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에서 열리고 있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인 대한콜랙숀을 들여다 봅니다. 

 

간송(澗松)이 쌓아올린 주요 소장품과 간송의 삶과 더불어 돌아보는 "대한콜랙숀"은,

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2019.01.04 ~ 2019.03.31 까지 열리고 있으며,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은,

간송(澗松)이 보물과 국보를 구하기 위해 보낸 과정과 사연들을 소개하며,

수집가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 헌신한 그의 이야기들이 간송의 수장품들과 함께 들여다 볼수 있으며,

사진은 핸드폰 카메라는 촬영할수 있으나 일반 카메라는 쓸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 자는 천뢰(天賚),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로,

1906년 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졸업 했으며,

문화재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과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고 하며,

일제강점기 때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준 높은 안목으로 고서화와 골동품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 하였는데,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골동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한편,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북단장 내에 개설하여 서화뿐만 아니라 석탑·석불·불도 등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하는 데 힘썼으며,

그의 소장품은 대부분 국보 및 보물급의 문화재로,

김정희·신윤복·김홍도·장승업 등의 회화 작품과 서예 및 자기류·불상·석불·서적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는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여 육영사업에 힘썼고 8·15해방 후 문화재보존위원으로 고적 보존에 주력 했으며,

1960년 고고미술동인회를 결성하고 동인지 고고미술(考古美術) 발간에 참여 하였고 1962년 향년 57세의 나이로 작고 하였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이,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 되었으며1966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 되었습니다.

 

 

 

간송(澗松)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고미술 경매를 전담한 "경성미술구락부"에서도 꾸준히 문화재를 구입 하였는데,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구입한 국보 제294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추사 김정희의 글씨 "침계"(보물 1980호) 등과 함께,

당시 제작된 경매에 관한 도록들을 전시해 두었고,

 

 

 

"대한콜랙숀"은 간송(澗松)이 우리나라 문화의 미래를 위해 일제에 대항해 모으고 지킨 국보와 보물 외에도,

보성학교 인수 등과 관련해서 옛 보성학교의 자료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한콜랙숀에서 가장먼저 만나는 고려자기로,

고려청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은,

고려시대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상감청자로 간송이 1935년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 사이이치로에게서 거금 2만원에 구입 했는데,

당시의 2만원은 서울 장안에 기와집 10채를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고 합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에 있는 "불정대(佛頂臺)"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로,

불정대와 천길 절벽을 두고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가 극명하게 구분되는 가운데,

외금강의 돌산, 내금강의 흙산, 외원통 주변의 숲이 대조를 이루는 듯 하면서도 조화롭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겸재(謙齋)의 금강내산(金剛內山)으로 겸재 정선이 36세부터 그려 온 내금강 총도가 이 그림에서 완성 되었는데,

비로봉을 주봉으로 하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암봉들이 마치 한 떨기 하얀 연꽃송이처럼 떠 오르는 감흥을,

겸재는 부감하는 시각으로 포착하여 내금강 전경을 한 화폭 안에 비로봉을 정점으로 내금강 1만2천의 암봉을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놓아,

막 피어나는 백련꽃 봉오리처럼 화면을 구성했는데,

토산이 서릿발 같은 백색 화강암봉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고,

산자락을 따라 장안사, 표훈사, 정양사 같은 사찰과 묘길상, 만폭동 등의 명승지를 세세하게 배치하여 금강산의 진면목을 남김없이 표현해 내었습니다.

 

 

 

겸재(謙齋)의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은 단발령(斷髮嶺)에서 바라본 금강산도이며,

피금정도(披襟亭圖)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좁은 지역을 그린 작품으로 피금령을 지나 단발령에서 처음 금강산을 접하는 장면입니다.

