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리 지방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정읍 고부의 군자정(君子亭)을 찾았습니다.

 

군자정(君子亭)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33호으로 지정 되었으며,

예로부터 고부마을의 운세와 얽혀있는 설화가 전해오는 연정(蓮亭) 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군자정(君子亭)은 주변을 둘러 파서 연못 안에 작은 섬을 만들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어,

정자로 들어가려면 작은 돌다리를 건너야 하며,

 

 

 

화강암의 판석(花崗岩 板石)으로 걸쳐 놓은 3칸의 돌다리로 건너 들어가야 합니다.

 

 

 

3칸의 돌다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로 정교하게 놓여져 있고,

 

 

 

군자정(君子亭)의 창건연대는 불확실하나 다른 이름으로는 연정(蓮亭)이라고도 하는데,

원래부터 연못으로 둘러 싸인 정자로 고부지방 선비들이 음풍영월(吟風詠月)하던 곳으로,

1673년 군수 이후선(郡守 李厚先)이 연못을 고치고 정자(亭子)를 보수(補修) 하였다고 전하며,

그 후 영조(英祖) 40년(1764) 군수 이세형(郡守 李世馨)이 중건하였으나 퇴폐하여,

1900년에 조규희(趙珪熙) 군수가 연못을 수축(修築)하고 군내(郡內) 인사(人士)들로부터 모금 (募金)하여 정자(亭子)의 중건(重建) 공사(工事)를 시작하여,

1905년 이창익(李昌翼) 군수 때에 완공 하였다 하며,

1910년 일본인(日本人) 소학교(小學校)가 이곳에서 개교(開校)되었으며,

그 뒤 1926년 학교 이전으로 인하여 1927년 불하(拂下)하게 되자 진사(進士) 은성우(殷成雨)가 불하(拂下)받아,

은씨 문중(殷氏門中)에 기증(寄贈)하여 주민들에게 개방(開放)되어 사정(射亭)으로 이용되었으며 이후에 여러번 보수(補修)하여 유지(維持)되어 왔습니다.

 

 

 

군자정(君子亭)의 전면에는 주련(柱聯)이 있어, 

春深道嶽華千樹  鳳凰台上晴風色   봄은 도악(道嶽)이 깊으니 모든 나무에 꽃이 피고/ 봉황대 위에 안개가 가시고

月出斗峰夜二更  霜雪飽經松骨冷   달이 두승산에 오르니 밤이더라 / 서리눈이 많이 내리니 푸른솔이 차고

琴鶴樓前暮鼓聲  烟因掃盡竹心淸   금학루(琴鶴樓) 앞에 해저문 북소리로다/ 안개가 거두었으니 푸른대가 맑도다

 

 

 

군자정(君子亭) 앞에는 선정비와 불망비들이 놓여 있어,0

 "정읍 고부리 비석군 (井邑古阜里碑石群)"으로,

 

 

 

1993년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조선시대 관찰사·군수들의 선정비를 군자정 경내에 모아 두었는데,

그중 8기는 군수들의 선정비로 군수 허우현 선정비와 1869년의 군수 조용희 영세불망비가 있고,

군수 박규동 게보혁파 영세불망비 등과 함께 1698년의 병마절도사 변국한 군민청간 선정비와,

1843년 건립한 관찰사 서기순 청백혜덕 영세불망비 등이 자리해 있습니다.

 

 

 

정자 앞에는 노거수 향나무가 몸을 비틀듯 자리해 있는데,

옛날에는 노송 두 그루가 있어 한 그루는 연못을향해 누어 있고 한 그루는 정자의 처마의 아래를 덮어 연정(蓮亭)의 정취를 한 층 돋구었다고 하는데,

소나무는 1920년경에 말라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군자정(君子亭)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정자로는 제법 규모가 큰편에 속하며,

호남지역 정자의 전형적인 배치인 가운데 방을 두고 있고,

오른쪽에는 마루 위로 누각식의 높은 마루를 만들어 놓았으며 뒤편에는 여닫이문을 달아 주변 경치를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가운데 있는 방앞에도 좁은 마루를 두었는데,

디딤돌을 통하여 마루로 오르면 좁고 길게 마루를 한단 낮게 해두어 신발을 벗어 두는곳 으로도 보이며,

 

 

 

군자정(君子亭)의 현판으로 구한말 서예가 백천(白川) 김상원(金商源)의 글씨이며,

연정(蓮亭)이 군자정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주렴계(周廉溪,주돈이:1017~1073)의 애련설(愛蓮說)에 나오는, "연(蓮)은 꽃의 군자(君子)니라(蓮花之君子者也)"에서 명칭이 유래 했다고 전하며,

 

 

 

이곳 군자정(君子亭)에는 전해 내려오는 향운설화(鄕運說話)가 있어,

조선 중엽이후 고부 군수들이 부임하면 1년이 못되어 좌천이 되거나 파직되여 갔으며 뿐만 아니라,

고부 고을에 인재가 나오지 않아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연정이 황폐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어,

1673년(현종 14)에 당시의 군수 이후선(李厚先)이 연못을 파내고 정자를 개수하니,

홍백(紅白)의 연꽃이 스스로 피고 과거에 급제하는 인재가 계속 나왔다고 하며,

 

 

 

