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봉화의 문화재 탐방에서,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에 있는 사덕정(俟德亭), 영모당(永慕堂)을 찾았습니다.

 

사덕정(俟德亭)과 영모당(永慕堂)은,

전주이씨의 풍정촌(楓井村) 종택인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에서 찾을수 있으며,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은 경기도 양주에 있던것을 이곳으로 이거하여 개축 하였다고 하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깔끔하게 단장되어 정리된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으로,

 

 

 

종택(宗宅)에는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사덕정(俟德亭)과 영모당(永慕堂)의 관람의 양해를 구했더니 혼쾌히 승락을 주십니다.

 

 

 

본채로 들어가는 입구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6호로 지정된 영모당(永慕堂)이 자리해 있어,

 

 

 

영모당(永慕堂)은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인 호산(毫山) 이장(李奬)이 1730년에 건립한 제청(祭廳)으로 고종24년(1887)에 중수 하였으며,

재까지 이영기(李榮基)의 제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모당(永慕堂)의 현판이며,

 

 

 

영모당(永慕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으로,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의 구조이며,

 

 

 

양쪽의 방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운 헌함(軒檻)을 설치 하였습니다.

 

 

 

정면에서 보아 왼쪽방 위에는 추원재(追遠齋)의 현판이 있고,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의 오른쪽의 방으로,

양쪽의 방 모두 마루쪽으로는 넌출문인 3짝의 분합문(分閤門)을 기둥을 중간에 두고 2개씩 배치 하였으며,

 

 

 

오른쪽의 방 입구에는 추만구택(秋巒舊宅)의 현판이 올려져 있습니다.

 

 

 

영모당(永慕堂)을 세운 이장(李奬,1765~1797)의 자는 주여(舟汝) 호는 호산(毫山)이며 봉화 풍정 출신으로,

1778년(정조 2)에 19세에 향시(鄕試)에 수석 하였고 1788년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1789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전적(典籍)·직강(直講) 등을 역임 하였고,

전라도 도사로서 춘추관 기주관을 겸임한 호산의 글은 명백하여 조리가 있었고 시도 매우 격조와 율격을 갖추었다고 하며,

성품이 온순하고 청렴결백 하였으며 도량이 남달리 넒어서 매사에 급박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호산문집" 2권 4책이 있습니다.

 

 

 

영모당의 동쪽에는 지은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사당이 있으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 정도의 규모로 홑처마의 맞배지붕의 구조이며,

 

 

 

사당에서 나와 사덕정(俟德亭)을 보기위해,

들어왔던 동편의 솟을대문 옆에 있는 협문으로 갑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49호 사덕정(俟德亭)으로,

정자는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1583∼1661)가 수덕(修德)과 후학배양(後學培養)을 위해,

1641년에 건립(建立)하였으며 1863년과 1928년 중수(重修) 하였습니다.

 

 

 

사덕정(俟德亭)의 현판으로 "덕있는 자를 기다리는 정자"라는 의미라 하며,

사덕(俟德)은 덕을 기다리는 선비의 정성과 공부의 자세와 목적을 분명히 하고저하는 정신의 표상 입니다.

 

 

 

정자의 기둥은 전면(前面) 어간(御間)외 2본(本)만 원주(圓柱)이고 나머지는 각주(角柱)를 사용 하였고,

 평면은 정면(正面) 1간, 측면(側面) 1간 규모의 온돌방(溫突房)을 중심으로 좌, 우에 각 1간 규모(規模)의 마루방을 두었으며,

전면(前面)의 반간(半間)은 퇴간(退間)으로 꾸몄으며,

 

 

 

소로 수장을 한 무익공(無翼工) 집이며,

가구(架構)는 5량간(五樑間)이나 온돌방의 천정을 고미 반자로하여 마루방의 천정을 연등천정에 우물반자로 마감하였습니다.

 

 

 

1칸 규모의 마루방의 모습으로,

마루와 전면 모두 마루나 방 앞에 설치하여 접어 열 수 있게 만든 큰 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고,

 

 

 

가운데 있는 온돌방의 마루쪽은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고,

뒤편은 작은 문과 윗쪽에 벽장을 두었으며,

 

 

 

마루에서 보이는 풍경으로,

사덕정(俟德亭)의 바로 앞에는 연꽃을 심은 연못이 있습니다.

 

 

 

정자의 주인이자 전주이씨 입향조인 이영기(李榮基:1583~1661)의 자는 광선(光先). 호는 추만(秋巒)으로,

한산군 이정(李挺)의 4대손으로 이모를 따라 풍기 외가에서 생활하던 중 닭실마을 권벌의 증손녀이자 군자감정 권래(權來)의 딸에게 장가 들었으며,

그로인해 많은 재물을 얻게 되어 풍정촌(楓井村: 현 법전면 풍정리)에 전거(奠居)하게 되었다고하며,

류영경(柳永慶)이 추천하여 관직에 출사케 했으나 사양하였고 병자호란 때 의병참모가 되어 활약하였으며 통정대부ㆍ승정원 좌승지에 증직 되었습니다.

 

 

 

봉화 풍정리의 전주이씨 입향조인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와,

선조를 기려 제사(祭舍)를 세운 호산(毫山) 이장(李奬)의 행적을 돌아 볼수 있으며,

탐방에 혼쾌히 열어보여 주신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의 인심을 엿볼수 있었던 곳으로,

경북 봉화의 정자 사덕정(俟德亭)과 제사(祭舍) 영모당(永慕堂)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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