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에서의 정자 문화재 탐방에서,

경주시 강동면 검단리 운곡서원(雲谷書院)에 있는 유연정(悠然亭)을 찾았습니다. 

 

경주 보문단지에서 천북을거쳐 유강으로 가는길에,

왕신저수지에서 계곡으로 5분정도 들어가면 운곡서원(雲谷書院)을 찾을수 있으며,

서원 아래에는 넓고 잘 정비되어 있는 주차장과 서원 건물들의 모습이 보이고,

 

 

 

서원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왼쪽에 서원의 부속건물들이 자리해 있고,

 

 

 

안쪽에 운곡서원(雲谷書院)이 자리해 있어,

운곡서원은 1784년(정조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권행(權幸)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지역에 추원사(追遠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고,

그 뒤 권산해(權山海)와 권덕린(權德麟)을 추가 배향 하였으며 운곡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 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0년 유허지(遺墟址)에 설단(設壇)하여 향사를 지내왔으며,

1976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쪽 사당이 있는 협문 옆에는 비각이 있어,

 

 

 

2007년에 세운 고려태사 권공 신도비(高麗太師 權公 神道碑)로,

신도비 전면은 안동 능동에 있는 신도비를 탁본하여 새겼고,

음기는 태사공 권행(權幸)의 33세손 헌조(憲祖)가 짓고 월성 최채량(崔埰亮)으 글씨 입니다.

 

 

 

운곡서원(雲谷書院)으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하며,

 

 

 

운곡서원(雲谷書院)에서 배향하는 권행(權幸)은 고려 전기의 공신으로 안동권씨의 시조이며,

930년(태조 13)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고창군(古昌郡: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을 포위하여 전세가 고려에게 매우 불리 하였는데,

김선평(金宣平)ㆍ장정필(張貞弼)과 더불어  고창 전투에서 태조를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게 되어,

태조 왕건은 그 공으로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하고  대상(大相)이라는 관계를 내려 주었으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로 봉해진 기록도 보이고 있습니다.

 

 

 

서원을 지나 유연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갈산처사안동권공기적비(葛山處士安東權公紀績碑)"가 있어,

안동권씨 시조인 태사공 권행(權幸)의 30세손 갈산(葛山) 권종락(權宗洛,1745~1819)의 기적비로,

권종락(權宗洛)은 1784년 추원사 창건을 여러 종인들과 정성을 다하여 완수 하였고,

1789년 죽림선조 신원(伸寃)을 위하여 격쟁(擊錚)하며 원정초(原情草)를 올려 복작교지를 받아온 숭조정신과,

금성단 압각수를 꺾어 와서 심은 유래 등 공적을 기념하기위해,

비문은 종 후손 권헌조(權憲祖)씨가 짓고 월성 손장호(孫璋鎬)씨가 쓰고 종 후손 권시환(權時煥)이 대자를 썻으며 사당옆의 신도비와 함께 세웠습니다.

 

 

 

안쪽에는 향정원과 유연정(悠然亭)이 보이고 노거수 은행나무가 서있어,

죽림(竹林) 권산해(權山海,1403~1456)는 조선시대 종부사첨정으로 있다가 단종이 귀양을 가자 벼슬에서 물러 났으며,

세조가 몇 차례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탄로 나자 이 일에 연루되어 투신 자살 하였습니다.

갈산(葛山) 권종락(權宗洛1745~1819)은 단종때 죽은 충신들이 모두 복권되고 증직이 됐지만,

유독 자신의 12대조인 권산해(權山海)만 누락된 것을 억울하게 여겨,

1789년(정조 13)에 정조가 거동할 때 임금의 수레 아래 엎드려 눈물로 호소하여 권산해는 복직되고 금성단에 배향 되었고,

권종락은 서울서 돌아오는 길에 순흥 금성단에 들러 압각수(鴨脚樹) 가지 하나를 가지고 와 심으니 그 나무가 지금의 은행나무이며,

 

 

 

360년의 수령을 가진 유연정 곁의 은행나무는 영주 신목(神木)으로 불리는 순흥 압각수(鴨脚樹)가 조상으로,

순흥 객사 뜰에 압각수가 있었는데 1452년(단종 1년)에 단종손위(端宗遜位)를 미리알고 갑자기 말라 죽었는데,

이때 점쟁이가 말하기를 "압각수(鴨脚樹)"가 다시 살아나면 순흥마을은 복향될 것이다"고 했으며,

그후 몇 년이 지나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조카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돼 반역죄로 처형되어,

순흥은 폐향되고 풍기군의 속현이 되고 말았다가,

240여년이 지난 숙종때 말라죽은 압각수에 생기가 돌고 나무가 살아나서 큰 숲을 이루었는데,

그 후 순흥은 복향되고 2년 뒤에 단종의 왕호도 회복 되었고 사육신도 복권 되었으며 압각수 아래 금성단을 창설 하였습니다.