이 지역의 또다른 향운설화(鄕運說話)로는 신임 군수의 부임하는 길에 따라서 군수의 관운이 좌우된다는 전설도 있으며,

또한 향교의 자리가 군관아(郡官衙)보다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고장의 운이 막힌다는 설이 있어,

지방 유림들의 발의로 영조 41년(1765)에 동헌을 지금의 고부초등학교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가운데 방을 두고 왼쪽의 마루를 안쪽에 한단 높여 조금 높게 만들어 놓았고,

 

 

 

오른쪽 마루의 모습으로 위로 좀더 올려서 누각식의 높은 마루를 만들어 두어,

 

 

 

양쪽의 마루 모두 조금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둘러보기 위해서 마루를 올린듯 하며,

옆면에는 판문을 달아두어 연지의 전경을 조망하는데 또다른 묘미를 즐길수 있도록 해두어,

평범해 보이는 정자 이지만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는듯 합니다.

 

 

 

군자정(君子亭)에는 여러 현액시(懸額詩)들이 있어,

인곡(寅谷) 은동진(殷東振)의 시판(詩板)으로,

橋若浮槎亭若蓬 椅花荷葉疊稠中     돌다리는 뗏목이은 정자는 봉래로다 / 연못에 꽃과 잎이 첩첩히 무성하다

峯頭遲上三更月 洞口時來一經風  달은 산봉우리에 더디 오르고 / 바람은 동학에 불어오다

伊昔見稱多士力 方今記頌故侯功    여러 사람이 힘을 칭찬한다 / 고을 원님의 공덕을 칭송 하다

題詩爲愛增顔色 粉白粧紅盡木龍   시를 써서 사실의 빛을 더 하니 / 분을 발라 화장 한 그림 같도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가을에 가산(可山) 은희형(殷熙熒)의 현액시(懸額詩)로,

翼然高閣以孤蓬 蓮唱菱歌鏡面中   날듯 한 높은 누각은 봉래 같고 / 연못가에서 노래하니 얼굴이 물에 비치네

五月江深無夏日 十洲霞落又朝風   물이 깊어 여름에도 더운날이 없고 / 십주의 안개는 아침바람에 쫓기네

試筆君子從觀德 感頌賢侯己施功   시합하는 사수들은 관덕으로 하며 / 중수한 원님의 공덕을 칭찬하네

六一亭題何處在 獨余拾倚簾木龍   육일정 기록은 어데 있는가 / 홀로 창문에 기대고 슬퍼하네

 

 

 

1937년 호정(湖亭) 은성숙(殷成淑)의 시문(詩文) 편액이며,

池閣宛如蓬 飄然在水中     못과 정자는 완연 봉래 같다 / 물 가운데 바람에 날리는 듯 서있네

春華冬白雪 秋月夏淸風     봄에는 꽃이요 겨울에는 눈이며 / 가을에는 달이요 여름에는 바람이라

所習惟觀德 其爭不論功     오직 활을 쏘기를 연습하고 / 경쟁하되 공의 대소는 가릴 수 없다

聊將四時景 吟罷更題木龍  사시로 경치가 좋아 / 시를 읊으고 다시 글을 쓴다

 

 

 

2기의 현액시(懸額詩) 편액이 올려져 있으며,

 

 

 

군자정(君子亭)에는 시판(詩板) 외에도,

정자를 수리하면서 힘을 보탠 이들의 명단이 있는 편액(扁額)이 있고,

 

 

 

정자를 수리를 하면서 올린 또다른 편액으로,

명단에는 은씨(殷氏)의 성씨가 많이 보여 1927년 이후 은씨 문중(殷氏門中)의 주관으로 보수(補修)하며 올린 편액으로 여겨 지며,

 

 

 

또 하나의 명단이 있는 편액으로,

역시 은씨(殷氏)의 성씨가 많이 있어 1930년대의 것으로 여겨지며, 

군자정(君子亭)에는 의외로 명단의 편액이 많습니다.

 

 

 

1937년 경운(耕雲) 은이철(殷以澈)이 쓴 기문(記文) 편액이 있고,

 

 

 

1936년 은치형(殷致炯)의 군자정기(君子亭記)의 기문(記文)이 있으며,

 

 

 

또다른 "군자정기(君子亭記)"의 기문(記文) 편액(扁額)이 있으며,

 

 

 

군자정중건기(君子亭重建記)의 편액(扁額)과,

 

 

 

또 다른 군자정중건기(君子亭重建記)의 기문(記文) 편액을 볼수 있습니다.

 

 

 

군자정(君子亭)의 마루에서 연지를 비롯한 주변을 살펴 봅니다.

 

 

 

정자 앞에 모아둔  비석들은 조선조 이곳을 거져간 원님과 군수들의 선정비나 불망비 등으로,

몇기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부러져 있는 상태인데,

일부는 일제강점기때 다리로 사용되고 땅에 묻혔던 비석들을 모두 파 내어 군자정에 모아 놓았다고도 하며,

이곳에서 일어난 동학 농민운동때 부셔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군자정(君子亭) 연지의 연못의 역사는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자정(君子亭)은 날씨가 더워지는 7월에는 정자 주위에 아름다운 수목이 어우러지고,

물 위에 뜬 연꽃의 운치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수 있다고 합니다. 

 

 

 

전라북도 정읍의 문화재 탐방에서 찾았던,

정읍을 대표하는 정자로 고부지역의 향운설화(鄕運說話)가 전하며,

연꽃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정자인 군자정(君子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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