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의 문화재 탐방에서,

장흥군 장동면 흥성에 있는 동백정(冬柏亭)을 찾았습니다.

 

탐진강(耽津江) 상류인 호계천변 소나무숲이 우거진 학등(鶴嶝)에 자리하고 있는 동백정(冬柏亭)으로,

 

 

 

동백정(冬柏亭)으로 들어가는길은 호계천을 건너야 하고,

 

 

 

정자로 오르는 입구에는 동백정(冬柏亭) 입로석과 별신제 안내석 등이 있으며,

 

 

 

계단을 따라 얼마 오르지 않으면 동백정(冬柏亭)을 만나게 되어,

 

 

 

동백정(冬柏亭)은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69호로 지정 되었으며,

 

 

 

입구의 왼쪽에는 동백정(冬柏亭)을 관리하는 관리사인듯,

맞배지붕의 3칸 건물은 겨울나기 준비를 제대로 해두었습니다.

 

 

 

동백정(冬柏亭)은 세조 4년(1458)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동촌 김린(桐村 金麟, 1392∼1475)이,

관직을 은퇴하고 터를 잡아 가정사(假亭舍: 잠잘 방이 있는 임시 정자)를 짓고 거처한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72년(고종 9) 김이한(金履漢), 김윤현(金潤賢) 등이 발의하여 청주김씨(淸州金氏) 문중에서 중건하였고,

1895년(고종 32)에는 김익권(金益權)이 앞장서 중수를 하였으며,

그 후 1985년에 후손 김종근(金鍾根) 등이 개보수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백정(冬柏亭)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나,

1985년 중건할 때 측면으로 1칸을 더 내어 현재는 정면 4칸의 형태가 되었고,

서쪽으로부터 전면에 누마루 1칸과 후면에 방 1칸 다음 중앙칸은 앞뒤로 툇마루를 두고 중앙으로 방 1칸,

그리고 끝으로는 계속 작은 마루를 설치 하였으며,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주춧돌은 자연석을 놓았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세웠고,

기둥 위로는 공포 구성없이 창방(昌枋)을 걸고 주두를 놓았으며 창방 위로는 주간마다 3구씩의 소로받침을 둔,

5량가 가구이며 처마는 모두 부연을 둔 겹처마로 정자 치고는 다소 복잡한 구조 입니다.

 

 

 

정자의 마루로 오르는 디딤돌 위에는 추억의 고무신이 한컬레 놓여있어,

아마도 겨울이 오기전에 신었던 신발로 보이며,

 

 

 

동백정(冬柏亭)의 현판이며,

 

 

 

동백정(冬柏亭)의 구조는 특이한 편으로,

앞에서 보아 오른쪽에는 원래의 건물에서 부섭한듯 마루가 있어,

부섭지붕은 벽이나 물림간에 기대어 만든 지붕으로 눈썹지붕이라고도 합니다.

 

 

 

부섭의 마루옆에는 마루방이 있어,

마루방은 트여있지 않고 판재로 막고 판문을 두었으며,

 

 

 

마루위에는 많은 편액들이 올려져 있어,

 

 

 

9대손(九代孫) 김형권(金炯權)의 "동백정운(冬栢亭韻)" 시판(詩板)이며,

 

 

 

송영대(宋榮大)의 "근차 동백정운(謹次冬柏亭原韻)" 시문(詩文)과,

 

 

 

광산후인(光山後人) 김성채(金成采)의 시문(詩文)이 있고,

 

 

 

김윤홍(金潤鴻)의 시액(詩額)이 있으며,

 

 

 

춘산노초(春山老樵) 김익검(金益儉)의 시(詩)도 편액되어 있습니다.

 

 

 

송병순(宋秉珣)의 "차동백정원운(次冬柏亭韻)"의 시문(詩文)이 있고,

 

 

 

문인(門人) 김종근(金種根)의 시문(詩文)과,

 

 

 

계암(溪菴) 김윤황(金潤璜)의 차운시 시액(詩額)이며,

 

 

 

"봉화원운(奉和原韻)"으로 후손(後孫) 김봉규(奉圭謹)의 시문(詩文)이 있고,

 

 

 

소성인(邵城人) 진사(進士) 이상구(李相求)의 "근차 동백정운(謹次冬柏亭韻)"으로,

 石溪淸澈繞亭前    돌 계곡에 맑은 시내 흘러 정자 앞을 두르니

一別靈區二十年    이 좋은 곳을 한 번 이별한 지 20년이라

絶壁雲開衡嶽雨    형악에 비가 오니 절벽에는 구름이 피어오르고

平郊日落洞庭烟    들녘의 해는 동정호 연기와 함께 지네.

居人已辦流觴樂    주인은 이미 곡수에 술잔 띄워 시를 준비하는데

遠客猶客借榻眠    원객은 오히려 자리 빌려 잠자리에 드네.

