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으로의 여행에는,

안동에서 병산서원, 체화정으로 가는 길목에,

"삼구정" 이 있습니다.

 

조선조에 당당한 세도를 자랑했던,

안동김씨의 집성촌이기도한 소산리 소산마을입니다.

 

 

 

 

마을의 입구 옆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이되어,

안동의 상징이기도한 사대부, 양반님의 형상으로 반겨주는 조형물이 있고,

 

 

 

 

공원의 안쪽은 마을이며,

오른쪽의 구릉위에 삼구정이 자리해 있으며,

그아래에는 작은 연못이 있으며 연이 가득 자라고 있습니다.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있는,

마을앞 공원에서 보이는 솟대입니다.

 

 

 

 

마을의 입구쪽에서 보이는,

솟을 대문의 고택앞의 텃밭의 고추가 더욱 붉습니다.

 

 

 

 

삼구정으로 가는길 어귀에서 만난 할아버지입니다.

이마을에 사시며 삼구정에 있는 세개의 바위에 대해서 알려 주십니다.

순조때 김조순으로부터 시작하는 안동김씨의 60년 세도정치 이야기가 빠질수가 없겠죠.

 

 

 

 

삼구정이 있는 작은 구릉앞에는,

노송들과 어울려 느티나무 고목이 한그루가 있고,

 

 

 

 

제를 지내는 곳으로 보입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상석과 함께 조그마한 그릇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삼구정은 마을 입구의 동오봉이라는 작은 구릉에,

조선조 연산조때 김영수가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에 머물면서 1495년에,

관직에 나간 아들들을 기다리던 80노모를 위해 조그만 여막을 지은것으로 시작하여,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의 정자가 지어 졌다고 전합니다.

 

 

 

 

정자의 주변에는,

수백년의 수령의 노송들이 자리해 있습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한칸의 솟을 대문을 들어섭니다.

 

 

 

 

정자의 문을 들어서면,

거북모양의 삼귀석(三龜石)으로 불리는 큰돌 세개가 있으며,

거북은 십장생중의 하나 이므로 노모께서 장수를 누리시길 기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면 세칸, 측면 두칸구조의,

겹처마의 팔작지붕의 건물로서,

온돌이나 방은 들어있지 아니하지만 조선초기의 정자건축 연구의 중요자료입니다.

 

 

 

 

"삼구정"의 현판이구요,

 

 

 

 

정자의 지붕구조를 들여다 봅니다.

 

 

 

 

집의 기초가 되는 주춧돌은,

대부분 자연석을 이용해 나무기둥을 깍아 세우기도 했지만,

 

 

 

 

탑의 옥개석으로 보이는 돌이 추춧돌로 들어가 있습니다.

 

 

 

 

석탑의 상부쪽에 들어갔음직한 옥개석이구요,

조선조 숭유 억불정책과 세도정치의 산물로 추증이되는 모습입니다.

 

 

 

 

마찬 가지로,

뒤집혀 있는 옥개석의 모습입니다.

연꽃 문양에 옥개 층급 2단의 절수구가 뚜렸합니다.

 

 

 

 

수백년된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사방이 확 트여진 삼구정에서의 도로쪽 모습으로,

삼구정은 주로 여름정자로 이용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자의 뒤편도,

너른 들판으로 하는 시원함을 보여줍니다.

 

 

 

 

노송들 속의 삼구정을 뒤로하고,

동오봉의 작은 언덕을 내려옵니다.

 

 

 

 

연못에서 바로 보이는곳에는,

크지않은 감나무가 한그루 서있는데..

 

 

 

과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감나무에는 많은 감이 매달려 있습니다.

 

 

 

 

감치고는 아주 작습니다.

아주 작은 크기 이지만 잘익은 홍시의 맛은,

감칠맛이 날정도로 맛이 있습니다.

 

 

 

 

안동이 본관이며,

명필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선중,후기의 인물로 조선후기 세도가의 직계선조인,

김상헌(金尙憲)의 유명한 시비 입니다.

 

 

 

노모를 위해,

노모의 장수를 기원하며 효행으로 지어진 정자 "삼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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