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군산을 여행하면서,

군산시 금광동에 있는 근대기 불교 사찰 건축물인 동국사(東國寺)를 찾았습니다.

 

전북 군산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지역으로,

특히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수탈의 첨병역활을 하던 곳여서,

일제 강점기와 관련한 유적들이 많은데 이곳 "동국사(東國寺)" 역시 그 일환으로 세워진 사찰 입니다.

 

 

 

군산 동국사(東國寺)를 찾으면 주택 밀집 지역의 골목안에 있어서,

주차의 어려움은 감수해야 하며 따로이 유료 주차장은 있으며,

사찰을 들어서면 우리의 절과 다른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입구에 일주문과 사천왕상이 없으며 대문만 있고,

 

 

 

 

동국사 입구에는 대리석 대문기둥이 서 있는데,

기둥 양편에는 소화 9년(1934)이라는 글씨가 음각되게 새겨져 있는데,

누군가 일본 천황의 소화 글씨를 파내어 글씨를 지우려는 흔적이 남아 있어 해방후의 일로 보이며,

 

 

 

동국사(東國寺) 경내는 산속에 있는 우리나라 사찰에 비하여 그리 넓은 편은 아니며,

대문의 맨안쪽에는  2015년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이 추운 겨울에 외투와 목도리로 맨발로 서있고,

소녀상 뒷편으로는 일본 조동종의 일제 침략을 참회하는 "참사문비"이 세워져 있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2015년 8월 12일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이곳 동국사에 세워 졌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군산시민의 성금 5천여만원을 모금해 세워진 군산 평화의 소녀상은,

전북 출신의 고광국 작가가 2달여의 작업기간을 거쳐 완성 하였으며,

소녀상 건립에는 일본 조동종의 이치노혜 스님등 의식있는 일본인들도 성금 모금에 동참 했다고 하며, 

 

 

 

평화의 소녀상은  맨발의 한복차림으로 158cm의 크기의 청동상으로,

멀리 일본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제작 되었습니다.

 

 

 

소녀상 옆에는 종각이 있어,

1919년에 세운 종각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의 일본식 종각으로,

 

 

 

종 역시 전형적인 일본식 종인데 교토에서 만들어 가져 왔다고 하며, 

종의 명문에 따르면 다이쇼 8년(1919)에 제작 했으며 "금강선사"라고 명문 되어 있고,

크기를 떠나서 종이 높이 달려 있어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수 있는 종의 울림통은 찾을수 없습니다.

 

 

 

종각 아래에는 많은 석상들이 놓여져 있어,

 

 

 

종각으로 들어가는 맨 앞에는,

아이를 안은 자안 관세음 수본존불상(子安 觀世音 守本尊 佛像)이 있으며,

 

 

 

 

뒤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중생교화를 위해 근기에 따라 나타난다는,

서른두 가지 모습을 형상화한 삼십이 응신상(應身像)들이 있어,

석불들 역시 일본에서 가져온 것으로 밀교(密敎 )에 기반한 일본불교의 양식이며,

 

 

 

 

종각 주변의 41기의 불보살(佛菩薩)은,

작은 화강암에 연꽃 위에 서있는 모습을 부조로 조각 하였는데,

관세음보살 삼십이 응신상(觀世音菩薩 三十二 應身像) 33기와 띠별 십이지 수본존상(十二支 守本尊像) 8기로,

모두 창건 당시 일본에서 조성되어 건너왔습니다.

 

 

 

종각 옆에는 천불전(千佛殿)이 있어,

천불전은 부처님 일천분을 모신 곳이라 하여 천불전이라 하는데,

천불(千佛)이란 이 세상에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계속하여 미륵불을 포함한 많은 부처님이 출현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 군산 동국사 대웅전(群山東國寺大雄殿)으로,

군산 동국사 대웅전은 근대기에 건립된 일본 불교 사찰 건축물로,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홑처마 단층팔작지붕 형식의 에도시대(江戶時代) 양식으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며, 

동국사는 일제 강점기에는 금강사(錦江寺)라는 이름의 일본 조동종 사찰이었고,

해방 이후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동국사가 되었으며 동국사(東國寺)란 이름은 해동(海東)과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음을 따 온것이라 하며,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우치다(內田佛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 강점기 36년을 일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 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한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 이기도 합니다.

