 길이는 87.5cm로 현재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품 입니다.

 

 

 

토기와 고지도 등 의성지역과 관련한 여러가지 유구들이 진열되어 있고,

 

 

 

말의 모형을 두고 마제 장식구들을 알기쉽게 해두었습니다.

 

 

 

이번 전시관은 의성지역이 근거지 였던 조문국(召文國)의 무덤양식을 설명해둔 곳으로,

 

 

 

양장분(兩葬墳)으로 증축분을,

그림으로 설명해 두어 이해하기 쉽게 해두었으며,

 

 

 

고분의 형태를 반으로 자른 단면의 모형을 전시해 두어,

무덤의 양식을 알기 쉽게 해두었는데 신라의 무덤양식과 비슷하며,

 

 

 

특히 의성 탑리리 고분은 황남대총과 마찬가지로,

신라의 전형적인 무덤인 돌무지 덧널 무덤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이는 탑리리 고분군을 만든 세력은 이미 신라화한 지방 토착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고대사회 장법인 옹관묘(甕棺墓)로,

우리나라의 남부지역에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오랜 전통의 무덤 양식 중 하나로,

독장, 독무덤 이라고도 하며,

널(棺)로 쓰여지는 독이나 항아리가 1개이면서 넓적한 돌 같은 것으로 뚜껑을 덮은 것은 외독(單甕棺),

항아리나 독 2개가 서로 아가리를 맞대고 뉘인 것은 이음독(合口甕棺)이라 하며,

3개를 이어서 만든 것도 가끔씩 발견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이음독이 가장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밖에도 의성지역의 다양한 토기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이번에는 의성지역 출토의 금속 유물로,

 

 

 

공작새 날개 모양 3개의 입식(立飾)을 가진 "조문국 금동관(召文國金銅冠)"으로,

 

5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전하는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금동관이며,

이 금동관은 신라화한 지방 토착 세력이 신라 왕에게 받은 하사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 새의 깃털 모양으로 만든 세움 장식 세 개를 부착하여 조우형(鳥羽形)이라고 부르며,

신라 지역에서 출토된 예가 거의 없으며 이처럼 깃털 모양의 세움 장식을 부착한 관과 관식은 고구려 지역에서 오히려 더 많이 출토 되었으며,

당시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신라의 수도인 경상북도 경주와 지방인 경상북도 의성의 관계 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탑리 고분 출토의 "금동장식신발" 복제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가로 33.8cm의 크기로 고구려나 백제의 금동신발과는 달리 신라의 금동신발에는 못이 없으며,

1매의 금동판을 투각장식하여 발등을 감싸고 발뒤축은 별도의 금동판으로 감싼 다음 발의 좌우 측 가운데 부분을 못으로 고정 시켰습니다.

 

 

 

탑리 고분 출토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복제품 "새날개모양관장식"으로,

높이 40.1cm의 크기로 생긴 모양이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새날개모양관장식 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조문국의 역사와 옛 의성지역의 발자취를 살필수 있으며,

박물관 인근에 있는 경덕왕릉(景德王陵)과 함께 찾아 볼만한 곳으로,

경북 의성의 조문국 박물관(召文國 博物館) 입니다.

 

박물관 옆에있는 "금성산 고분군과 경덕왕릉"에 관한 내용은 아래에서 들춰 보실수 있습니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조문국 경덕왕릉_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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