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함평을 여행 하면서,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에 있는 함평공원을 찾았습니다.

 

기산공원으로도 불리는 함평공원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본 신사(神社)가 세워지며 조성 되었고,

1977년에 군민의 휴식처로 재조성 되었고 1982년 함평공원을 기산(箕山)으로까지 확대하여 공원화하는 사업이 추진되어,

1998년 팔각정 신설공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작은 공원이지만 살아 있는 역사 박물관으로,

함평읍 중앙에 위치해 있있어 함평읍민들의 쉼터가 되고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공원 입구에서 볼수있는 함평천의 노거수 왕버들나무로,

함평공원 근처는 기산영수(箕山潁水)라고 불려오고 있어 이 지명은 중국 요임금 때 세상의 권력을 등지고 살았던,

소부와 허유가 살던 중국 하남성 동봉현의 전설적인 땅인 기산영수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종 2년에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이 마을에 거주하였던,

함평이씨 이안(李岸:1414∼?)을 비유하여 기산영수(箕山潁水)라는 지명이 지어졌다고 하며,

 

 

 

함평(咸平)이라는 지명은 조선조 태종 9년(太宗.1409)에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을 통합하면서,

함풍에서 "함(咸)"자를, 모평에서 "평(平)"자를 따 "함평(咸平)"이라고 했으며,

함평은 예부터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되었고 특히 쌀맛이 좋고 질이 좋아,

"함평쌀밥만 먹은 사람은 상여도 더 무겁다"라는 속담이 나올정도 였다고 합니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에는 "5·18 민중항쟁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고,

 

 

 

길을 따라서 서있는 많은 비석들이 있어,

1976년 공원화사업의 일환으로 관내에 부임해 다녀간 목민관·의병·반공투사 등의 22개 비석을 모아 한곳에 자리해 두어,

당시 군청 후정에 방치되어 있던 선정비 목민관비 등을 한데 모아 세운 것으로 연도별로 나열되어 있어 함평의 역사를 알수있게 해두었고,

 

 

 

비석군 앞에 안내문이 있는 "함평 척화비(咸平 斥和碑)"는 문화재자료 제 17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양인을 배척하기 위하여 종로 네거리를 위시한 전국 교통 요충지 200여 개소에 세운 비석(碑石)중에,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30곳의 척화비(斥和碑)중 하나로,

함평 척화비(咸平 斥和碑)는 남아있는 척화비들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크며 전라남도 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개화기의 유물 이기도 합니다.

 

 

 

비석군을 지나다 보면 언덕위에 정자의 모습이 들어와,

 

 

 

세심정(洗心亭)으로 1907년에 은율군수를 역임한 이동범(李東範. 1869 ~1940)이 건립한 정자로, 

1977년에 중수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방을 들이지 않은 누각형태의 정자로,

 

 

 

해서체로 쓰여진 "세심정(洗心亭)"의 현판으로,

세심(洗心)은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다”란 의미이며,

 

 

 

정자의 왼쪽에 있는 나무계단을 통해 누마루로 올라봅니다.

 

 

 

세심정(洗心亭)은 판소리 명창였던 고 임방울(林芳蔚,1905~1961)선생이,

이곳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판소리 공연을 한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정자 안에는 시문(詩文)이나 기문(記文)등의 아무런 편액은 보이지 않고,

 

 

 

천정의 들보에는 상량의 글씨만 보이고 있습니다.

 

 

 

겨울철 여서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서 인지 정자는 비둘기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어,

 

 

 

세심정(洗心亭)의 우물마루를 마음껏 더렵혀 놓고 있고,

 

 

 

세심정(洗心亭)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으로,

팔각정자인 영선정과 영수천으로도 불리는 함평천과 읍내의 모습이 들어오고,

 

 

 

정자의 마루에서 바라보는 절경이 아름다워 이 곳의 절경을 예찬한 시(詩)인 "세심팔경"이 있을 정도라 하며,

세심정(洗心亭)은 봄에 벚꽃 휘날리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 한다고 전하지만 한겨울의 정자는 화사한 봄을 기다리는듯 조용하기만 합니다.

 

 

 

세심정(洗心亭)에서 내려와,

정자의 주변을 돌아 봅니다.

 

 

 

정자 뒤편에 있는 한말에 일제의 침탈에 항거하여 의병을 일으켰던 죽봉(竹峯) 김태원(金泰元,1870~1908) 장군의  비석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별명은 김준(金準) 또는 김참봉이며 자는 태원(泰元) 호는 죽봉(竹峰)으로 전라남도 나주 출신이며 의병장 김율(金聿)의 형으로,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지냈으며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동학에 투신 하였고,

1906년 동생 김율과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고창·영광 등지에서 활약 하였으며,

이듬해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 가담하여 선봉장이 되어 나주·함평 등지에서 활약 하였고,

1908년 1월김율과 합진하여 동복(同福) 무동산(舞童山)에서 요시다(吉田勝三郎) 기병부대 150명과 접전하여 요시다의 목을 베었으며,

이때 담양추월산성(秋月山城)에서 총상을 치료중이던 기삼연이 붙잡혀 광주에서 총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호남의소(湖南義所)라고 부대이름을 바꾸어 일진회원, 밀정, 자율단원 등을 처단하였으며 납세거부투쟁을 유도하였고,

1908년 5월 장성(長城) 토물(土泉) 뒷산에 성을 쌓고 전투를 벌였으며 광주어등산(魚登山)전투에서 전사 하였습니다.

1962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한쪽에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함평군 국가유공 무공수훈자 전공 기념비"가 있어,

6·25 전쟁과 월남전 참전의 무공 수훈자 56명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다고 적혀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둘러 보았던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에 있는 함평공원으로,

그리 크지않은 아담한 규모의 공원 이지만,

배어난 경치의 세심정(洗心亭)의 정자와 척화비를 비롯한 역사 유적을 살필수 있으며,

벚꽃이 만발하면 아름다운 풍취를 보여주는 곳으로,

인근에 역사유적인 영파정의 정자와 함께 함평의 유명한 육회 비빔밥과 더불어,

전남 함평을 여행 하시면 찾을만한 곳으로 함평공원과 세심정(洗心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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