 

 

 

유연정 앞에는 옛 관리사인 주사(廚舍)로 보이는 "ㄱ"자 형태의 건물이 있어,

차를 마실 수 있는 향정원이란 이름으로 자리해 있고,

 

 

 

기와를 모아 올려 담장을 이루고 있어 주인의 정성이 느껴지며,

 

 

 

향정원 앞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5호로 지정된 경주 유연정(慶州 悠然亭)이 자리하고 있어,

 

 

 

유연정(悠然亭)은 1811년(순조 11) 안동권씨 시조인 고려 태사(太師) 권행(權幸)과,

그의 후손 권산해(權山海)와 권덕린(權德麟)을 추모하기 위하여 안동 권씨 종중에서 후손들이 창건 하였으며,

운곡서원(雲谷書院)에서 계곡 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용추대(龍湫臺) 위에 세워진 정자로,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좌측칸을 통칸의 우물마루로 꾸몄고,

마루 전칸면에는 헌함(軒檻: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을 두었고,

대청에는 골판문을 달았으며 얕은 자연석 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대청의 대들보 위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고,

반자 양측에 각재를 내린 후 반원형의 판재를 45도로 끼워 특이하며,

주변의 용추계곡, 압각수(鴨脚樹:은행나무) 등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1800년대 초기의 건축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문화재 입니다.

 

 

 

유연정(悠然亭)의 현판으로,

정자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채국시(採菊詩)에서 가져 왔는데,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으로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아득히 남산을 바라본다" 라는 의미 입니다.

 

 

 

유연정은 들어가지 못하게 관리하고 있으나,

앞에 있는 찻집인 향정원에서 관리하고 있어 관람 부탁을 드리고 마루에 올라 봅니다.

 

 

 

유연정(悠然亭)은 호남지역 정자의 전형인,

가운데 방을두고 3면에 마루를 두른 형식과 비슷한 구조인데,

호남지역의 전형적인 배치형식과 조금 다른것은 왼쪽에 마루대신 작은방을 하나 두어 특이하며,

 

 

 

마루 위에는 1965년 오천 정석호(鄭錫祜)의 "유연정기(悠然亭記)"의 기문(記文)이 올려져 있으며,

 

 

 

유연정(悠然亭)의 마루는 우물마루를 두었고,

오른쪽의 옆면과 뒷면은 판재로 막고 나무문을 두어 열고 닫게 해두었으며,

 

 

 

대들보와 종보는 나무의 휘어진 모습 그대로 활용하여 자연미를 주고 있으며,

 

 

 

팔작지붕에서 흔이 볼수있는,

서까래를 감추고 통풍을 목적으로한 우물반자의 천정아래의 연화문 장식에서,

장인의 정성이 느껴 집니다.

 

 

 

정자의 2개의 방 가운데 큰방을 열고 들여다 봅니다.

 

 

 

온돌방을 들여다 보니,

향정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서 인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온돌방의 전면에는 3짝의 분합문(分閤門)을 두었고,

마루쪽은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어 여름철에는 시원함을 위해 접어서 들어올려 열 수 있게 해두었고,

 

 

 

유연정(悠然亭)의 마루에서는 산이 앞에 마주하여 탁 트인 전망은 없는편 이지만,

앞에 있는 낮은 대숲너머로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와 운치가 있습니다.

 

 

 

정자에서 내려오면서,

향정원과 너머로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전경이 들어 옵니다.

 

 

 

안동 권씨 종중의 정자로,

1800년대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유연정(悠然亭)의 뒷쪽도 돌아보고 나옵니다.

 

 

 

정자에서 나오는길에,

향정원에 다시들러 허락의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러 들렀더니,

 

 

 

운곡서원(雲谷書院) 일원을 관리하고 계시는 향정원이 바깓주인는,

단순히 차만 파시는게 아니라 그림도 그리시는듯 방에는 산수화가 가득 합니다.

 

 

 

안동권씨의 뿌리를 찾을수 있고,

갈산(葛山) 권종락(權宗洛)의 선조에대한 노력으로,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원형인 추원사(追遠祠)를 세웠으며,

조선후기의 단아한 건축양식으로 계곡위 용추대(龍湫臺)에 서있는 안동권씨 종중의 정자로,

경북 경주의 정자 문화재 "유연정(悠然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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