백색 암봉은  북종계의 필묘로, 수림이 우거진 토산은 부드러운 남종계의 묵묘로 이를 처리하여 극단적인 음양대비를 보이면서,

화면구성에서는 토산이 골산을 감싸안는 형상이어서 음양조화의 성리학적 우주관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보물 제1949호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은 1747년 겸재 정선(謙齋 鄭敾)이 72세 때 제작한 화첩으로,

금강산과 동해안 일대의 명승지 그림 21점과 각각의 그림에 붙인 화제(畵題, 그림 위에 쓰는 시와 글) 21점으로 이뤄졌는데,

겸재 절정기의 무르익은 솜씨를 볼수 있으며,

특유의 다양한 필묵법과 옅은 청록색의 선염법이 고른 수준으로 능숙하게 구사되어 금강산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대표작으로,

1930년대 초, 골동상 장형수는 친일매국노라 불리는 송병준의 집 근처를 지나다가 나라를 팔아 얼마나 잘 사는가 보자고 둘러보는 중,

사랑채 옆에 있는 변소에 가다가 그 집 머슴이 사랑채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 것을 보았는데,

이때 아궁이에 넣으려는 초록색 비단으로 꾸민 책 한권이 눈에 들어오게 되어 책을 뒤져보니까 겸재 정선의 화첩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여서,

그는 송병준의 손자로부터 이 화첩을 사서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에게 넘기게 됩니다.

 

 

 

국보 제294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으로,

1936년 11월 22일에 일어난 일대 사건으로 경성미술구락부는 당시 경성에서 유일하게 고미술 경매를 전담 하였는데,

이날 합법적인 문화재 반출구였던 이곳에 이날 목이 긴 백자병 하나가 등장 했는데.

농부에게 발견되어 참기름병 신세로 전락했다가 그 가치를 알아본 일본인 수장가들을 거쳐 경매에 나온 것으로,

500원 호가는 금세 1천원을 넘어 9천 원에 도달했고 최종으로 간송(澗松)과 일본 무역상 야마나카 상회가 맞붙게 되었는데,

 

 

 

높은 안목의 간송(澗松)은 문화재 반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격을 높이게 되었고,

결국 병을 손에 쥔 이는 "1만4천580원"을 부른 30세 조선인 사업가 간송(澗松) 였으며,

압도적 경매가에 야마나카는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 도자기가 400~500원 선에서 경매가 이뤄지던 때였고 2000원 넘게 팔린 적 없던 시절 였으며,

낙찰 금액은 당시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며 당시 경매사상 최고가 였다고 합니다.

 

 

 

"백자희준(白磁犧罇)"은 소 모양의 제례용 술항아리로 조선의  제기(祭器)이며,

17세기에 만들어진 백자희준 역시 1934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경매에서 구입한 문화재 입니다.

 

 

 

높이 19cm 의 "청자상감운학문유개대발(靑磁象嵌雲鶴文有盖大鉢)"은 13세기 청자로,

두껑과 발받침이 한조를 이루며 음식기로 사용된것으로 보이며,

각 그릇 들에는 운학문이 공통적으로 상감되어 있고 두껑에는 연판문과 국화문이 몸체인 발은 여의두문등이 시문되어 있으며,

1934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13세기 작품인 "청자상감모란문반(靑磁象嵌丹文盤)"으로,

청자로 만들어진 반(盤)으로 추정하며 색상은 암갈색에 가깝고,

중앙과 구연부에 모란절지문과 국화문을 상감하고 모란문 바깥으로 4개의 초문을 음각 하였으며,

1937년 이병직 소장품으로 꾸며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19세기 "백자청화동체투각운룡문슬형연적(白磁靑華銅彩透刻雲龍文膝形硯滴)"은 11cm의 높이로,

기교를 중시하던 19세기 도자 제작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용의 비늘과 얼굴은 정교한 청화 선묘와 채색, 조각이 어우러진 장식미가 있는 연적(硯滴)으로,

1934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백자원형지통(白磁圓形紙筒)은 19세기 작품으로,

지통(紙筒)은 두루마리로 된 종이나 편지지 등을 담고 보관하는 통이며,

지통은 원형이나 각이 진 형태가 대부분으로 붓을 꽂아 세워두는붓통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나 붓통보다 높고 넓으며,

