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조선말기 대한제국시대의 누정인 "건계정(建溪亭)"을 찾았습니다.

 

건계정(建溪亭)은 거창과 함양을 이어주는 옛 3번 국도변에 찾을수 있는데,

 

 

 

정자는 상림리의 거창 위천 옆에 자리하고 있어,

구 도로에서 차를 두고 위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며,

 

 

 

건계정(建溪亭) 주변은 물이 맑고 시원하며,

주위의 경치가 좋아 거창의 지역민들의 휴양처로 알려져 있으며,

 

 

 

다리를 건너 건계정(建溪亭)으로 가는 길에는,

위천을 가로지르며 함양으로 향하는 새로 나있는 3번 국도의 다리가 지나가고 있으며,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사선대와 수승대를 지나,

씨악실 모퉁이를 휘감아도는 위천의 모습으로 황강으로 향하여 내려가고 있습니다.

 

 

 

건계정의 정식 명칭은 거창 상림리 건계정(居昌 上林里 建溪亭)으로,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57호로 지정 되었으며,

거창장씨(居昌章氏)들이 그들의 선조 장종행(章宗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05년에 정자와 보은재(報恩齋) 및 사적비를 세우고,

그들 성씨집단이 유래한 곳이라는 중국 건주(建州) 땅의 지명을 따서 건계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며,

지금의 건물은 1970년에 중건 하였습니다.

 

 

 

건계정(建溪亭)의 마루아래 기둥의 모습으로,

정자를 지을 때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모습 그대로 살려,

주춧돌과 기둥 길이로 조정하여 위치에 따라 정자기둥의 높이가 제각기 다른데,

"구배석(龜背石)"으로 불리는 자연암반 자체가 주추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건물로 위천(渭川) 유역의 반석 위에 세워졌으며,

주심포계 겹처마 합각지붕으로 경치를 감상하기 위하여 지어진 정자이므로,

정면 중앙의 배면칸에만 벽체를 구성했을 뿐 루 상ㆍ하부의 전체칸은 모두 개방되어 있으며,

자연암반 위에 축조하여 상부 하중에 대한 부담이 없으므로 기단과 초석없이 그대로 건립 하였습니다.

 

 

 

하천을 바라보는 정자의 전면에는 1905년에 올렸다는 건계정(建溪亭)의 현판이 있어,

건계정은 중국의 주돈이와 주자 두 사람의 염계와 자양을 본 딴 것으로,

시조인 장종행(章宗行)의 고향이 중국의 건주 였으므로 후손이 선조의 고향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말에 호남의 전우(田愚)와 쌍벽을 이룬 대표적 유학자이며 파리장서의 민족대표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붙인 이름이라고 하며,

 

 

 

오른쪽 뒤편에 나있는 돌계단을 타고 마루에 오르면,

많은 판상시문(板狀詩文)과 기문(記文) 편액들이 올려져 있어,

 

 

 

後孫 在春 謹稿(후손 재춘 근고)  후손 재춘 삼가 지음의 현액시(懸額詩)가 있어,

建溪亭子近溪成(건계정자근계성)     시냇가에 건계정을 지었으니

盡日登臨眼界明(진일등림안계명)     종일 올라 구경해도 시야가 밝다

鶴背靑山雲畔屹(학배청산운반흘)     학 뒤의 푸른 산은 구름 위로 솟았고

龍頭活水鏡中平(룡두활수경중평)     용머리 흐르는 물은 겨울처럼 잔잔하다

筆花照耀神工畵(필화조요신공화)     꽃 그려 밝게 비추니 신묘한 화공 솜씨요

石語流傳故國聲(석어류전고국성)     비석에 내력을 전하니 옛 나라 명성이라

肯構當年心力盡(긍구당년심력진)     정자를 짓던 해에 정성 노력 다 했으니

無窮感慕有時生(무궁감모유시생)     끝없는 추모 마음 때를 따라 생긴다

 

 

 

