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인 "영사정(永思亭)"을 찾았습니다

 

영사정(永思亭)의 정식명칭은 "고양 경주김씨의정공파 영사정(高陽 慶州金氏議政公派 永思亭)"으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7호로 지정 되었으며,

영사정(永思亭)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 정자로 여길수 있으나 제사(祭舍)형 한옥이며,

 

 

 

영사정(永思亭)의 왼쪽에는 비석이 한기 우뚝 서있어,

"효간공 김주신 신도비(孝簡公 金柱臣 神道碑)"로 비(碑)의 높이는 253㎝이고 폭 96 ㎝이며 두께45㎝로,

김주신(金柱臣 : 1661~1721년)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하경(厦卿)이며 호는 수곡(壽谷)으로 숙종의 장인이며,

실학의 선구자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문인으로 1696년(숙종 22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이듬해 장원서별검이 되었고,

1702년(숙종 28년) 순안현령으로 있을 때 딸이 인현왕후가 되자 돈녕부도정이 되고 이어 영돈녕부사에 이르러 경은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도총관으로서 상의원제조 및 호위대장을 겸임 하였으며 저서로 수곡집(壽谷集)이 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입니다.

 

 

 

1826년(순조 26년)에 세운 비석으로,

비문(碑文)은 박종훈(朴宗薰)이 짓고 김이교(金履喬)가 썼으며 전(篆)은 김조순(金祖淳)이 썼으며,

6.25 전쟁당시의 이곳도 격전지 였는지 총탄 자국이 비석 군데군데에 나 있습니다.

 

 

 

다시 영사정(永思亭)로 돌아와 보니 대문은 닫혀있고,

대문의 오른쪽 윗쪽에 "영사정 복원 중수기(永思亭 復元 重修記)"의 기문(記文)이 있으며,

 

 

 

대문이 닫혀있어 주변을 살펴보니,

왼쪽의 일각문은 들어갈수 있게 해두어 들어오면,

건물은 마치 영남 북지역의 전형적인 형태인 "ㅁ"자형의 구조의 옆면이며,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가져온 자료 사진으로,

중수하여 복원 하기전의 영사정(永思亭)의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과,

 

 

 

영사정(永思亭)의 대문 안쪽에서의 모습으로 복원전의 모습으로,

300여년을 버티어 온 옛 건물로 원형이 그대로 살아 있었슴을 알수 있습니다.

 

 

 

대문채에서 보이는 복원하여둔 영사정(永思亭)으로,

영사정(永思亭)은 조선조 숙종 53년인 1709년에 지은 재사형 한옥으로 2014년에 해체하여 중건 되었으며,

숙종의 둘째 계비인 인원왕후(1687∼1757)의 부친 경은부원군 경주김씨 김주신(金柱臣, 1661∼1721)이,

아버지 김일진(金一振)을 위해 지은  제사(祭舍) 건축물이며 김주신은 숙종 임금의 장인이기도 합니다.

 

 

 

전면으로 보이는 3칸중 2칸은 마루인데,

1칸의 망을 포함한 3칸 모두 마루나 방 앞에 설치하여 접어서 들어 열수있게 만든 큰 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고,

 

 

 

문위에는 영사정(永思亭)의 현판이 올려져 있어,

당호인 영사정(永思亭)은 "영원히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남달랐던 김주신(金柱臣)이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사(祭舍)의 왼쪽은 방과 창고인 고방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고,

 

 

 

오른쪽에는 부엌과 고방으로 이어져 있어,

"ㄷ"자형으로 되어 있는 안채와 "ㅡ"자형의 행랑채가 나란히 놓여 위치하고 있어,

전체적인 집 모양을 보면 튼"ㅁ"자형의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전면의 왼쪽은 대청 마루에 비해 마루를 한단 더 올려 두었는데,

안쪽에 있는 온돌방에 불을 넣는 아궁위를 위해 마루를 올려둔 것으로 보이며,

 

 

 

마루 아래에 불을 넣는 아궁이의 모습도 들어 옵니다.

