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를 여행하면서,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萬德山)에 있는 사찰인,

"백련사(白蓮寺)"를 찾았습니다

 

백련사(白蓮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유적지인 "다산초당(茶山草堂)"과 함께 많이 찾는곳으로,

무위사와 더불어 강진을 대표하는 사찰이기도 합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련사를 가리켜,

남쪽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여 동백 또한 곁들여서,

수목이 싱싱하게 푸른 모습이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한만큼 주위의 경관 또한 아름다운 곳으로,

기록하고 있어,

 

 

 

 

백련사를 찾으시면,

반드시 보아야할 곳중 하나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는 "백련사 동백(白蓮寺 冬栢)"으로,

약 1,500그루의 동백나무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으며 높이가 7m에 달하고 있어,

동백의 숲을 거닐어 보는것도 좋습니다.

 

 

 

 

백련사(白蓮寺)는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일명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하며,

1432년(세종 13) 윤회(尹淮)가 저술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와,

정약용(丁若鏞)의 "만덕사지(萬德寺誌)" 등에 의하면,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국사가 창건한 뒤,

1170년(의종 24) 승려 요세(了世)가 중건하고 주석하면서 중요한 수도도량으로 큰 발전을 이룩했다고 하며,

 

 

 

 

요세(了世)는 천태종계(天台宗系)의 승려로서,

고승 지눌(知訥)과 깊은 친분 속에서 지눌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에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었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와 최홍(崔弘)·이인천(李仁闡)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자리를 잡고,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하였습니다.

 

 

 

 

이 역사(役事)는 1211년부터 1232년(고종 19)까지 21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목백(牧伯)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물을 보시(布施)하였다고 하며,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는데,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입니다.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 하였으나,

고려 말에는 강진지방이 세 차례의 왜구침입을 받았을 때 이 절도 함께 폐허화 되었다가,

조선 세종 때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를 받아 주지 행호(行乎)가 불타버린 가람을 복원하였고,

그 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그때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으며,

대웅전의 현판는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었다고 알려진,

조선 후기 명필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글씨 입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된 백련사 대웅전(白蓮寺 大雄殿)에는,

목조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삼존불을 모시고 있으며,

 

 

 

 

금당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조선 후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면 중앙기둥 머리에는 용두로 장식하여 단청과 함께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마당 앞쪽에는 "범종각"이 자리해 있고,

 

 

 

 

옆에 있는 누각인 "만경루"에서는,

강진만 일대의 바다를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대웅전을 비켜선 뒤편에는 "명부전(冥府殿)"이 자리하고 있어,

명부전(冥府殿)은 죽은 사람이 간다는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사찰 당우이며,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해서 시왕을 모시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 또는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는데,

법당의 주불은 지장보살이며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고,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였습니다.

 

 

 

 

한쪽에는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인 삼성각(三聖閣)이 있으며,

 

 

 

 

한쪽에는 응진당(應眞堂)과 삼성각(三聖閣)이 나란이 함께 서있어,

 

 

 

 

"응진당(應眞堂)"은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지혜와 신통이 뛰어난 열여섯분(16분)의 아라한을 모신 전각으로,

응진당 전각을 "응진전" 또는 "나한전" 이라고도 하며,

응진당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좌, 우측에 8 분씩 나한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응진당 전면의 문위에는 코끼리로 보이는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어느 동물인지는 알수 없으나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하며,

 

 

 

 

응진당앞 나무에는 얼음꽃이 피어나 있어 눈길이 갑니다.

 

 

 

 

응진당옆에 있는 천불전(千佛殿)은,

부처님 일천분을 모신 곳이라 하여 천불전이라 하는데,

천불(千佛)이란 이 세상에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계속하여 미륵불을 포함한 많은 부처님이 출현한다는 의미라고 하며,

 

 

 

 

천불전(千佛殿)의 현판 또한,

조선 후기 명필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로 알려져 있으며,

 

 

 

 

경내의 한쪽에서는 보물 제1396호로 지정된,

고려후기 에 조성된 "백련사 사적비(白蓮寺 事蹟碑)'가 있어,

 

 

 

 

높이 447cm의 석비(石碑)로,

사적비의 거북은 앉은 키가 높은 편이고 용의 눈이 험상궂게 생긴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이 있으며,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 모양을 한 가첨석(加檐石)이 놓여 있어,

귀부(龜趺)·이수(螭首)·비신(碑身)을 모두 갖춘 완형으로,

비명은 "전라도강진만덕산백련사사적비(全羅道康津萬德山白蓮寺事蹟碑)"이고,

비문은 모두 19행으로 1행은 45자로 되었으며 행서체이고,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홍문관수찬 조종저(趙宗著)가 찬 하였는데,

이 비문과 만덕사지(萬德寺志)에 의하면 고려 한림학사 최자(崔滋)가 찬한 고려시대의 고비(古碑)가 있었으나,

그 비신을 잃어 이 사적비를 다시 세울 때 그것의 귀부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백련사는 다도(茶道)의 사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200여 년 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건너편의 다산초당에서 기거하면서,

백련사의 아암(兒菴) 혜장(惠藏,1772-1811)선사를 만나 깊은 교류를 가졌다고 하는데,

혜장(惠藏)선사는 정약용에게 차의 맛을 알게 해준 스님이기도 합니다.

 

 

 

 

다산초당을 찾게되면 반드시 함께 들러야하는 곳이며,

강진을 대표하는 사찰중 하나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도 깊은 인연이 있었던 사찰이며,

아름다운 동백숲이 있어 찾아볼만한 곳으로,

전남 강진의 고찰인 "백련사(白蓮寺)"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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