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누정,

나주 쌍계정(羅州 雙溪亭)을 찾았습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쌍계정(雙溪亭)으로,

 

 

 

쌍계정(雙溪亭)은 1280년에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전고(典故)에 밝아 세자이사(世子貳師)와 세자사(世子師) 등을 역임하였던,

문정공 정가신(鄭可臣,?~1298)이 당시 호남의 현사(賢士)로 알려진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 ?~1290),

문현공(文顯公) 윤보(尹珤) 세 사람이 함께 지어 강학처(講學處)로 사용 하였다고 하며 이로 인하여 삼현당(三賢堂)이라고도 불렀으며,

그후 조선 세조 때부터 선조 때까지 정서(鄭鋤), 신숙주(申叔舟), 신말주(申末舟), 죽오당(竹梧當), 김건(金鍵), 홍천경(洪千璟) 등,

당시 대표적인 학자들의 학문 연구 장소로도 이용 되었고,

또한 쌍계정은 규약을 정하여 미풍양속을 지키도록 행하는 계회(契會)와 시회(詩會)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700년 역사의 정자 옆에는 410년을 넘긴 노거수 푸조나무의 늠름한 모습을 볼수 있으며,

 

 

 

쌍계정(雙溪亭)은 방이 없는 대청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기둥을 세웠으며 포작(包作)이나 주두(柱頭) 없이 보와 장혀 도리로 짜 맞추었습니다.

 

 

 

정자에는 2개의 쌍계정(雙溪亭)현판이 있어,

마루 앞의 현판이며 현판 2개의 글씨는 모두 한석봉(韓石峯)으로 더 많이 알려진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글씨라 하며,

쌍계정(雙溪亭)의 이름은 정자의 좌우로 계곡이 흐르기 때문에 붙여 졌다고 합니다,

 

 

 

자연석 초석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마루는 낮게둔 모습이며,

 

 

 

전면에 있는 디딤돌을 통하여 마루로 올라 봅니다.

 

 

 

마루는 우물마루이며 방은 들이지 않고 사방이 열려 있으며,

 

 

 

7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쌍계정(雙溪亭)은 여러번에 걸친 중수를 거듭하여 많은 변모를 가져오기는 하였으나,

고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박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루 위에서 볼수 있는 또 하나의 쌍계정(雙溪亭) 현판으로,

전면에 있는 현판과 같이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서체(書體)를 확립했던 조선시대 서예계에서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의 글씨 이며,

 

 

 

사성강당(四姓講堂)의 현판도 볼수 있어,

정가신(鄭可臣)의 후손인 나주정씨, 정서(鄭鋤)의 후손인 하동정씨, 김건(金鍵)의 후손인 서흥(瑞興)김씨,

홍천영의 후손 풍산홍씨 등의 사성(四姓)이 이 정자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어,

1957년에는 이들이 뜻을 합하여 "사성강당(四姓講堂)"이라는 현판을 걸었습니다.

 

 

 

쌍계정(雙溪亭)의 마루에서는 기문(記文)과 정가신, 정서, 홍천경이 지은 시문(詩文)을 볼수 있으며, 

정자의 700년의 역사를 대변해 주듯 쌍계정중수기(雙溪亭重修記)의 편액만 5기가 있습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앞을 내려다 보면,

마을로 들어 오는 입구쪽의 전경이며..

 

 

 

정자 주위에는 410여년이 넘은  푸조나무와,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이 풍치있게 어울려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며,

 

 

 

쌍계정(雙溪亭)과 관련한 조선 전기의 문인, 도사(都事) 성진(成晋)의 시(詩)를 가져 옵니다.

天作雙溪水亭輸    쌍계라는 이 정자를 하늘에서 만들어내고

萬㹂風雨晴殘照    만학천봉 맑은 바람 저녁 노을 붉어지니

外孤鷺群割震紅    붉은 노을 헤치면서 기러기떼 날아가네

 

 

 

쌍계정(雙溪亭)의 건립을 주도 했던 고려 충열왕(1274~1308년) 때의 중신 문정공 정가신(鄭可臣,?~1298)은,

나주 동강면 시중동(지금의 인동리)에서 태어나 금안동에서 자랐으며, 

어려서 승려 천기를 따라 상경하여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밀직학사, 정당문학 등을 지냈고,

충열왕 16년(1290) 사유(師儒)로 왕세자를 따라 원나라에 다녀왔고 뒤에 참의, 찬성사를 지냈으며,

문장에 능하고 청렴결백하였으며 당시 외국으로 나가는 문서가 모두 그의 손에서 이루워졌다고 하며 저서로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이 전합니다.

 

 

 

쌍계정(雙溪亭) 뒷편의 노거수 푸조나무 아래에는 낮은 우물이 보여,

 

 

 

우물을 열어보니 아직도 맑은 물이 고여 있습니다.

 

 

 

"사성강당(四姓講堂)"의 현판을 내걸어,

성씨가 서로다른 사성(四姓)의 집안에서 서로 협약하여 관리하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의 자랑이며 훈민정음 창제 일등 공신으로,

조선 초 대학자인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1417~1475년)가 태어나 자란 신숙주 생가도 인근에 있어 함께 찾아볼만한 곳으로,

전남 나주의 정자 문화재 "쌍계정(羅州 雙溪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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