간송(澗松)이 1939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백자청화동자조어문병(白磁靑畵童子釣魚文甁)는 24.9cm 높이에 18세기 후기 작품으로,

병의 생김새가 떡메를 닮아 "떡메병"으로 불리며,

도자기의 문양에서 조선시대 문인사대부들의 은둔과 이상향을 묘사한 조어도(釣魚圖)가 그려져 있는 예로는 유일하며,

보통 조어도는 노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동자를 그려넣었으며,

종이에 먹으로 그린 듯한 수준으로 조선 최고의 화원이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19세기의 "백자청화철채산수문가형연적(白磁靑畵鐵彩山水文家形硯滴)"은 높이 4.8cm의 작은 작품으로,

작지만 그 속에 있을 것은 다 있어 기와 지붕, 서까래, 대들보, 심지어 창호문도 그려 넣었고 툇마루까지 묘사했고,

기와 지붕은 푸른 색을 나타내기 위해 산화코발트를 안료로 사용하였고 서까래와 대들보는 갈색으로 표현하기 위해 산화철을 안료로 사용하였는데,

마치 물감으로 칠하듯 도자에 안료로 색을 입혀 만드는 감각이 있으며 집 모양을 한 백자 연적은 19세기에 유행하였다고 하는데,

주로 일자형 사랑채나 안채를 묘사한 것이 대부분으로 이 연적처럼 "ㄱ"자형 형태는 매우 보기 드물다고 하며,

연적에 물을 넣는 곳은 지붕 정중앙 꼭대기에 있고,

물이 나오는 곳은 사랑채 좌측 지붕 아래에 있어 마치 비가 오면 자연스레 추녀 끝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것을 연상시키게 하며,

간송(澗松)이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무려 880원을 주고 구입 하였다고 합니다.

 

 

 

"백자궤(白磁簋)"는 18세기의 작품으로,

궤는 기장을 담는 제기(祭器)로 "하늘은 둥굴고 땅은 모났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반영 하였고,

두텁게 성형 되어있는 발 외면 4면에 청동기 궤를 모방한 거치문 띠를 첩화 하였으며,

1939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하였습니다.

 

 

 

"백자청화궤형모란매화문연적(白磁靑畵簋形丹梅花文硯滴)"은 17세기의 연적(硯滴)이며,

이 연적은 궤의 형태로 제작 되었고 궤의 윗면에서부터 내려오는 뻗침대와 자물쇠를 붙여 제작 하였으며,

간송(澗松)이 1940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 했습니다

 

 

 

높이 5.6cm의 "백자청화철채반룡롱주형연적(白磁靑畵鐵彩盤龍弄珠形硯滴)"는 19세기 작품으로,

반룡롱주(盤龍弄珠)는 똬리를 틀고 누운 용이 여의주를 갖고 논다는 의미의 연적으로,

용의 입을 통하여 물이 흘러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1940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고사관폭(高士觀瀑)"으로,

고고한 선비가 바위 위에 앉아 폭포를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한 산수인물도로,

바위에 부딪히는 폭포수의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생생한 표현이 돋보이는 중국풍의 관념산수화의 구도이지만,

강렬한 바위 주름, 편필의 소나무 묘법, 부감법의 대각선 구도 등 겸재 정선 특유의 진경화법 때문에,

조선의 친숙한 계곡 풍광을 보는 듯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저축은행 은행장이던 모리고이치의 애장품 였으나 간송(澗松)이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통천문암(通川門巖)"은 겸재 정선(謙齋 鄭敾)이 노년기의 마지막에 가까운 시기에 그린 것으로,

겸재(謙齋)는 관동지방을 여행할 때에 이 통천문암을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은 전해오는 것 중에서 가장 노숙한 솜씨로 그린 것으로,

거의 윤곽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바위의 기운을 은근하고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일렁이는 파도가 곧 덮칠 것처럼 일고 물결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데,

거대한 바위산 사이를 단촐한 선비의 행차가 지나고 있는 모습을 볼수있는 이그림은,

1939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일본인 수장가로부터 구입 했습니다.

