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의 아름다운섬 보길도를 여행하며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를 찾았습니다.

우암(尤庵) 송시열글쓴바위는 보길도의 선백도마을 앞 바닷가의 암벽을 말하며,

이곳은 조선 선조~숙종조의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왕세자 책봉문제로 관직이 삭탈되고 제주 유배길에 올라,

경치가 좋은 이곳에서 잠시 쉬며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시로 새기어 바위에 새겨놓은 것으로,

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83세 늙은 이몸이 /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한마디 말이 어째 큰 죄가 되어 / 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  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   초구에 옛 효종의 은혜 서려 있어 /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라고,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시로 표현하여 바위에 새겨 놓았습니다.

붓으로 세상을 움직인 노론의 영수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여번의 그의 이름이 등장해 조선을 "송시열의 나라"라고까지 칭할 정도로,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인물로 과거를 보지 않고 좌의정에 오르고, 영의정을 거부하고, 사약을 마시고 죽는 대역죄인이지만,

영의정으로 추증 되었고 성인에게만 부여되는 자인 "송자"라는 칭호를 받는 노론의 영수로,

생애 말년 1689년(숙종 15) 83세의 나이로 머나 먼 탐라(耽羅,제주도)로 가는 배에서 처량한 회후를 해야 했습니다.

글쓴바위는 보길도와 소안도 사이 해협으로 소안도가 손에 잡힐 듯이 바다에 떠있으며,

주변은 해조류가 풍부하고 해식애가 발달한 천혜의 바다낚시터로 주변 풍광이 뛰어나 산책으로도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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