 

 

 

마루방의 문이 열려있어 안을 들여다 보니,

원래의 해체하여 복원 하다보니 원래의 목재와 새로운 목재가 함께 쓰였음을 볼수 있으며,

 

 

 

대청의 우물마루는 원래의 목재를 많이 활용한 모습을 볼수 있고,

 

 

 

대청마루 위 천장을 보면 한 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간직한 상량문이 있어,

희미해 보이지만 "세기축 사월초(歲己丑 四月初)"라는 문구가 있어 건물의 건립 연도가 1709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앞에 아궁이를 위해 한단 높여둔 좁은 마루가 있고,

 

 

 

마루 안쪽의 방을 들여다 보니,

작은 마루방으로 되어있어 제사에 필요한 제기등의 물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여겨지며,

 

 

 

오른쪽 쪽마루 안쪽 방이 있어 들여다 보면,

 

 

 

두개의 방이 미닫이 문을 경계로 하나로 연이어 있고,

 

 

 

안쪽에 있는 방의 뒷벽에는 길다란 벽장이 놓여 있으며,

 

 

 

방에는 불을 밝히는 등 인지 용도를 알수없는 물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마루 왼쪽의 방은 접어서 들어 열수있는 넌출문인 분합문(分閤門)을 두어 들어 올려둔 모습이 보이고,

대청의 뒷문은 2짝 판문인데 가운데 문설주(기둥)가 설치된 특이한 구조로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보기 드문 구조라 하며,

기둥과 기둥사이에 설치한 문틀과 아방의 짜맞춤이 마치 가구를 짜맞춘 듯 정밀하게 연귀맞춤으로 되어 있습니다.

 

 

 

왼쪽의 방은 2칸이 트여 있어 제법 너른 편이며,

마주 보이는 문을 열면 뒷뜰을 볼수있는 툇마루가 있으며, 

 

 

 

마루에서 내려오며 보니,

주춧돌과 디딤돌은 잘 다듬은 화강암을 두어 지체높은 사대부가의 건축물 였슴을 알수 있습니다.

 

 

 

부엌의 문도 열려 있어 들여다 봅니다.

 

 

 

영사정은 300여 년 전 민가의 건축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후기 경기도 민가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며,

영사정(永思亭)의 가장 큰 특징은 안채와 행랑채가 나란히 놓여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으로,

집 마당에 서면 사방에 위치한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어 영남 북부지역의 안채에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대문채를 겸하고 있는 행랑채도 들여다 보고,

대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안쪽이 보이지 않게 판벽을 막아두어 "之"형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어,

이러한 구조도 안채로 들어오는 문에서 많이 볼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며,

 

 

 

설명문에는 김주신(金柱臣)이 아버지 산소를 이곳 고양시 대자리에 모시고,

제향을 하기 위하여 세운 재사형 한옥으로 제사(祭舍)와 살림을 겸하였던 곳이라 하고 있으나,

명색이 김주신(金柱臣)은 숙종의 장인으로 부원군에 오른 인물인데,

사랑채 없이 안채에 마루 하나를 사이에두고 내외가 거처 했을것 이라는 상상은 하기 힘드는데,

이곳의 살림은 묘지기가 하고 김주신의 거처는 별도로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사정(永思亭)의 뒤편에서는 벽장을 지탱하고 있는 둥근형의 나무가 고식을 전하는듯 하고,

벽 가까이에 있는 낮은 굴뚝은 연기가 처마아레에 머물게 하여 해충 등을 막았던 선조들의 지혜가 배려되어 있는 모습 이기도 합니다.

 

 

 

영사정(永思亭)을 돌아 보고 나오는길에,

옆마당에 심어져 있는 감나무로 보이는 노거수가 제사(祭舍)를 지키듯 서있습니다.

 

 

영사정(永思亭)을 살펴보고 나와 처음의 대문 앞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마당 앞에는 옛부터 잇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연못이 있고,

 

 

 

연못 앞으로 앞산 너머 멀리에는 북한산의 삼각산이 희미하게 들어 옵니다.

 

 

 

고양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300년여년 전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제사(祭舍) 건축물 였으나 2014년 해체 복원하여 전통역사 문화의 교육과 체험공간으로 활용 된다는 곳으로,

김주신(金柱臣)의 효심을 전하는 경주김씨 의정공파(慶州金氏 議政公派)의 제사(祭舍)인,

경기도 고양의 영사정(永思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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