 

 

 

윤덕희(尹德熙)의 1739년 작품 "남극노인(南極老人)"으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노인을 그린 것으로 장수와 대부를 상징하는 소나무 아래 수노인을 배치하여 그 의미를 더하였는데,

현전하는 윤덕희의 작품 중 규모도 가장 클 뿐 아니라 소나무표현이나 수노인의 의습선 등 도석인물화에서의 그의 화풍 특성이 잘 드러나 있으며,

“기미 12월 낙서 산포가 그려 최형 영숙의 회갑에 대한 우의로 바친다(己未復月 駱西散逋寫奉 似寓意崔兄永叔回甲)”는 발문이 있어,

최창억의 회갑일인 1739년 12월 22일 축수용으로 그려준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윤덕희(尹德熙, 1685~1766)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장남으로 부친의 화업을 이어 받아 ,

산수, 인물, 말 그림등을 잘 그렸던 문인화가이며 1940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보물 제1978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예서대련(隸書 對聯)"으로,

추사(秋史)가 세상을 뜬 해인 1856년(철종 7년)에 쓴 만년작(晩年作)으로,

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성대한 연회는 부부·아들딸·손자라네 라는 뜻으로,

이 글귀는 평범한 일상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경지라는 내용에 걸맞게 소박한 필치로 붓을 자유자재로 운용해,

노(老) 서예가의 인생관(人生觀)과 예술관(藝術觀)이 응축돼 있으며 1937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 하였습니다.

 

 

 

"윤정현(尹定鉉)초상"으로 19세기의 이한철(李漢喆)의 그림으로, 

윤정현(尹定鉉,1793~1874)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우(季愚) 호는 침계梣溪)이며,

이한철(李漢喆,?~1808)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초상화가로 본관은 안산 자는 자상(子常) 호는 희원(希園)·희원(喜園)·송석(松石)이며,

아버지는 화원 이의양(李義養)으로 그도 도화서 화원이었으며 벼슬은 감목관과 군수를 지냈습니다.

박창훈 소장품였으나 간송(澗松)이 1940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한 작품 입니다.

 

 

 

보물 제1980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침계(梣溪)"로,

침계(梣溪) 두 글자를 커다랗게 쓰고 왼쪽에 8행에 걸친 발문을 적었는데,

침계(梣溪)는 추사(秋史)의 제자로 추사는 그에게 아호인 "침계(梣溪)"라는 서예작품을 써주었고,

이 작품은 추사체를 이룩한 추사 김정희가 제자인 침계 윤정현의 부탁을 받았으나,

"침(梣)"자의 예서 전형을 찾지 못해 30여년 고심 끝에 예서·해서 합체로 썼다는 작품이며

침계는 조선 후기 문신인 윤정현(尹定鉉,1793~1874)의 호 이며 윤정현은 추사가 함경도로 귀양 갔을 때 함경감사를 지낸 인물로,

발문에 따르면 추사는 일찍이 윤정현으로부터 호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한나라 예서(隷書·중국의 옛 서체인 전서보다 쓰기 쉽도록 고안된 서체)에 "침(梣)" 자가 없어서 오랜 고민 끝에 예서와 해서(楷書·정자체)를 합해 썼으며,

화면 오른쪽으로 치우쳐 예서로 ‘"계(梣溪)’"두 글자를 쓰고 왼쪽에는 행서(行書, 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로 8행에 걸쳐 발문(跋文)을 썼습니다.

간송(澗松)이 1940년 경성미술구락부 윤정현 초상과 함께 경매에서 구입한 추사(秋史)의 글씨 입니다.

