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역의 문화재 탐방에서,

울산광역시 중구 유곡동에 있는 천도교의 유적지인,

수운 최제우 유허지(水雲 崔濟愚 遺虛址)를 찾았습니다.

 

울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수운 최제우 유허지(水雲 崔濟愚 遺虛址)"로,

 

 

 

"여시바윗골"로도 불리던 이 곳은 천도교의 성지로 전해오는 곳으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초가를 짓고 수도생활을 한 터이며,

최제우는 1855년 이 곳에서 이승(異僧)으로부터 천서(天書)를 받아 사흘만에 그 뜻을 깨치고,

그 때부터 본격적인 구도에 정진 하였다고 하며 이 때 받은 천서를 "을묘천서(乙卯天書)"라 합니다.

 

 

 

주차장에서 들어와 아랫쪽에는 8각의 비각이 있어,

비각안에 있는 비석은 1997년에 비각(碑閣)은 1999년에 모두 천도교에서 세웠으며,

 

 

 

비석에는 "천도교 교조(天道敎 敎祖) 대신사 수운 최제우 유허비(大神師 水雲 崔濟愚 遺墟碑)"라 쓰여 있으며,

 

 

 

비각 뒤에는 두그루의 무궁화 나무가 있어,

울산의 모 산악회에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백두산과 한라산의 물과 흙을 가져와 통일나무로 무궁화를 심어 두었는데,

유허지(遺虛址) 주변에는 유난히 무궁화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비각에서 윗쪽으로 돌아 오르면 2채의 초가집이 있어,

 

 

 

안쪽에 있는 정면2칸 측면2칸의 초가집으로,

전면에 쪽마루가 있는 방을두고 뒷쪽에 부엌(창고)과 아궁이를 둔 특이한 구조이며,

 

 

 

수운(水雲)선생이 하루 세번 기도를 하셨다는 초당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반 규모로 복원이 되어 있어,

 

 

 

최제우(崔濟愚,1824~1864)는 조선조 말 동학(東學)의 창시자로 외세의 침략과 봉건 사회의 모순에 반대한 종교였던 동학(東學)의 교조(敎祖)이며,

호는 수운(水雲) 경주 출신으로 집안 살림이 어려워 장사를 하거나 의술(醫術)과 점술(占術)에 관심을 보이거나,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전전 하였으나 참된 도를 구하려는 수운의 노력은 양산, 울산, 경주 지방에서의 수련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860년 4월 5일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듬해 포교를 시작하여 1863년에는 경상도,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와 경기도에까지 교세를 펼쳐,

교인 3천여 명에 지방 종교조직인 접소(接所) 13개소를 확보하기에 이르게 되었는데,

 

 

 

몰락한 양반가 출신인 수운(水雲)은 봉건적 체제에 대한 모순을 느끼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 가르치는 동학을 창시하여,

우리민족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분수령을 형성하며 당시의 도탄에 빠져있던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는데,

민중들 속에서 동학의 교세가 확산되자,

당시 조정에서는 그를 체포해 그릇된 말로 정국을 어지럽혔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1864년에 죽임을 당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순교 이후 교세가 더욱 커져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으로 이어 졌으며,

이곳 여시바윗골은 수운(水雲)이 수도생활을 하던 중,

금강산 유정사에서 왔다는 한 스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주신 글을 받고 큰 깨우침을 얻은 곳으로,

옛부터 "예수바우골"이라 하여 동학의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 왔습니다.

 

 

 

복원된 유허지(遺虛址) 초당의 부엌도 들여다 보고,

 

 

 

단출했던 옛살림의 장독대도 있습니다.

 

 

 

울산 여시바윗골이라 불리던 이곳은 천도교(天道敎)의 교조(敎祖) 수운 대신사(水雲 大神師) 최제우(崔濟愚) 선생의 부인인 박씨 사모님의 고향으로,

1855년에 수운(水雲)이 신비체험을 통해 이인으로부터 천서를 받았던 곳이라고 하며,

이 천서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수운선생은 기도를 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동학 천도교를 창도하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고 하는 곳으로,

수운(水雲)이 을묘천서(乙卯天書)를 받는 종교체험을 한 이곳을 2005년 울산중구청에서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 하였다고 합니다.

 

 

 

집앞에는 천도교와 동학의 이야기를 전해 주려는듯,

겨울꽃인 동백이 피어 오르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양 세력의 침투와 조선 사회의 내재적 위기 속에서,

시천주(侍天主) 신앙에 기초하면서도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내세우면서 나타나,

서학의 침투에 대항하는 한편 새로운 이상세계의 건설을 목표로 하여,

쓰러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워 보려했던 동학(東學)이 있게한 천도교(天道敎)의 성지로,

큰 깨달음을 얻어 “사람이 곧 하늘”이라 가르치는 동학을 창시 하였던 곳으로,

울산의 유적, 수운 최제우 유허지(水雲 崔濟愚 遺虛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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