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남원을 대표하는 사찰이며,

지리산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실상사(實相寺)를 찾았습니다.

 

실상사(實相寺)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남원시에 속해 있으나,

실제로는 경상남도 함양군의 마천면과 가까운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우리나라의 사찰이 대부분 산 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반하여,

실상사는 남원시 산내면의 들판 가운데 지리산에서 흘러 나오는 만수천을 끼고 자리한 것이 특이 합니다.

실상사(實相寺)로 들어가는 길목인 만수천 옆에는,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실상사 석장승(石長栍)이 자리하고 있어,

이 석장승은 조선 영조 때인 1725년(영조 1)에 건립 되었으며,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하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또한 사찰 입구에 있다는 점에서,

도강의 안전과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겸한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사적 제309호인 실상사(實相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서기 828년(흥덕왕 3) 통일신라의 승려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하면서 창건 하였다고 합니다.

 

 

 

 

실상사(實相寺)를 찾았을때는,

전날 내린 눈으로 사찰은 겨울의 산사를 연상케 하였고,

전체적인 가람배치는 대웅전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그 앞에 2개탑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평지이탑식(平地二塔式)이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약사전·극락전·명부전·칠성각 등이 남아 있습니다.

 

 

 

 

실상사 경내를 들어서면,

왼쪽에 실상사(實相寺)의 옛 "기와탑(古瓦塔)"이 자리하고 있어,

실상사의 발굴과 복원 사업 당시 출토된 기와들을 모아 두었다고 하며,

 

 

 

기와탑 뒤편에는 "9층 목탑"이 있던 자리인 실상사 목탑지가 있어,

이곳의 목탑은 경주의 황룡사9층 목탑에 버금가는 규모로 고려시대에 축조 되었는데,

전소되고 목탑의 초석만 남아 있는데 한변의 길이가 20.5m로 1층의 면적은 127평에 달했다고 합니다.

 

 

 

 

실상사(實相寺)를 세운 신라의 승려 홍척은,

도의(道義)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 하였는데,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곳 실상사를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도 있을 정도이며,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습니다.

 

 

 

실상사의 금당인 보광전 앞에는,

보물 제37호로 지정된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이 있어,

보광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높이 3.2m의 쌍탑은,

양식과 규모가 동일하며 증각대사 홍척이 실상산문을 창건할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탑의 구조는,

이중기단 위에 3층탑신이 있는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으로,

기단 주위에 장대석으로 설정된 탑구 안에 탑이 세워진 것이 독특하며,

실상사의 삼층석탑은 상륜부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탑으로 유명한데,

불국사 삼층석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삼층석탑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보광전 앞에는 보물 35호인 "실상사 석등"도 볼수있어,

이 석등은 규모가 커서 석등 앞에 불을 밝힐 때 쓰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어 놓았으며,

 지붕돌의 귀퉁이마다 새긴 꽃모양이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입니다.

 

 

 

석등의 앞에는 돌로 만든 계단이 서 있어,

계단은 석등에 불을 켤 때 오르내리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 되는데,

석등의 계단은 현재 남아 있는 석등 가운데 유일한 사례로,

석등이 공양구(供養具)라는 장식적인 의미와 함께,

실용적인 등기(燈器)로 사용된 모습을 알려주는 사례 이기도 합니다.

 

 

 

 

또한 보광전앞 한쪽에는 눈길을 잡는 소나무가 한그루 있어,

"반송"으로 불리는 소나무로 보통 소나무는 외줄기가 올라와 자라는 것에 비하여,

반송은 밑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 입니다.

 

 

 

 

실상사의 금당격인 보광전에는,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된 "실상사 건칠아미타불좌상과 건칠관음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 불상은 고려말에서 조선전기의 보살상 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조선전기 불상의 양식을 찾아볼수 있으며,

건칠(乾漆)이란 조각품을 만들 때 칠에 흠뻑 적신 삼베를 여러 겹 붙인 뒤,

그 표면에 칠·톱밥·사암 가루 등의 혼합물을 발라서 조성하는 기법이라고 합니다.