 

 

 

보물 제1954호 "청자음각환문병(靑磁陰刻環文甁)"으로,

고려 12세기 경 제작된 것으로, 두개의 귀가 달린 의례용 금속제 기물의 형상을 청자로 만든 것이며,

구연부, 몸체, 굽다리를 각각 만들어 접합하였으며,

휘어진 목 부분, 튀어나온 돌대, 두 개의 손잡이, 벌어진 굽다리, 동체 상부의 작은 음각원문 등은 금속기를 충실하게 재현했음을 보여주며,

제작상태는 매우 정교하며 비색을 띠는 유색도 매우 단아하여 이와 동일한 형태의 청자가 없는 것은 아니나,

존재 자체가 매우 희귀하며 보존상태 역시 대단히 좋은 편으로,

이러한 점에서 이 병은 당시 최상위 계층에 국한된 소비층을 대상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전형적인 12세기 고려청자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국보 제65호 청자기린유개향로(靑磁麒麟鈕蓋香爐)로 높이 20cm이며,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졌으며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상상 속의 동물인 기린이 꿇어앉아 있는 모습이 한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고,

몸체는 윗부분이 바깥쪽으로 넓게 벌어져 있고 짐승 모양의 다리 3개가 몸체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몸통과 윗면 가장자리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에 뚜껑을 덮도록 했으며 뚜껑 한복판에는 뒤를 돌아보는 기린이 조각되어 있고,

그 옆면에는 번개무늬가 음각 되었으며 기린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으나 부러져 있고 앞가슴에는 나모를 새겨넣고 목 뒤는 곱슬곱슬하게 표현했고,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눈의 점을 찍었습니다.

향의 연기는 반쯤 벌려진 기린의 입을 통하여 뿜어 나오도록 만들어 졌으며,

12세기 전반 고려청자가 크게 발달했을 때 이러한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 졌다고 하며,

1937년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구입 하였습니다.

 

 

 

국보 제66호 청자삼감연지원앙문정병(靑磁象嵌蓮지鴛鴦紋淨甁)으로,

높이 37㎝, 밑지름 8.9㎝의 크기로 이 정병의 첨대는 원통형이며 중간의 환대에는 2개의 단이 있고 다시 목으로 유려하게 연결되며,

목에는 백상감의 화훼 절지가 양면에 1그루씩 새겨져 있고  어깨에는 가는 백색의 선으로 여의두문대가 돌려져 있고,

그 밑의 몸체에는 버드나무·대나무·연꽃·갈대·원앙 등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으며

1937년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일괄구입의 한작품 입니다.

 

 

보물 제238호 "백자박산향로((白磁博山香爐)"로  12세기 작품이며 높이 8.5cm, 지름 8.1cm의 크기로,

중국 한나라 때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 속의 산인 박산을 형상화한 박산향로를 단순화시킨 것이며,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에 뚜껑과 향을 피우는 부분으로 구별되며 밖으로 휘어진 토끼 꼬리 모양의 다리 3개가 붙어 있고 뚜껑은 반구형으로,

산을 겹쳐놓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다각형의 큰 구멍이 있고 그 밑으로 돌아가면서 7개의 구멍을 뚫어놓아 연기가 빠지도록 했습니다.

 

1937년 간송은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가 일본에 머무는 동안 수집한 도자기 컬렉션 20점을 통째로 구입하게 되는데,

개스비는 탁월한 감식안과 열성 있는 수집으로 이미 고미술품 도자기 수집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 였으며, 

흰 두루마기를 입은 32살의 젊은 식민지 청년 간송(澗松)은 존 개스비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전갈을 듣고 일본으로 달려가,

개스비가 수집한 22점 중 20점을  40만원에 통째로 인수 했는데,

당시 40만원은 너무 고가였기 때문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충남 공주 일대 땅 1만 마지기를 팔아야 했다고 합니다.

