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구미에서 생활할때 가보았던곳으로,

약 10 여년 전에 가보았던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마침 70주년을 맞는 광복절 여서인지,

주차장에서 보이는 생가의 입구에는 큰나무에 온통 태극기로 장식이 되어있습니다.

 

 

 

 

잠시 잊고지냈던것을 일깨워 줍니다.

광복절 하면 잊을수 없는것이 광복절 기념식에서의,

육영수 여사의 서거가 있었슴을 현수막이 알려 줍니다.

 

 

 

 

생가로 향하는길 입구에

새마을 운동을 상징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근대사의 한획을 긋는 커다란 일이 있다면 새마을운동이 빠질수가 없을것입니다.

새마을 운동은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농촌의 현대화를 위해 시작되어 범국가적으로 시행된 운동으로,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며

1970년에 경북 청도에서 시범적으로 시작이 되어,

농촌 운동으로 국한되었다가 1975년에 와서는 도시와 공장으로도 확대 실시가된 범국민 운동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선진국대열에 꼭 진입해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강하게 심어준,

정부주도하의 성공한 국민적 근대화 운동입니다.

 

 

 

 

 

휴일을 맞아,

많은이들이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이된 박정희 생가를 찾았습니다.

 

 

 

 

이 곳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박성빈 공과 백남이 여사의 5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나서,

구미초등학교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고 하며,

 

생가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옛날 녹녹치 않았던 살림임을,

가마솥과 디딜방아에서 일부를 알수가 있습니다.

 

 

 

 

농사도구를 보관하는 곳인듯 합니다.

쟁기와 탈곡기, 괭이와 삽의 모습이 보입니다.

 

 

 

 

생가에는 753.7㎡(228평)의 대지에,

생가, 안채, 분향소, 관리사 등 4동의 건물이 있고,

1964년 초가인 안채건물을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하여 주거 및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1979년 박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응접실을 분향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생가 건물 중 초가는 원상태로 보존되고 있으며 유족과 구미시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가옆의 산길쪽으로는,

물을 길을수있는 우물이 있어서,

수동 펌프로 물을 올릴수 있는 체험을 해볼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 5대에서 9대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모신 영정으로,

이곳을 찾으신 분들은 분향을 하실수가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물터에서 보이는 생가쪽으로의 모습입니다.

 

 

 

 

생가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왼편으로는 깔끔하게 정비된 소공원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다녀 왔을때보다,

더 깔끔하고 정비가 잘되어진 생가와 주변의 모습입니다.

 

 

 

 

낙동강 건너의,

동락공원쪽에서 바라본 금오산의 모습입니다.

굴뚝위의 희미하게 나타나는 능선의 모양이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구미 인근지역의 사람들은 그형상을 두고 박정희 대통령으로 인식하는 이가 많은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참고로 금오산은 풍수적으로,

선산 방향에서 바라보면 마치 붓의 형상으로 보인다고 하여,

문필봉으로 인식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선산지역에서 이름난 학자가 많이 배출이 되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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