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로의 여행에서,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재를 돌아보는것은 대부분 낮에 이루어 지지만,

야경이 아름다워 밤에 더욱 인기 있는곳이 있다면 "동궁과 월지" 입니다.


사적 제18호로 지정된 "동궁과 월지"는 한때 "안압지"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며,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 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의 중심 건물인 임해전(臨海殿)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였는데,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전설 속의 해중선산(海中仙山)인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를 상징하는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중국 사천성 동쪽에 있는 명산인 무산(巫山)의 12개 봉우리를 본따 돌을 쌓아,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집니다.

 

이 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함을 시(詩)로 노래하며,

이 곳을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를 써서 "안압지(雁鴨池)"라고 불렀다고 하여,

우리에게도 한동안은 안압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동궁과 월지는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과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 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는데,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를 엿볼수 있습니다.


경주를 여행하면서,

경주여행 중 야경의 제일로 꼽히는 곳으로,

"동궁(東宮)과 월지(月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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