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유교리 관동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과 정자인, 무안 유교리 고가(務安 柳橋里古家)와 침계정(枕溪亭)을 찾았습니다.

 

무안 유교리 고가(務安 柳橋里古家)는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무안 유교리 고택" 또는 "나상열가옥(羅相悅家屋)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중층으로 되어있는 대문채는 여느 집보다 천정이 훨씬 높은데,

대문이 크고 높은 것은 당시 그 집안의 재력과 세력을 과시함도 있는듯 합니다.

 

 

 

유교리 고가(柳橋里 古家)로 들어가면서,

안내문에 있는 건물의 배치도를 먼저 살펴 봅니다.

 

 

 

대문채에서 오른쪽의 담장을 따라 안채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중문채를 들어서면 오른쪽 윗쪽에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무안 나상열가옥"으로도 불리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부농저택 입니다.

 

 

 

수리를 하고 있는듯한 중문채는 1938년에 건립되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안채와 사이에 담장을 설치하여 신분상의 구별을 두었고,

 

 

 

안채를 마주하고 아랫쪽에는 너른 마당이 있는 곳간채가 있어,

곳간채는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건립 되었으며 낮은 기단 위에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큰 규모로 지어져 있는데 전면의 중심부 4칸에 각각 쌍여닫이문을 내고 있는데 일본식이 가미되어 있으며,

좌우 측면과 후면의 벽을 일본식으로 판벽으로 처리 하였습니다.

 

 

 

유교리 고가(柳橋里 古家)는 약 100년 전에 지은 남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부농주택으로,

1912년 당시 전남지방의 천석꾼이었던 나종만에 의하여 건립 되었는데,

나종만은 천석꾼으로 삼향과 일로, 몽탄 일대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여 주민들로부터“나씨 땅을 밟지 않고서는 목포에 갈 수가 없다”라고 할정도 였으며,

“나씨 집에 소가 어찌나 많던지 소의 코뚜레만도 한 짐이 될 정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부자 였다고 하며,

지금은 사랑채나 헛간채가 없어 확실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이 마을 부호의 집으로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안채는 지반의 경사를 이용해 제일 높은 곳에 동향하여 자리를 잡았는데,

일자형(一字形)의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전후의 퇴(退)가 있는 큰 규모의 주택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큰방과 방 앞에 샛방과 부엌방이 있고 뒷쪽에는 넓은 부엌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작은방과 사랑큰방, 사랑샛방 작은방이 자리해 있으며,

대청은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중심부에 좁게 한 칸만 만들었고 광 상부에 2층 다락이 가설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가장 오른쪽 1칸을 제외하고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려면 지형의 정지상 바깥마당과는 2단으로 석축을 한 후에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어,

2단으로 되어 있는 돌계단을 올라야 하며,

 

 

 

안채의 구조는 일고주오량(一高柱五樑)으로 주심도리는 굴도리로 기타는 납도리로 구성하고 있으며,

부엌과 대청 사이에 안방이 있고 동쪽 끝부분에 건넌방이 있는데 건넌방은 상하로 나누되 윗방의 전면에 작은 툇마루를 설치 하였고,

앞마루 전면에 세운 기둥은 모두 원주(圓柱)로 했으나 그 밖의 기둥은 방주(方柱)로 하였으며,

 

 

 

안채의 대청은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중심부에 한 칸만 잡고 있어 좁은 편으로,

대청 옆의 한 칸을 고방으로 하였고 상부에는 다락을 두었고,

서북쪽에 있는 부엌은 상당히 넓어 두 칸을 툭 터서 쓰고 있으며 서쪽 벽으로 반 칸을 달아 조그마한 찬광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전퇴는 동쪽의 한 칸을 제외한 전면에 설치되어 넓고 시원하게 처리되어 있으나 후퇴는 중심부의 세 칸에만 설치하고 있습니다.

 

 

 

유교리 고가(柳橋里 古家)의 건축 양식은 양옥의 건축기법으로 건립되었는데,

20세기 들어와서야 남도지방에서 채택한 구조법을 사용 하였고,

전체적으로 임좌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비교적 경사가 급한 지형을 3단으로 잘 정지한 후에 건물들을 배치하였습니다.

 

 

 

안채의 서편 뒷쪽에는 우물이 있어,

도르레로 물을 길어 올렸슴을 알수있고,

 

 

 

장독대엔 요즘은 구하기 힘든 커다란 옛 장독들이 자리해 있으며,

 

 

 

안채의 뒤편에는 산아래에 굴을 파고 저장고로 사용했을 또다른 창고도 보입니다.

 

 

 

유교리 고가(柳橋里 古家)는 전체적으로 보아 상당히 넓은 대지 위에 여러 채의 집들이 세워진 대가이며,

현재는 안채와 곡간채, 그리고 행랑채, 대문간 등 4채 만이 남아 있으나,

그 이전에는 당시 주택건축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동재와 서재가 안채 뒤, 후원에 독립적으로 건축되어 있었으며,

사당과 사랑채 등의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교리 고가를 나와 마을앞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의 침계정(枕溪亭)에도 들러 봅니다.

 

 

 

정자 곁에 있는 침계정(枕溪亭)의 표지석으로,

향토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슴을 알려주고 있고,

 

 

 

침계정(枕溪亭)은 정자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관동마을 앞을 지나는 계류에 바로 면하여 자리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약 84년 전인 1936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 안쪽에 걸려 있는 침계정(枕溪亭)의 현판으로,

침계(枕溪)는 "계곡을 벼개 삼았다" 라는 의미 이기도 합니다.

 

 

 

정자의 기단은 별도로 없으며 초석은 자연석을 두고 원주를 올렸고,

 

 

 

정자는 방을 들이지 않은 우물마루의 누마루만 있는 형태이며,

 

 

 

정자의 뒷면에는 일정한 높이로 칸막이로 막아 놓아,

내부에 있는 사람이 후면에서는 보여지는 것을 막아두어 특이하며,

 

 

 

침계정(枕溪亭)은 5량가구에 합각을 와편 쌓기로 마무리 했으며,

화려하지 않은 간결한 모습의 굴도리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정자 내부에 있는 현판 윗쪽에는,

상량보에 쓰여진 상량의 글씨가 있어 쓰여진 기록은 병자년으로 되어있으니,

병자년는 1936년에 해당되어 유교리 고가(柳橋里 古家)의 중문재 등의 건립시기와 비슷하여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정자의 뒤편에 판재로 막아둔 곳에도 쪽마루를 설치해두어 잠시라도 걸터앉아 쉴수 있도록 해둔 모습으로,

유교리 고가(柳橋里 古家)와 침계정(枕溪亭)의 답사를 마무리 합니다.

 

 

 

일제 강점기 호남 남부지역의 부호로 커다한 부를 누렸던 나종만의 저택으로,

경사진 곳에 넓게 자리하여 남아 있는 안채와 곳간채의 규모 만으로도 당시의 부를 짐작해 볼수 있으며,

관동마을에 함께 있는 마을의 정자인 침계정(枕溪亭)과 더불어 돌아본 곳으로,

전남 무안 일제강점기의 고택인 무안 유교리 고가(務安 柳橋里古家)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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