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교동도를 다녀 오면서  연산군 유배지(燕山君流配地)를 찾았습니다.

조선조의 풍운아로 정치적 반대파를 잔혹하게 숙청하는 사화(士禍)를 일으키며 폭정을 일삼던 조선 10대 왕 연산군(燕山君,1476∼1506)이,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위리안치(圍籬安置) 장소이며,

이곳에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역질에 걸려 31살의 나이에 병사(病死) 했다고 알려진 곳으로, 

교동도유배문화관과 함께 당시의 가옥과 유배행렬의 모형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연산군 유배지(燕山君 流配地)와 관련하여,

연산군(燕山君)이 유배생활을 한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과거 유배지는 감시와 통제를 위해서 관청 인근에 있는 것이 보편적 였는데,

연산군이 유배 되었을 당시 관청은 읍내리가 아닌 고구리였기 때문으로 읍내리는 연산군이 죽은 지 120년 뒤에 새롭게 읍지가 된 곳이며,

지역주민들도 지난 2007년 "연산군유배지"라고 쓴 비석을 고구리에 세웠다고 하는데,

실제 유배지와 다르다는 주민 민원이 빗발쳐 실제 유배지를 복원한 건물을 다시 짓기로 하였다고 하니,

사실에 입각한 장소에서의 유배지 복원을 기다려야하는 아쉬움이 있는 곳으로,

강화 교동도의 "연산군 유배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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