군수 이응익(李應翼)의 시판(詩板)인 知郡 李應翼 稿(지군 이응익 고)의 편액으로,

選日登亭興未闌(선일등정흥미란)     날을 골라 정자에 오르니 흥취가 안 끝나

溪山如此去將安(계산여차거장안)     산과 강이 이 같으니 이제 어디로 가나

爲官漸覺風流減(위관점각풍류감)     벼슬을 하려니 점점 풍류가 없어짐을 알겠고

在野寧嫌禮數寬(재야영혐예수관)     들에 있다고 어찌 만나는 인사를 싫어하랴

啼鳥穿林當酒席(제조천림당주석)     새소리 숲을 지나 술자리에 들리고

游魚吹浪上吟欄(유어취랑상음란)     물결일자 고기는 물속 난간을 헤엄친다

勉君努力前途進(면군노력전도진)     그대 힘써 노력하여 앞길로 나아가게

九仞全功一簣難(구인전공일궤난)     높은 산 온전한 공부는 쉽게 무너지기 어려우이

 

 

 

건계정(建溪亭)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지만,

건계정중수운(建溪亭重修韻)을 비롯하여 문중의 번영을 기원하고 축하한 판상시(板狀詩)와,

물길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명소를 찾은 시인 묵객들의 시액(詩額)들을 볼수있고,

 

 

 

건계정중수기(建溪亭重修記)의 기문(記文) 편액이 있고,

 

 

 

건계정실기(建溪亭實記)의 기문(記文)도 올려져 있으며,

 

 

 

1906년 양산 조정희(趙定熙)가 지은 건계정기(建溪亭記)의 기문(記文)도 편액(扁額)되어 있습니다.

 

 

 

조선말기에 세운 정자에 걸맞게 정자의 단청은 화려한데,

대들보와 종보 등에는 여러종류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청룡의 모습이며,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도 볼수있어,

주악천인상은 천인이나 천은 고운 소리를 지닌 가릉빈가(Kalavinka)를 비롯한 8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인 향신(香神) 건달바(Gandhava) 등을 말하는데,

삼국시대부터 보이는 우리나라의 주악상은 날개가 달리거나, 날개옷 자락을 날리거나,

아니면 그냥 보살 모습을 한 천인들이 사리기·불상·범종·불탑·승탑 등의 불교 유물에서 장엄과 공양 및 찬탄의 상징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어,

사찰 등에서 많이 볼수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정자의 기둥은 모두 원기둥으로 마련을 하였으며,

누각 위는 기둥에 의해 활동에 제한을 받지 않도록 중앙에 기둥을 생략 하였고,

누각의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정면 중앙의 배면칸에 낮은 벽체를 구성해 두었는데,

벽면에는 용맹스런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건계정(建溪亭)의 마루에서 보이는 풍광으로,

건너왔던 다리의 모습과 함께 황강으로 향하는 위천변의 전경이 들어오고,

 

 

 

사선대와 수승대를 지나 건계정(建溪亭)으로 들어오는 위천의 모습도 한눈에 잡힙니다.

 

 

 

건계정(建溪亭) 계곡은 역사, 지리, 군사상의 요충지로 자리 하였던 곳으로,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거창을 소재로 하는 글이나 문학소재의 대상에서 으뜸이 되었던 곳이며,

건계정(建溪亭)은 영천의 맑은 물 위에 꼬리를 담그고 거열산성을 향해 기어오르는 거북바위 등 위에 지어진 거창 장씨의 정자로,

 

 

 

건계정(建溪亭)의 주인이며 거창장씨(居昌章氏) 문중의 시조인 평보(平甫) 장종행(章宗行)은 중국 송나라의 인물로,

장(章)씨는 중국 하북성에서 계출된 성씨이며 고려 충렬왕(1240년)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했는데,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版圖) 판서(判書)를 거쳐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 겸 춘추관사(春秋館事)를 지낸 인물이며,

그의 아들인 장두민(章斗民)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들이 침입하여 개경까지 점령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군사들을 지휘하여 개경으로부터 홍건적(紅巾賊)을 몰아내어 국란의 위기를 극복한 무훈을 세우자,

이에 대한 공로로 공민왕이 거창의 별호인 아림(娥林)군(君)에 봉해 졌으므로 본관(本貫)을 거창(居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거창"하면 수승대와 함께 건계정을 생각할 만큼,

고풍스런 정자와 맑은 물이 굽어 도는 물길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명소로서 자리하고 있으며, 

조상의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지은 거창장씨(居昌章氏)의 정자인,

경남 거창의 건계정(建溪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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