 

 

 

보물 제1955호 "청자양각도철문정형향로(靑磁陽刻饕餮文鼎形香爐)"으로,

높이 17cm로 고려청자의 최전성기인 12세기에 제작된 향로이며 제작기법이 매우 정교하며,

고려청자 특유의 푸른색을 띠는 유색(釉色)도 단아해 절정기의 수작(秀作)으로 평가되며,

1937년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일괄구입하여 일본에서 다시 들여온 작품 입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소중한 청자 시리즈의 하나인 "청자양각운문병(靑磁陽刻雲文甁)"로,

높이 27cm 12세기 작픔으로 목이 길고 구연부(주둥이부분)가 외반된 전형적인 고려 전기의 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연판문, 구름문, 여의두문, 당초문 차례로 조각되어 있고,

몸체 주 문양을 이루는 구름문은 여지가 하늘로 승천하듯 드문드문 몸체 전체에 돌아가며 조각되었으며,

색상은 청초록으로 소위 비색청자로 불리는 대표적인 유색과 형태에 속하는 청자 입니다.

 

 

 

역시 일본에서 돌아온 청자인 청자양각연당초문매병(靑磁陽刻蓮唐草文梅甁)으로,

12세기 높이 32.5cm의 크기로 "S"자형 몸매에 방구형 구연부를 가진 12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매병으로,

고려시대에 술이나 꿀 등을 담는용도로 사용 되었으며 과장되지 않고 부드럽게 팽창한 어깨의 양감이 긴장감을 잃지 않은채,

아래로 내려 갈수록 좁아지다 바닥 부근에서 갈짝 벌어지고 있으며 연당초문이 음각되어 화려함을 더합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청자인 "청자양각연당초운문합(靑磁陽刻蓮唐草雲文盒)"으로

높이 12cm 지름 20cm의 크기로 불교 의례의 예식용 향이나 여인들의 화장용구를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합으로,

유색과 반양각 기법으로 조각한 연당초문, 영지형 운문의 형태, 내화토 받침 번조 등을 보아 12세기경 제작된것으로 추정합니다.

 

 

 

국보 제74호 "청자오리형연적(靑磁鴨形硯滴)"으로 높이 9.8cm, 몸통지름 6.0cm의 크기이며,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연적으로 어미 원숭이 머리 위에 지름 1.0cm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 위에 지름 0.3cm의 물을 따라내는 구멍이 뚫려 있어 연적임을 알 수 있고,

어미 원숭이의 엉거주춤한 자세, 손으로 어미의 얼굴을 밀어내는 새끼의 모습 등 원숭이 모자의 다정한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 했으며,

두 원숭이의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사이를 파내어 사실적으로 표현 했으며 어미원숭이의 눈, 코와 새끼원숭이의 눈은 검은색 안료로 점을 찍어 나타 냈고,

표면의 색깔은 비취색으로, 유약은 잘 녹아 투명하고 잔잔한 기포가 전면에 퍼져 있어 은은한 광택이 나며,

1146년에 제작된 청자과형화병, 청자합과 유약색이 동일하여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37년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일괄구입의 한작품 입니다.

 

 

 

보물 제349호 "청자삼감국모란당초문모자합(靑磁象嵌菊花牡丹唐草文母子盒)"으로,

외합 1세트, 내합 5세트로 모합 높이 8.4cm, 지름 19.1cm. 8각형 모양 자합 높이 3.1cm, 지름 7.9cm. 산 모양 자합 높이 3.0cm, 길이 7.8cm이며,

고려시대부터 모자합 또는 합형의 그릇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는데 화장품을 담아두던 그릇으로 제작·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모자합으로,

바깥쪽의 큰 그릇인 모합과 그 안에 들어가는 작은 그릇인 자합(子盒) 5개로 이루어져 있고,

자합은 가운데 놓이는 둥근 8각형 모양의 그릇 하나와 그 둘레에 놓이는 산(山) 모양의 그릇 4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합 뚜껑 중심에는 사릉형문(四菱形文)을 두고 둘레에 국화·연꽃·모란무늬를 장식했고, 뚜껑 가운데 부분은 국화무늬를 흑백상감 처리 했으며,

모합 몸체는 덩굴무늬를 둘러서 마무리 하였고 자합 뚜껑에는 흑백상감을 한 모란을,

뚜껑 바깥 둘레에는 백상감을 한 번개무늬를 장식한 1937년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일괄구입의 한작품 입니다.