 

 

 

 

대웅전(大雄殿)의 현판이며,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로 1909년 일본인 승려가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로,

일본불교는 1877년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 하여,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고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고 일연종이 뒤를 이었는데,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수 있으며,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자로 사찰령을 발령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일본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 하였으며,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금강사를 창건한 일본 승려 우치다(內田佛觀)는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석하다가,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 하였다가 1913년 7월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을 신축 하였습니다.

 

 

 

 

동국사(東國寺) 대웅전(大雄殿)은 한국 사찰과 달리 법당과 요사채가 회랑으로 연결되며,

법당에 들어갈 때는 대웅전의 문이 아니라 회랑 쪽 문을 통해 들어가며,

법당 내부는 신발을 신고 들어올 수 있는 정면의 현관과 절을 할 수 있는 외진과,

불상이 놓이는 내진으로 구분되는 일본식 사찰의 공간구조 그대로 이며,

 

 

 

법당에는 소조석가여래삼존상(塑造隱寂寺釋迦如來三尊像)이 모셔져 있어, 

복장유물(群山 東國寺 塑造釋迦如來三尊像 ─ 腹藏遺物)과 함께  보물 제1718호로 지정 되었으며,

석가여래상은 높이 150cm, 가섭존자상 높이 160cm, 아난존자상 높이 160cm의 크기로,

동국사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여래삼존상(隱寂寺釋迦如來三尊像)의 불상 내부에서 다량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복장물은 조성발원문을 비롯하여, 천 여명에 이르는 시주자 명단, 후령통 직물에 싸인 오곡, 오약, 오보 그리고 전적류와 다라니 등 333점에 이르며,

발원문 기록을 통해 1650년에 응매(應梅)를 비롯한 6인의 조각승이 제작하였고,

원래는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봉안 되었던 불상 였슴을 알수 있으며,

 

 

 

1650년에 만들어진 석가여래삼존상(隱寂寺釋迦如來三尊像)은,

나무로 심을 만들어 흙을 붙여 제작한 소조불로서 균형 잡힌 신체비례, 당당한 자세, 단조롭고 힘이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운 옷주름이 특징이며,

협시상으로 서 있는 자세의 미소진 가섭존자와 합장한 아난존자는 자세와 얼굴 표정 등에서 서로 대조를 이루며,

가섭존자상은 손을 어깨 부분에 올려 손가락을 맞댄 매우 독특한 자세를 취하였으며,

주름살과 수염, 미소 등을 실제 모습을 보는 듯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대웅전의 옆면에는 탱화(佛幀)를 삼면으로 나누어 둔 모습이 들어오고,

 

 

 

동국사(東國寺) 당시 일본에서 나무를 비롯한 모든 건축자재를 들여와 공사를 하였다고 하며,

대웅전(大雄殿)은 지붕의 경사가 급하고 용마루가 일직선이어서 우리 민족의 양식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으며 처마 아래에 단청이 없으며,

 

 

 

 

추위에 견디기 위해 두터운 벽이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사찰에 반해,

동국사(東國寺)의 건물은 습기제거를 위해 넓은 창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해방된 이후, 조계종에서 동국사(東國寺)를 인수할 때만 해도,

군산에 살던 일본인들이 조상들의 뼈를 모신 납골당이 경내에 있었다고 하며, 

그런데 이를 철거하면서 그곳에 있던 수많은 일본인들의 유골을 인근 강에다가 산골(散骨)해 버렸는데,

이후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자,

과거에 군산에 살던 일본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울면서 찾아와 절 마당의 흙을 유골가루 대신 퍼간 실화가 있기도 합니다.

 

 

 

 

대웅전 뒷편으로 나오니,

전각과 연이어 요사체가 붙어 있어 우리나라 사찰과는 또다른 모습을 볼수 있고,

 

 

 

 

대웅전과 옆으로 잇대어 승려의 생활공간인 요사채(寮舍)가 있어,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으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에 많은 창문이 일본색을 보여주고,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일본 목조 건축 양식의 건축물로서,

일본식 불교 건축물이 처음 지어지던 당시와 같이 불교 사찰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례로,

우리나라 사찰과 비교 하면서 보는 또다른 느낌이 있는 곳으로,

전라북도 군산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東國寺) 탐방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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