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인 순천 선암사(順天 仙巖寺)를 찾았습니다.

 

주차장에서 선암사(仙巖寺)로 들어가는 길은,

데체로 완만하며 포장을 하지않은 길여서 산책삼아 거닐기에도 좋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제20교구 본사인 선암사(仙巖寺)는 사적 제507호로 지정 되었으며,

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습니다.

 

 

 

선암사(仙巖寺)로 향하는 길옆에는 많은 부도(浮屠)들과 비석들이 있어,

가장 많이 보이는 석종형 부도(浮屠)는 대체로 조선 후기에 많이 세웠던 부도의 형태이며,

 

 

 

선암사(仙巖寺)는 절의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丈)이나 되고 면이 평평한 큰 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옛 선인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여 이 바위에서 "선암(仙岩)"이라는 절이름이 생겼다고도 하며,

 

 

 

길을 따르다 보면 또하나의 부도전(浮屠殿)을 만나게 되어,

선암사(仙巖寺)는 창건된 이후 조선후기까지 호남지역에서 유력한 사찰이었고,

영향력 있는 승려들이 주석하였기 때문에 다수의 부도(浮屠)가 건립 되었는데 조선후기 승려들의 다양한 묘탑(墓塔)의 양식(樣式)을 보여주고 있는데,

부도전(浮屠殿)은 사찰로 들어오는 불도들에게 사찰의 역사와 위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불심(佛心)을 유도하기 위한 가람상에서의 의도된 배치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쓰였는지 알수 없지만,

네모난 석재들을 나열해둔 곳에는 작은 돌들이나 돌탑은 쌓아 두기도 하여 불심(佛心)을 표현 하는듯 하며,

 

 

 

보물 400호로 지정된 "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仙巖寺昇仙橋)"를 만나게 되는데,

 

 

 

선암사 승선교(仙巖寺 昇仙橋)는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돌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돌다리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를 만날 수 있으며,

 

 

 

다리앞에는 형제로 보이기도하는 옛사람의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고,

 

 

 

선암사 승선교(仙巖寺 昇仙橋)는 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로 경내에 이르는 시냇물을 건너기 위해 놓인 다리이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졌으며 결구가 정교하고 커다란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어 밑에서 올려다 보면 둥근 천장 같은 느낌을 주며,

기단부(基壇部)는 가설(架設)이 없고 자연 암반이 깔려 있어 견고한 기초를 이루고 있고,

다리의 아랫부분부터는 길게 다듬은 돌로 홍예(虹霓)를 쌓았으며 홍예를 중심으로 좌우 냇가와의 사이에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조성 하였고,

그 윗부분에도 돌을 쌓았는데 모두 주변의 냇돌을 이용 하였으며,

 

 

 

승선교(昇仙橋)는 임진왜란 이후 선암사를 중건할 때 가설한 것으로 전설이 전하고 있어,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護巖大師)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지게 되어,

대사(大師)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6년만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전하며,

다리 중심석 아래의 조그맣게 돌출시킨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승선교(昇仙橋)는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승선교를 건너 강선루(降仙樓)로 향하는 길목에는 커다란 암반이 있어,

 

 

 

암반에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암각되어 있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라는 일종의 진언으로,

이 여섯 글자는 원행이 구족하므로 이를 부르고 생각하면 왕생을 얻는다고 하며,

 

 

 

윗쪽에는 승선교(昇仙橋)로 암각된 글씨도 함께 있어서,

승선교의 표지석 역활도 하는듯 합니다.

 

 

 

선암사의 문루(門樓) 역할을 하는 강선루(降仙樓)는 팔작지붕의 누하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2층은 가늘고 낮은 기둥을 사용하여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구성상부에는 계자난간을 둘렀으며,

강선루는 누정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흥성으로 많은 사찰에 누정이 건립되었는데,

이는 숭불(崇佛)의 존엄과 불교의 융성을 보이고자 하는 뜻에서 건립한 불교의 누정으로 대부분 사찰과 달리 문루가 일주문 밖에 있게 두어,

외부의 방문객들이 시주를 나누고 만남의 장소로 사찰의 배려로 배치되어 있어 승선교(昇仙橋)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약간의 오르막을 만나는곳에 영지(影池)로 보이는 연못이 있어,