 

 

 

보물 제286호 "청자삼감포도동자문매병(靑磁象嵌葡萄童子文梅甁)" 또한 일본에서 다시 돌아온 청자로,

높이 41.5cm, 아가리 지름 7.5cm, 밑지름 15.8cm의 크기로,

고려의 세련된 청자매병에 비하면 다리가 길어지고 아가리가 커지는 등 약간 무딘 느낌이 드는데,

정선되지 않은 바탕흙,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굽다리을 볼 때 전성기가 지난 뒤에 만든 것으로 짐작되며,

어깨 부분에는 비교적 큰 꽃무늬를 상감했고, 넓은 몸체에는 덩굴 포도잎과 열매를 가득 채워 넣었으며 이 문양은 모두 백상감으로 표현했는데,

포도 열매만은 동그란 무늬로 도장을 찍듯 새기고 그 안에 검은 점을 하나씩 상감하여 포도알을 표현했으며,

청자상감 매병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단정한 세련미보다는 온후한 느낌을 줍니다.

 

 

 

국보 제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靑磁母子猿形硯滴)"으로 높이 9.8cm, 몸통지름 6.0cm의 크기이며,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연적인데,

어미 원숭이 머리 위에 지름 1.0cm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 위에 지름 0.3cm의 물을 따라내는 구멍이 뚫려 있어 연적임을 알 수 있으며,

어미 원숭이의 엉거주춤한 자세, 손으로 어미의 얼굴을 밀어내는 새끼의 모습 등 원숭이 모자의 다정한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 하였습니다.

두 원숭이의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사이를 파내어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어미 원숭이의 눈, 코와 새끼 원숭이의 눈은 검은색 안료로 점을 찍어 나타 내었으며,

표면의 색깔은 비취색으로, 유약은 잘 녹아 투명하고 잔잔한 기포가 전면에 퍼져 있어 은은한 광택이 나며,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1937년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일괄구입의 한작품 입니다.

 

 

 

국보 제66호 "청자삼감연지원앙문정병(靑磁象嵌柳竹蓮蘆鴛鴦紋淨甁)"으로 높이 37㎝, 밑지름 8.9㎝의 크기이며,

이 정병의 첨대는 원통형이며, 중간의 환대에는 2개의 단이 있고 다시 목으로 유려하게 연결되며,

목에는 백상감의 화훼 절지가 양면에 1그루씩 새겨져 있으며 어깨에는 가는 백색의 선으로 여의두문대가 돌려져 있고,

그 밑의 몸체에는 버드나무·대나무·연꽃·갈대·원앙 등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정병은 고려시대부터 불사에서 사용되었으며 정병이라는 명칭은 원래 정수(淨水)를 담는 여러 형태의 물병을 모두 포함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긴 목에 나팔 모양의 주구(注口)가 달려 있고 타원형의 몸체에 굽이 달린 형태의 병만을 정병이라 통칭하는 것은,

아마도 사찰에서 주로 사용된 정수병이 대부분 이러한 형태였기 때문으로 여겨지며,

1937년 영국인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일괄구입의 한작품 입니다.

 

 

고려청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고려청자 컬렉션으로,

물려받은 가산을 팔아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구입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추사의 글씨, 겸재의 그림 등 유물과 간송(澗松)의 문화재 수집 뒷이야기와 함께 만나 볼 수 있으며,

국보 6점과 보물 8점 등 총 60여점을 만날수 있는"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展, 대한콜랙숀" 전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하는 13번째 전시이자 마지막 전시 이기도 합니다.

 

기간: 2019.01.04(금) ~ 2019.03.31(일)

장소: 서울 중구 DDP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요금: 성인 개인 10,000원 / 성인 단체할인(20인 이상) 8,000원 

       학생 개인(20%) 8,000원 / 학생 단체할인(40%)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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