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칠곡의 문화재 탐방에서,

칠곡의 정자 세심정(洗心亭)을 찾았습니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심천리 164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세심정(洗心亭)으로,

세심정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찾을수 있어 경남 산청의 세심정과 경기도 용인과 양평에 세심정이 있으며,

전북 완주의 세심정과 충북 청주에도 세심정 등이 있으며 사찰 에서도 볼수있습니다.

 

 

 

세심정(洗心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표지석이 있고,

 

 

 

정자 주위에는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방형으로 담을 쌓았고,

일각문은 열려있어 들어올수 있으며,

 

 

 

개울에 면한 얕은 언덕에 자리잡은 세심정(洗心亭)은,

조선 중종 때 구례현감(求禮縣監)을 지냈던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인부(李仁符)가,

임오사화를 직면한 후 관직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유상(遊賞)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병란으로 자손들이 흩어지고 정자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광주이씨 후손들이 일제강점기 1936년 중건(重建)하였고,

1936년에 다시 지은 사실은 종도리 장여 밑면에 적어 놓은 “병자(丙子) 윤3월 초6일 유시수주상량(酉時竪柱上樑)”이란 상량묵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정면 4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정자 세심정(洗心亭)은,

돌을 쌓아 대지를 조성하고 개울을 향해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정면 4칸의 전후툇집으로,

측면 가운데 칸 앞뒤에 툇간이 부가되어 있으며,

평면은 중앙에 넓은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으로,

대청과 좌측 온돌방 앞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를 두어 넓은 공간을 확보했으며 좌측방 뒤쪽에는 반침을 시설했고 대청 뒤에도 좁은 마루를 두었으며,

 

 

 

우측 온돌방은 2칸통의 큰방으로 방 뒤에는 반침을 두고 앞쪽과 우측면에는 쪽마루를 둘렀고,

구조는 간략한 3량가의 장혀수장집으로 막돌기단 위에 다듬은 초석 또는 막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정면 원주의 초석은 사암계의 다듬은 돌을 사용 하였습니다.

 

 

 

대청마루 앞에 있는 디딤돌을 통해 마루로 올라 봅니다.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중앙에 있는 4칸의 대청은 우물 마루를 깔아 두었으며,

목재에는 니스 칠을 해둔듯 하고,

 

 

 

마루 안쪽에는 세심정(洗心亭)의 현판이 있어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의미로 보이며,

 

 

 

정자의 기둥은 정면과 마루에만 원주를 사용하고 그밖에는 모두 각주를 사용했으며,

기둥은 가늘고 기둥머리를 보 밑에 파 넣어 결구 하였고,

온돌방의 창은 여닫이 띠살창만 시설한 홑창이며 대청 뒤에는 두 짝의 울거미 널문을 달았으며

마루와 온돌방 사이에는 키 큰 두 짝 또는 외짝의 띠살창을 달았으며 외벽은 회벽으로 마감 했습니다.

 

 

 

정자의 마루에는 별다른 편액없이 탁본으로 보이는 액자가 있고,

 

 

 

이인부(李仁符)의 후손이 남긴 세심정기(洗心亭記)의 기문(記文) 편액이 있으며,

 

 

 

쪽마루를 통하여 들어가는 문위에는 아주작은 창이 나있어,

조선말기의 양식을 찾을수 있으며,

 

 

 

온돌방의 천정은 합판으로 반자를 해두었고,

방은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으며 도구들이 보여,

 

 

 

세심정(洗心亭)은 화수회, 묘제(墓祭), 청년회 모임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좌우 온돌방은 묘제 때 재숙소(齋宿所)로도 쓰이고,

묘제 때 좌측 온돌방은 제수(祭需)를 진설하는 방으로 사용되며 제기는 벽장에 보관 한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무신 이인부(李仁符)의 본관(本貫)은 광주(廣州) 자는 원지(元之)로,

1519년(중종 14)에 현량과(賢良科)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벼슬은 현감에 이르렀으며,

구례현감에 부임하여 재임 때 임오사화가 일어나 우천공과 종백(從伯) 이영부(李英符) 등이 하옥되고,

여러 문신들이 화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통을 참지 못하고 사퇴하고 귀향하여 세심정(洗心亭)을 짓고,

낙동강과 금호강이 한눈에 보이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건령산 중턱에 금락정(琴樂亭)을 세워,

찾아오는 벗들과 시와 글로 어지러운 세상을 달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내려와 둘러보니 마을의 어르신들께선 낮선방문객이 궁굼 하신지 들여다 봅니다.

 

 

 

어릴적 어머님 고향이 가꾸운곳 이셔서 들렀던 기억이 있는데,

산으로 막혀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 였었는데,

아직도 한적한 곳이지만 산을 넘는 길이나고 아랫쪽에는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

세월의 흐름으로 옛 정취는 반감된 느낌입니다.

 

 

 

임오사화가 일어나 관직을 버리고 은거와 후학을 위해,

금낙정(琴洛亭)과 세심정(洗心亭)을 지어 유상(遊賞) 하였던 곳으로,

당시의 금낙정은 산불로 인하여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세심정만이 남아 이인부(李仁符)의 유허가 전하는 곳으로,

경북 칠곡의 마음을 씻는 정자, 세심정(洗心亭)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