영지(影池)는 절 입구에 조성하여  일주문 가까이에 있는경우가 많으며,

수행자들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에 이르기를 묵언으로 촉구하고 있어서,

마음이 맑고 고요하면 삼라만상의 이치를 볼 수 있는 깨침의 경지가 되어서 영지에 비친 경관을 보는 것은,

곧 마음의 바탕인 불성(佛性)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연못이 출렁이면 주위경관을 볼 수 없듯이 마음이 산란하면 불성을 관할 수가 없어서 선(禪)과 영지(影池)가 연결되어 있으며,

사찰의 영지는 원래 물고기를 풀지 않았는데 그들이 어지러이 헤엄치고 다니면 물 위에 뜬 그림자들이 흐트러지기 때문 입니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산사의 건물들이 보이고,

길옆에는 낮은 키의 야생 차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차밭이 있으며,

 

 

 

차밭과 함께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아름드리 삼나무 숲을 지나면 만나게되는 선암사(仙巖寺)의 일주문으로,

 

 

 

일주문으로 오르는 계단앞에 있는 석물이 사찰을 수호하듯 앞을 향하고 있습니다.

 

 

 

산문을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범종루로,

선암사(仙巖寺)는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여 선암사(仙巖寺)라고 하였으며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는데,

도선 국사가 남방비보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와 함께 선암사를 창건했다고 하며,

1088년(선종 5) 의천(義天)이 중창하였으며 선암사에 의천의 영정이 있는 까닭은 이러한 인연 때문이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석종(石鍾)·철불(鐵佛)·보탑(寶塔)·부도(浮屠)·문수전(文殊殿)·조계문(曹溪門)·청치(圊廁) 등은 다행히 화를 면하고,

나머지 건물은 모두 병화에 소실 되었는데 정유재란에 불타기 이전의 선암사(仙巖寺)에는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1660년(조선 현종 1)에 경잠·경준·문정이 재건을 시작하며 1698년(숙종 24)에는,

호암 약휴선사가 원통전을 짓고 그 안에 목조관음보살상을 봉안 하였으며,

1701년에 불조전이 완성되었고 대웅전의 개수 및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 졌으며,

181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중건했고 1823년 다시 화재가 나자 해붕 등이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내로 들어오면 만나게되는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順天 仙巖寺 東·西 三層石塔)"으로,

높이 4.7m의 크기로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에 동서로 있는 2기의 석탑으로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며,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을 잘 계승하고 있는 9세기경에 세워진 석탑(石塔)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층석탑을 마주하고 있는 순천 선암사 대웅전(順天 仙巖寺 大雄殿)은 보물 제1311호로 지정 되었으며,

선암사의 중심법당인 대웅전(大雄殿)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고,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지어졌는데 기둥머리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였고,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며 공포를 앞뒤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 내었습니다.

 

 

 

대웅전(大雄殿)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모시고 있고,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의 내부공포 구조에서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으며,

공포는 외3출목, 내4출 목, 다포계의 일반적 수법을 따랐지만,

정면 기둥 머리에 용머리장식의 안초공 수법과 건물 내부에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지만,

정면 기둥머리에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 수법과 건물 내부에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계보를 이룬 부안의 내소사대웅보전(보물 제291호), 개암사 대웅전(보물 제292호)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화려한 건축양식과 가구의 수법 및 포작의 장식성이 뛰어나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대웅전의 초석은 특이하게도 자연석의 큰 암반에,

화감암의 필요한 부분을 깍아내어 주초와 벽이 하부를 받치고 있으며,

 

 

 

대웅전의 정면에는 모두 궁창판이 있는 4분합의 빗살문을 달아 두었는데,

빗살문의 문양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대웅전앞 오른쪽에는 승방인 맞배지붕의 설선당(說禪堂)이 있고,

 

 

 

왼쪽에는 선암사 하선방으로 불리는 심검당(尋劍堂)으로,

"ㅁ"자형의 구조로 된 건물로 스님들의 선(禪)을 지도하고 수행을 위한 공간이며,

 

 

 

대웅전 앞에서 심검당(尋劍堂)으로 들어가는 디딤돌과 나무마루가 눈에 들어 옵니다.