 

 

 

 

보광전 옆에는 한칸의 규모로 작고 아담한 규모의 칠성각이 있으며,

"칠성각(七星閣)"은 인간의 수명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모시는 사찰 전각으로,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이나 우리나라에 들어와 기우·장수·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는데,

칠성신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사찰 안에 칠성각을 짓고 칠성신을 모시게 되었고,

이는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경우 입니다.

 

 

 

칠성각의 반대편에는 약사전이 자리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약사전에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목숨을 연장시켜주는 약사여래를 모시는데,

이곳에는 "철조여래좌상 "을 모시고 있습니다.

 

 

 

 

실상사 약사전에 모신 철조여래좌상 은,

높이 266cm의 크기로 보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불상의 대좌와 광배는 전하지 않으며,

두 발을 양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크고 둥그스름한 얼굴은 살찐 편이며,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지고 입술이 작고 두툼하여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데,

실상사 개창(828)과 관련하여 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철불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예에 속한다고 합니다.

 

 

 

 

약사전 앞에는 명부전(冥府殿)이 자리하고 있어,

죽은 사람이 간다는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사찰 당우로,

 

 

 

명부전(冥府殿)은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해서 시왕을 모시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 ·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법당의 주불은 지장보살이며,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며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고 있습니다.

 

 

 

 

명부전 뒤편의 한적한 공간에는,

겨울 산사의 여유로움을 알려나 주는듯,

주인을 기다리는 그네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찰의 서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요사채와 스님들의 거처인 승방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있고,

 

 

 

 

요즈음엔 보기 힘든 사찰의 건물로,

전통 방식의 "해우소"의 모습도 볼수가 있습니다.

 

 

 

 

경내에서 해우소를 지나 서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극락전의 입구에서 실상사의 "증각대사탑비(證覺大師塔碑)"를 만날수 있어,

 

 

 

 

보물 제39호로 지정된 "증각대사탑비(證覺大師塔碑)"로,

이곳 실상사를 세운 증각 대사 홍척(洪陟)의 탑비는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는데,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비는 일찍이 비몸돌이 없어지고 지금은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어,

받침돌은 당시에 일반화된 용머리를 형상화하지 않고 거북머리(龜頭)를 그대로 따랐는데,

머릿돌은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 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작품으로,

앞면 가운데에 '凝蓼塔碑'(응료탑비)라는 전액이 새겨져 있습니다.

 

 

 

 

증각대사탑비 뒤편의 협문을 들어서면,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인 "극락전(極樂殿)"이 자리하고 있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극락전(極樂殿)에는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坐像)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극락전 옆에는 보물 33호인 "수철화상탑"을 찾을수 있어,

수철화상(秀澈和尙)은 신라 후기의 승려로 이곳 "실상산문"의 2번쨰 창건주이며,

진성여왕 7년(893)에 입적 하였고 탑호는 능가보월 입니다.


승탑은 팔각원당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높이는 2.42m로 그 조각이 상당히 섬세한데,

하대석과 상대석에는 연꽃이 조각되었으며 탑신에는 문비와 주악상이 새겨 졌으며,

특히 옥개석의 기와와 서까래가 잘 남아 있습니다.

 

 

 

 

수철화상탑의 옆쪽에는 보물 34호인 "수철화상 탑비(秀澈和尙 塔碑)"도 만날수 있어,

높이 2.9m, 비신 높이 1.68m, 너비 1.12m로 비신은 푸른 돌로 되어 있으며 이수(螭首)와 대석(臺石)은 화강암으로,

수철(秀澈)의 출생및 입적 및 조탑 경위가 적혀 있는 비석으로 서체는 해서체 입니다.


대개의 통일신라시대 탑비와는 달리 거북이 아니라 일반적인 비석처럼 안상이 새겨진 장방형 비부에 세웠는데,

비좌에는 큰 복련이 둘러져 있고 이수에는 두 마리의 반룡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에는 전서로 능가보월탑비라 음각되어 있습니다.

 

 

 

 

1월의 초순경에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렸는데,

이곳 실상사에도 눈이 조금 내린탓에 오랫만에 앙증맞은 눈사람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사찰의 규모에 비해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

산사의 느낌은 덜하지만 문화재 탐방을 겸해서라도 찾아 볼만한 곳으로,

남원의 고찰인 지리산의 "실상사(實相寺)"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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