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지역의 문화재 탐방에서,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에 있는 "세천정(洗川亭)"을 찾았습니다. 

 

의성군 문화유산 제19로 지정된 세천정(洗川亭)은 단촌면 세촌리의 북쪽 단애(丹厓)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자의 뒤편으로는 산이 앞으로는 미천(眉川)이 흐르고 있습니다.

 

 

 

정자로 들어가기전 세천정(洗川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비각(碑閣)이 있어,

고려말 충신이며 학자인 금산(錦山) 오국화(吳國華)의 "고려징사금산오선생유허비(高麗徵士錦山吳先生遺墟碑)"이며,

 

 

 

비의 크기는 비신(碑身) 폭 64㎝, 높이 172.5㎝, 두께 31.5㎝로,

1918년에 세웠으며,

비석은 비좌(碑座)와 사각형의 리수(螭首)가 있는 형태이며,

비의 전면에는‘고려징사 금산오선생유허비(錦山吳先生遺墟碑)라고 비명(碑銘)이 있습니다.

 

 

 

여말선초의 격변하는 시기에 살았던 인물인,

금산(錦山) 오국화(吳國華)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조선 초엽 세운 정자라고 하나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으며,

정면3칸, 측면1칸 반의 팔작기와집이며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구조 입니다.

 

 

 

세천정(洗川亭) 의 현판이며,

 

 

 

정자는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는데,

전면 퇴주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퇴칸은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으며 주위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웠으며,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 입니다.

 

 

 

정자를 세운 연대는 명시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인주(仁州) 장시원(張始遠)이 쓴 "세천정기(洗川亭記)"에서,

“천지명(川之名) 사불무미안어기간(似不無未安於其間) 연금지오백여년지구(然今之五百餘年之久) 이유불폐자(而猶不廢者) (중략)

시년춘(是年春) 선생후손(先生後孫) 취천상(就川上) 축일정인이편세천(築一亭因以扁洗川)”이라고 한 대목으로 미루어,

오국화(吳國華)가 절의를 지키기 위해 은거한 지 500여년이 되는 1892년에 이 정자를 세웠을 것으로 추즉합니다.

 

 

 

정자의 마루에 오르면 또다른 현판과 기문(記文)들이 있어,

 

 

 

또 하나의 세천정(洗川亭) 현판이며,

 

 

 

후손인 18세손의 세천정(洗川亭) 현판이 있으며,

 

 

 

고려징사금산오선생유허비(高麗徵士錦山吳先生遺墟碑)의 비각(碑閣)을 중수(重修)한 내용의 기문(記文)으로 보이며,

 

 

 

세천정상량문(洗川亭上樑文)의 기문(記文)이며,

고려말 충신이며 학자 오국화(吳國華)는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금산(錦山) 이며,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예의 전서(禮義 典書) 등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경상도(慶尙道) 안렴사(安廉使,지금의 도지사)가 되어 의성 지역을 순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스승 정몽주가 이성계(李成桂) 일파를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는 비보(悲報)를 듣고,

사흘동안 통곡 하다가 관인(官印)을 땅에 묻고 의성 단촌 어봉산에 은거하게 되어 해주 오씨의 의성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개국한 후 오국화(吳國華)에게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매번 거절 하였고,

전령이 왕의 교지를 전하기만 하면 단촌 앞 맑은 물에 귀를 씻었다고 전하는데,

사람들은 그가 귀를 씻은 냇물을 세이천(洗耳川)이라 불렀다고 전하며 지금의 단촌면 세촌리의 이름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2개의 세천정기(洗川亭記)의 편액을 볼수 있습니다.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정자의 마루에서 오른쪽 방을 들여다 봅니다.

바슷한 색으로 끼워 두었지만 마루에서 방으로 통하는 플라스틱의 문이 눈에 거슬립니다.

 

 

 

아담한 크기의 방은 밝은 편이며,

 

 

 

왼쪽 방의 마루쪽의 문은 그나마 제 문짝인듯 하며,

 

 

 

왼쪽의 방도 비슷한 구조와 크기이며,

 

 

 

하천이 굽이치는 모양이 눈썹 모양과 같다고 하여 미천(眉川)이라 하는 냇물을 바라보면서,

오국화(吳國華)가 남긴 글들을 1935년 그의 후손인 학수(鶴洙) 등이 편집, 간행한 금산실기(錦山實紀)에 있으며,

우곡서원(愚谷書院)의 후손들이 세운 유시비(遺詩碑) 칠언율시(七言律詩)를 가져와 봅니다.

樹含紅色繡紋如    나무는 붉은빛을 머금은 듯 하건마는

可惜丹心日送虛    나의 일편단심은 날로 허송함이 애석하구나.

世上深情樽有酒    세상에 깊은 정을 풀기에는 술독에 술이 있고

性中近思道遺書    내 마음속에 지닌 상념은 도덕의 글이 끼쳐 있네.

天然地氣溪聲潤    자연의 땅기운에 개울물소리 윤택한데

山抱韻頭影子餘    산은 시흥을 감싸 안고 그림자를 드리운다.

莫說淸風無別洞    청풍이 다른 골짜기에는 없다고 말하지 말게나

詩人到此藥幽居    시인은 여기에 이르러 그윽하고 한적한 생활을 즐긴다

 

 

 

세천정(洗川亭) 을 돌아보고 아쉬운 점은,

떨어져 나간 문짝이나 창틀을 플라스틱으로 대체 해두어 보기에 흉하며,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둔 흔적이 역력한데,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곳을 관리하지 않으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는듯 합니다.

 

 

 

의성지역에는 오국화(吳國華)를 추모하는 시설들이 이곳 외에도 여러군데 남아 있어,

의성읍 업리의 우곡마을에는 그의 사단(祀壇)과 우곡재(愚谷齋), 우곡서당(愚谷書堂), 신도비각(神道碑閣) 등이 있으며,

의성읍에는 금운정(錦雲亭)이 있습니다.

고려 말의 충신 오국화(吳國華)를 뒤돌아볼수 있는 곳으로,

경북 의성의 고려징사금산오선생유허비(高麗徵士錦山吳先生遺墟碑)와 세천정(洗川亭) 방문기 입니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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