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위치한 화진포호 옆 바닷가에 있는,

"김일성 별장"으로도 불리는 "화진포의 성"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었으나,

김일성이 사용한 이후부터는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곳으로,

화진포 호수 동쪽에 위치한 낮은 산으로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고 하여 매 "응(鷹)'자를 써서 응봉(鷹峯)이라고 하는곳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화진포의 성을 관람 하려면 통합발권 1장으로 가능한데,

화진포 호수 주변에 있는 생태 박물관과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등을 함께 돌아볼수 있습니다.

 

 

 

주차장 바로 앞에는 푸른 동해바다가 있어,

 

 

 

바다 옆에는 조형물들이 있어 추억의 사진들도 남길수 있고,

 

 

 

화진포의 성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과 도로가 있는데,

계단을 택하여 오르다 보면,

 

 

 

해안가 산기슭에 위치한 화진포의 성은,

해방후 한국전쟁 이전까지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와 함께 여름 휴양지로 사용했으며,

공산당 간부들도 이용 했다는 곳으로,

 

 

 

계단을 오르다 보면 바닥에 표지가 있는 계단이 있어,

 

 

 

김일성은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휴양지로 화진포를 찾았다고 하며,

19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입구인 이곳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이곳에서 찍은 사진으로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화진포의 성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망명 건축가인 베버가 설계 및 시공하에 완공 되었고,

이후 선교사를 위한 예배당 및 셔우드 홀 박사 일행이 사용 했으며,

1945년 8월 15일 독립 후 38도선이 생기고 당시 고성군 전체 지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치하에 들어가면서,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 일가가 휴가를 이용해 이 곳에서 휴양을 즐겼던 곳으로 당시 김정일도 이 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 중 크게 훼손되어 고성군 남부 지역이 대한민국의 관할로 편입되면서,

1964년 육군본부에서 철거하여 재건축 후 군인휴양지로 이용되어 왔다가,

1995년 보수하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로 다시 지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 건물인 "화진포의 성"은 당시 건축물로는 제법 화려함이 엿보이며,

화진포 역사안보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화진포의 성"을 들어서면,

 

 

 

1층에는 제1 전시실이 있어,

 

 

 

동해 연안에 형성된 석호(潟湖) 가운데 하나로서 경관이 아름다워 강원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화진포호에 관한 내용으로,

동해안의 호수 가운데 최대 규모로 호수의 둘레는 16㎞에 달하며,

화진포 쪽에서 바라보면 그 형상이 거북이와 같다는 금구도(金龜島, 거북섬) 등을 알려주는 지형도가 있고,

 

 

 

"2대에 걸친 헌신"을 알려주는 "셔우드 홀"의 전시관이 있어,

 

 

 

"셔우드 홀"과 부인 "매리언 홀"의 이야기로,

캐나다인 선교사로 "푸른 눈의 성자"로도 불리는 셔우드 홀 박사는,

1932년 12월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시작하여,

결핵 치료와 퇴치를 위해 앞장서는 등 다양한 의료봉사를 실천 했던 인물이며,

 

 

 

믿음의 사람들로 불리는 "윌리엄 홀"과 여성 의료분야 개척자인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이야기로,

셔우드 홀의 아버지인 윌리엄 홀은 캐나다 출신으로 1889년 뉴욕 빈민가 무료진료소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로제타를 처음 만났고,

1891년 12월 의료선교사로서 첫 부임지 조선의 부산에 도착하며 조선에 온지 3개월 만에 의주까지 탐험여행을 떠나며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으며,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치료를 하며 평양개척 사역자로 헌신하며 많은 박해와 시련을 당해야 했는데,

1894년 청일전쟁으로 평양은 청일 양군의 격전지가 되어 신변을 걱정한 감리교 선교부에서 귀환하라고 했지만,

홀은 의사로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외면할 수 없다며 평양에 머물며 혼신의 힘을 다하던 중에,

과로와 발진티푸스 감염으로 1894년 11월 24일 사망 하였고,

아내 로제타 홀은 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조선을 복음화하기 위해 선교에 더욱 힘을 쏟았는데,

여자환자를 위한 광혜여원을 개원했고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를 세웠으며,

동대문부인병원(현 이화여대부속병원)과 경성여자의학교(고려대 의대 전신)를 만들었으며,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를 키우는 등 한국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도 일했던 인물 입니다.

 

 

 

한쪽에는 안보 전시관으로,

김일성의 정체와 독재체제 구축과정을 비롯하여 한국전쟁 도발과,

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도발만행 등 북한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린시절 이 곳에서 찍은 사진 등 관련자료 사진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1층의 전시관을 나와 계단을 따라 오르면,

 

 

 

2층에는 제2 전시관이 있어,

 

 

 

2층의 전시관에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비핵화 등과 관련한 화해 무드와 근자의 동향 등을 알려주고 있으며,

 

 

 

한쪽에는 옛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를 비롯하여,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 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물로 만들어져 전시 되어 있어,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여름 휴양지로 찾았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두어,

 

 

 

여러가지 소품들로 당시의 여름휴가의 모습을 상상해 볼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2층 전시관의 안쪽에는 전망관도 있어서,

 

 

 

이곳의 창을 열고 보면 송림이 있는 화진포 해수욕장과 화진포 해변에서 3백여m 떨어진 금구도(金龜島)가 조망되며,

금구도는 거북 모양을 닮은데다 가을철이면 이 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 노랗게 변해 섬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든다고 합니다.

 

 

 

2층 전시관에서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3층은 옥상으로 되어 있고,

 

 

 

옥상은 마치 성벽 위처럼 되어 있고 전망대가 있어,

 

 

 

왼쪽으로는 석호(潟湖)인 화진포호가 들어오고,

 

 

 

앞으로는 화진포 해수욕장과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의 푸른바다를 조망할수 있습니다.

 

 

 

화진포 호수 동쪽에 위치한 응봉(鷹峯) 자락에 자리하여,

2대에 걸친 의료봉사로 헌신했던 "윌리엄 홀"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찾을수 있고,

해방후 김일성의 하계휴양지 별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며,

화진포 호수 주변에 이승만(李承晩) 별장과 이기붕(李起鵬) 별장도 함께 있어 생태 박물관과 함께 돌아 볼만한 곳으로,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의 성"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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