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에 있는,

보은 고봉정사(報恩 孤峰精舍)를 찾았습니다.

 

보은 고봉정사(報恩 孤峰精舍)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 되었으며,

정사(精舍)는 대개 이름높은 선비가 벼슬길에 나서지 않거나 벼슬을 하다가 향리나 경승지에 은거 하면서,

 지역의 청소년들을 뽑아 학문과 수신의 도를 가르치던 일종의 사학교육시설 입니다.

 

 

 

고봉정사(孤峰精舍)로 들어가는 대문인 삼문으로,

 

 

 

정사(精舍)로 들어가는 삼문은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담장 너머로 기웃 거리며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고봉정사(孤峰精舍)는 조선 중기에 김정(金淨,1486~1520)이 고봉(孤峰)이라 칭하고 학문을 연마하고 즐기던 곳에,

최수성(崔壽城,1487~1521)이 고봉정(孤峰亭)을 세우고 은거 하였던 곳으로,

고봉정사(孤峰精舍)는 김정이 삼파연류봉(三派連溜峯)을 고봉(孤峰)이라고 하고 올라가 즐긴데서 비롯되었으며,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이후에는  병암(屛菴) 구수복(具壽福,1491~1535)이 이어받아 학문을 연마하고 강학(講學)을 행 하였으며,

그 뒤 정자가 낡자 구수복의 5세손인 구봉우(具鳳羽)가 퇴락해 있던 정자를 봉우리 아래로 옮겨 현재의 고봉정사를 지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고봉정(孤峰亭)을 세우고 은거하였던 김정(金淨,1486~1520)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2년(1507)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 이조정랑 등을 거쳐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 하였던,

사림의 대표적 인물로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를 위해 미신타파, 향약의 실시 등을 추진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사사 되었는데 후에 영의정에 추증 되었습니다.

 

 

 

고봉정사(孤峰精舍)의 동편 한쪽에는 충청북도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된 "능성구씨보갑(綾城具氏譜匣)"이 있어,

문중의 족보를 보관하던 족보석함인 능성구씨보갑(綾城具氏譜匣)은 전국에 두개 남아있는 족보석함으로,

능성구씨낙주가승(綾城具氏洛州家乘)의 판각을 영구히 보관하기 위하여,

1640년(인조 18)에 병암(屛菴) 구수복(具壽福)의 현손인 낙주(洛州) 구봉서(具鳳瑞)가 만들었으며,

유사시에는 지하에 매몰할 수 있도록 제작한 희귀한 화강암제 석함으로,

보갑은 하단 받침돌에 책을 쌓고 상단 덮개돌 안을 크게 홈을 파서 쌓아논 책들을 위에서 덮어서 보관하는 형태의 석함으로,

전란으로 피난을 가거나 할때 보관하는 방법 이라고 합니다.

 

 

 

고봉정사(孤峰精舍)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2단으로 쌓은 석축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정방형에 가까운 모양의 덤벙주춧돌을 놓고,

민흘림으로 된 둥근 기둥을 앞면에 4개 옆면에 3개씩 세워서 지었으며,

평면의 구성은 오른쪽에 온돌방, 왼쪽에 우물마루, 방과 마루 사이에 기둥을 둔 형식이며,

1981년 해체·보수하여 고봉사, 관리사, 창고, 삼문 등을 새로 지었습니다.

 

 

 

정사의 서편에 걸려있는 고봉정사(孤峰精舍)의 현판으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글씨로 알려져 있으며,

 

 

 

정사(精舍)의 서편에는 사당인 고봉사(孤峯祠)가 있어 최수성, 김정, 구수복 3인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981년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 되면서 정사를 해체하여 보수하면서 다시지은 건물로,

현판은 최규하(崔圭夏)가 쓴 휘호로 현판은 최수성(崔壽城)이  최규하(崔圭夏) 전대통령의 중시조라서 직접 써준 현판이라고 합니다.

 

 

 

김정(金淨)의 뒤를이어 고봉정(孤峰亭)을 세운 최수성(崔壽城,1487~1521)은,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시문·서화·음률·수학에 뛰어난 학자로 신진 사림파 학자로 조광조, 김정 등과 교유하였으며,

기묘사화 때 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자 관직을 버리고 유랑하던 중,

1521년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되어 사형 되었는데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어 강릉 향현사에 배향 되었으며,

최수성(崔壽城)의 뒤를 이은 구수복(具壽福,1491~1535)은 중종 5년(1510)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김정 등과 도의로써 사귀었으며,

1519년 이조정랑에 재직 중 역시 기묘사화에 휘말려 파직되었으나,

1533년(중종 28) 복직되어 구례현감으로 재직 중에 죽었는데 후에 부제학에 추증 되었으며 경학에 몰두하여 많은 후진을 양성 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봉정사(孤峰精舍) 앞에는 마로면과 청산면을 잇는 505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슴에도,

공해에 약해 요즘에는 보기힘든 토종 민들레인 "하얀 민들레"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충북 보은의 문화재 탐방에서 찾은 곳으로,

기묘사화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문정공 원정 최수성(崔壽城)이 건립하여,

문간공 충암 김정(金淨), 병암 구수복(具壽福) 등과 한때 시를 읊으며 강학 하던 곳으로,

관리하고 있는 구씨종중(具氏宗中)에서 문을 걸어놓고 관리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았으며,

문간에 개방을 위한 관리인의 연락처라도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곳으로,

충북 보은의 문화재 "고봉정사(孤峰精舍)"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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