 

 

 

대웅전옆 서편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있어,

 

 

 

지장전(地藏殿)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협시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그리고 좌우에 시왕(十王)이 모셔져 있으며 선암사 경내에 있는 전각 중에 가장 화려한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대웅전 뒤에도 여러 전각들이 있어,

 

 

 

대웅전 뒤쪽의 중심축선상에 팔상전과 나란히 하고있는 불조전(佛祖殿)으로,

 

 

 

불조전(佛祖殿)은 과거 7불과 미래 53불, 즉 60분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1699년(숙종25) 호암, 약휴스님이 세웠고 1761년(영조37)에 상월과 새봉스님이 중건 하였다고 하며,

 

 

 

불조전 옆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전각 이지만 그리 작아보이지 않는 "조사당(祖師堂)"이 있어,

 

 

 

조사당(祖師堂)에는 중국에 선을 전한 달마조사(達摩祖師)를 비롯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 마조도일(馬祖道一) 등의,

중국의 5대선사의 진영과 태고종의 종조인 태고 보우국사 (太古 普愚國師)와,

선암사의 선을 널리 알린 침굉현번선사(枕肱 懸辯禪師,1616~1684) 등의 진영을 모신 전각이며,

 

 

 

대웅전 뒤 불조전 옆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된  선암사 팔상전(仙巖寺 八相殿)이 있어,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팔상도라 하며,

아미타부처님을 주존 으로 모시고 뒤에 화엄탱화가 있고 양 측면에는 팔상도가 봉안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33조사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뒤편에는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된 "원통전(圓通殿)"이 있어, 

1660년(현종 1) 경잠(敬岑)·경준(敬俊)·문정(文正) 등이 초창하여 1698년(숙종 24)호암(護巖)이 중창하였고,

1824년(순조 24)해붕(海鵬)·눌암(訥菴)·익종(益宗) 등이 재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원통전(圓通殿)은 동남향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丁"자형 건물로,

정면에 2개의 기둥과 2개의 활주(活柱)를 내어 처마선을 길게 돌출 시켰으며,

내부는 내진(內陣)과 외진(外陣)으로 나뉘어 내진의 배면 한쪽을 막아 불상을 안치하는 불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내진간의 배면 이외에는 모두 문이 있었다고 하며,

 

 

 

원통전의 어간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으로 중앙 2짝을 모란꽃살창호로,

양쪽짝을 금강저빗살창호로 되어 있으며 탐스럽게 활짝핀 모란꽃과 꽃봉오리의 문양이 화려합니다.

 

 

 

원통전(圓通殿)의 내부는 내진과 외진으로 나누어,

내진의 삼면을 벽으로 구성하여 관음보살좌상(音菩薩坐像)을 봉안하고 있으며,

 

 

 

조선 제 22대 왕 정조(正祖)가 후사가 없자 선암사 눌암대사에게 100일 기도를 부탁하여 순조 임금을 얻게 되었는데,

후에 순조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人(인)", "天(천)", "大福田(대복전)"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 하였고,

건물 내부에 걸려 있는 대복전(大福田)의 현판을 볼수 있습니다.

 

 

 

대웅전뒤 서편의 담장앞에 있는 장경각(藏經閣)으로,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름 그대로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로,

 

 

 

원래 장경각(藏經閣) 은 판전이라는 이름으로 팔상전 옆에 위치 하였으며,

장경각의 원래 명칭은 성수전으로 왕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전각 이었다고 합니다.

 

 

 

장경각 옆에는 장방형의 연못 한가운데 둥근 섬이 떠있는 형태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나타내는 연못이 있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의미는 "하늘의 덕성은 원만하고 땅의 덕성은 방정하다는 의미"이며,

그뿌리는 삼한시대 이전으로 5,000년이 넘는 뿌리를 가지고 있는 고유의 사상 이기도 합니다.

 

 

 

대웅전뒤 돌담길에는 250년에서 650년 전통매화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선암매를 비롯하여 20여그루의 매화를 볼수 있는데,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어 3월 중순은 되어야 매화꽃을 볼수 있을듯 하며,

 

 

 

어느 사찰보다 고즈넉하고 고찰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으로,

눈이 날리는 겨울 산사의 아늑함을 찾을수 있었던 전남 순천의 선암사(仙巖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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