物態如今無恙否    만물의 모습이 지금 같이 병이나 없지 않을까

痴心直欲挾飛仙    어리석은 마음으로 비선이 되고자 하네

 

 

 

왕자사부(王子師傅)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1526∼1597)의,

"동백정서(冬柏亭序)"의 시판(詩板)이 있고,

 

 

 

"동백정서(冬柏亭序)"로 김윤성(金潤聲)의 편액이며,

 

 

 

김이한(金履漢) "동백정기(冬柏亭記)"이며,

동백정(冬柏亭)을 중건한 1872년 중추절에 김이한(金履漢)이 남긴 시(詩)로,

一區冬柏護來前  名命相傳未年      한 지경 동백이 앞일을 보호하니  정자를 앉히기 전에 동백이라 이름했네

夜雨初收依檻月  洞雲朝散宿烟      밤비가 그치니 달이 난간을 비추고 아침에 흩어지는 마을 구름이 처마 끝을 두르네

常餘樂意宜觴   晩保淸閒任悟眠     항상 즐거워 술잔 들고 글을 읊조리니  늙어감에 청한하니 멋대로 잠자리에 드네

爲聽人間行路客  仙非仙也是眞仙   길가는 나그네에게 인간사를 청해 들으니  이 곳 주인이 바로 신선이라 하더라

 

 

 

김석곤(金錫坤)의 "동백정기(冬柏亭記)"의 기문(記文)이 있고,

 

 

 

또하나의 기문(記文)인 "동백정기(冬柏亭記)"는 청부(淸州)의 김윤현(金潤賢)의 글이며,

 

 

 

김윤기(金潤麒)의 "동백정 상량문(冬柏亭上樑文)"이며,

 

 

 

1988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는 "동백정 중수기(冬柏亭重修記)" 이며,

 

 

 

또다른 "동백정 중수기(冬柏亭重修記)"로 김익권(金益權)의 기문(記文) 편액 등이 있습니다.

 

 

 

동백정(冬柏亭)의 방을 들여다 보니 사람이 기거하고 있는 흔적이 있어,

들어오면서 보았던 관리사에서 사용하는듯 합니다.

 

 

 

대청보다 단을 높여 올려둔 누마루에는,

차를 즐길수 있도록 탁상을 두어 한잔의 차와 함께 정자의 정취를 만끽할수 있습니다.

 

 

 

평안도가 고향인 진사(進士) 박영수(朴泳銖)가 이곳에 들러 남긴 차운시로,

大冬蒼柏立亭前    크고 푸른 동백이 정자 앞에 우뚝 서 있으니

勁節爲公挺萬年    공의 굳은 절개는 후세 만년 빼어나고

奮氣 磨龍岳月    용두산 아래에서 연마하여 분기를 떨치니

捨身檄渡虎溪烟    목숨을 불사른 충혼이 호계의 안개에 서려 있네.

非徒先哲芳遺跡    한갓 선인 현철의 아름다운 발자취가 아닐지라

亦使後生覺大眠    또한 후생으로 하여금 큰 잠에서 깨어나게 하네.

含出賢珍令表蹟    솟구쳐 나온 어진 보배 유적을 더욱 빛내고

精忠亘亘不朽仙    올곧은 충성심은 불후의 신선다운 경지에 이르도다

 

 

 

동백정(冬柏亭)은 장동면 장항마을 옆으로 흐르는 강가의 동산에 자리잡고 있어,

대동계의 집회소로 이용 했으며,

탐진강 상류 예양강(汭陽江)을 끼고 동백정과 함께 용호정, 부춘정, 경호정, 독우재, 영귀정, 농월정이 ‘칠정계’로 불리며,

시가문학(詩歌文學)의 한 띠를 형성 했습니다.

 

 

 

처음 이곳에 자리잡은 동촌(桐村) 김린(金麟, 1392~1474)은,

1458년(세조 4)에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從 一品)에 이르렀으나 모함으로 외지인 장흥읍재(長興邑宰)에 부사로 좌천 시켰는데,

세조의 왕위 찬탈 사건인 계유정난(癸酉靖難)에 항거했던 주변 인물로서 정치 보복적 성격을 띤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의정부좌찬성을 하다 장흥부사로 부임한 동촌(桐村) 김린(金麟)이 벼슬을 버리고 동백(冬栢)나무를 심고 은거하여 동백정(冬柏亭) 효시가 되었습니다.

 

 

 

동백정(冬柏亭)은 필요에 따라서 마을 사람들이 참석하는 대동계의 사랑방 구실도 겸했으며,

시가문학의 중심지가 되어 양반과 평민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정자문화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동백정(冬柏亭)을 돌아보고 조심스레 내려가는 길을 잡습니다.

 

 

 

탐진강(耽津江)의 상류인 호계천변에 자리하여,

동촌 김린(桐村 金麟)이 가정사(假亭舍)를 짓고 동백을 심어 가꾼곳으로,

600년이 넘는 역사가 있으며 양반과 평민이 함께사용하였던 정자로,

전남 장흥의 아름다운 정자 문화재, 동백정(冬柏亭)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