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양복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객사인 "안성객사(安城客舍)"를 찾았습니다.

 

안성객사(安城客舍)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객사(客舍)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관사 또는 객관이라 하는데,

사신이 내왕할때 묵던 숙소로도 쓰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그 형태가 표준화 되어 전국에 360여개의 객사를 두었고,

구조는 중앙에 정청을 중심으로 동익사와 서익사를 두었고 누각을 두는 것이 일반적 입니다.

 

 

 

경기도 안성(安城)의 객사(客舍)는 구체적인 건립시기는 전하지 않고 있으나 고려 전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건축인 주심포 양식의 객사(客舍) 건물을 주건물 좌우에 붙어 뻗어나온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어,

주되는 건물이 중앙에 있고 양옆으로 부속사가 있는 날개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복원되어 있는  안성객사(安城客舍)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서헌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주관쪽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나 다른쪽은 팔작지붕을 이루며,

장대석쌓기 두벌대 기단 위에 주좌(柱座)를 쇠시리한 초석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워 공포를 주상에만 놓은 주심포식 건축 입니다.

 

 

 

좌익청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정청쪽은 맞배지붕이며 반대편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온돌방 2칸과 마루 2칸을 두었으며,

 

 

 

2칸의 온돌방에는 띠살창호에 앞에는 쪽마루를 두었고,

온돌방 옆에 바깥쪽으로 마루를 둔 좌익청으로,

 

 

 

안성객사(安城客舍)의 주심포식 포작은 본래 객사의 공포와 적심속에서 나은 구부재들에 의하여 다시 짠 것으로,

외2출목으로 기둥 웃몸에서 헛첨차를 내어 굽면이 사면인 소로를 얹어 굽면은 사면이고 굽받침이 있는 주두와 더불어,

끝이 쇠서로 되고 안으로는 보아지를 이루는 살미첨차로 결구 하였습니다.

 

 

 

중앙에 있는 정청(正廳)은 정면과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안성객사(安城客舍)은 전면에 창살을 세운 것도 이채로우며 살대로 짠 벽과 살창호들만을 설치하여 안과 밖이 서로 통하게 하였고,

 

 

 

정청(正廳)에는 백성관(白城館)의 현판이 걸려있어, 

"백성(白城)"은 통일신라시대 안성지역의 옛 지명이라고 하며,

 

 

 

정청(正廳)은 주심포양식의 배흘림이 약간 있는 건물로서,

기둥 높이에 비해 기둥 사이의 거리가 좁고,

가운데가 가늘게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기둥 가운데를 약간 굵게 하는 배흘림기법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어,

이는 해체·수리 때 조사한 결과 일제시대에 옮겨지면서 기둥 아랫부분이 잘려나가고 기둥 사이의 거리도 줄여져서 생긴 현상이라 하며,

 

 

 

안성객사(安城客舍)의 주심포양식의 밑면은 연화두형수식(蓮花頭形修飾)이 있어,

고려시대 말기의 주심포 건축인 국보 49호 수덕사대웅전(修德寺大雄殿)의 공포양식과 흡사 하다고 하며,

 

 

 

배흘림 기둥의 상부에 보와 연결되는 부분에,

나무로 깍아 올려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문양이 눈에 들어오며,

 

 

 

조선시대 안성군은 종4품 군수(郡守)가 고을수령으로 있었던 지역으로 전국의 군현중에서 중간정도 규모였다고 하며,

궐패를 모신 정청(正廳)은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익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청쪽은 맞배지붕으로 반대편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온돌방 1칸에 마루 2칸이며,

동,서헌의 대청은 아무런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고 온돌방에는 띠살창호를 달았는데,

 

 

 

전형적인 객사의 외형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의 지붕에서,

"와장승인묘안 숭정후육십팔년 을해(瓦匠僧人妙案 崇禎後 六十八年乙亥)" 라는 명문 암막새가 발견되어,

1635년, 즉 17세기초에 중수되었음이 밝혀져 이 건물의 축조연대는 14세기로 추정 된다고 하며,

본래 현 안성교육청자리에 있던 객사를 일제가 안성보통학교 교사로 사용하다가,

뒤에는 명륜중학교의 교무실로 사용하여오던 중 1995년 11월 새 교무실 신축계획에 따라 현위치로 이건하여 복원 하였습니다.

 

 

 

동헌과 서헌은 장대석 한벌대 기단 위에 다듬은 초석을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워 익공 하나로 결구한 초익공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1842년의 "경기지(京畿誌)"에 의하면 객사는 공해(公廨)인 동헌의 서측에 서 있고,

동헌(東軒) 12칸, 대청(大廳) 6칸, 중문(中門) 3칸, 서헌(西軒) 8칸, 외문(外門) 3칸, 행랑(行廊) 4칸, 경운정(鏡雲亭) 6칸의 규모 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전국에 360여개의 객사를 두어 관에서 괸리 하였던 곳으로,

전국 여러곳에서 남아있는 객사(客舍)들을 찾을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고려 주심포계 양식의 건물을 볼수있는 곳으로,

경기도 안성의 문화재 "안성객사(安城客舍)"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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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시 보개면 양복리 238-1 | 안성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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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2021.03.21 14:50

    건축 양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전반적인 역사적 의의와 쓰임새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기록해 주셔서 참 좋습니다.
    언뜻 들어본 적이 있던 객사란 것이 그런 것이었군요..
    호기심이 막 증폭됩니다..
    조선시대에 역사적으로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였을지.. 현장감 있게 알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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