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에 있는 조선후기의 정자,

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을 찾았습니다.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508호로 지정된 경체정(景棣亭)으로,

문이 닫혀있어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낮은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경체정(景棣亭)은 예조좌랑과 승지를 지낸 법전강씨(法田姜氏)의 강윤(姜潤)과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완(姜浣) 가의대부를 지낸 강한(姜瀚) 3형제의 우애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인 유하(柳下) 강태중(姜泰重, 1778∼1862)이 1858년 철종 9년)에 지은 정자이며,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정사각형의 구조로  팔작지붕이며,

 

 

 

정자 전면의 오른쪽 현판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썻으며 2006년 도난 당하였다고 하는데,

추사(秋史)가 유하(柳下) 강태중(姜泰重)과 친분이 두터웠고 각화사 태백산 사고지 점고 방문시 법전에서 머물렀다가 써준 것이라 짐작하며,

 

 

 

왼쪽에는 고종때 영의정을 지냈던 김병국(金炳國)의 글씨로 전하는 현판이 있고,

 

 

 

정자의 동쪽 옆면에서도 2개의 현판을 볼수 있습니다.

 

 

 

경체정(景棣亭)은 뒤편에 낮은 산을 두고 앞으로는 작은 내가 흐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단아한 선비 같은 느낌을 풍겨주는 정자로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보아야만 하기에 아쉽기도 합니다,

 

 

 

정자의 마루아레에 수레같아 보이는 물건이 있어 들여다 보니,

 

 

 

마루 밑에 있는 외바퀴 손수레인 초헌(軺軒)으로,

요즘엔 거의보기 힘든 귀한 물건으로,

 

 

 

설명에 도움을 위해 옛 사진을 가져와 봅니다.

종2품(從二品) 이상의 벼슬아치가 탄 외바퀴 수레인 초헌(軺軒)으로,

보통 여섯 사람에서 아홉 사람 정도가 한조를 이루어 움직이도록 되어 있어 비효율적인 탈것으로 권위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정자의 누마루 부분은 기둥을 세워 받쳤고 방을 들인 뒤편은 흙으로 쌓았고,

그 한편에 아궁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온돌을 놓은 듯 하며,

후면에는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는 마루을 깔았는데,

대청의 주위에는 각 칸마다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어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으며,

주위에는 평난간(平欄干)을 둘렀고,

전면 좌측에는 사주문을 세워 정자로 출입케 하였으며 앞에는 연못을 조성하였습니다.

 

 

 

정자 앞으로 법전천이 흐르고 너머로 법전 마을이 들어 옵니다.

 

 

 

경체정(景棣亭)의 뒷면을 들여다 보는것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그리 큰 규모의 정자도 아니며 단아한 선비의 모습으로 자리하였으며,

요즘에는 보기힘든 초헌(軺軒)을 볼수 있었으나,

안으로 들어가 들여다 볼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던 곳으로,

경북 봉화의 정자 경체정(景棣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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