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 으로의 문화재 탐방에서,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있는 "거조암(居祖庵)"을 찾았습니다.

 

거조암(居祖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이며,

팔공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조암은 원래 "거조사(居祖寺)"라 하여 809년 창건한 본사인 은해사보다 앞선,

693년(효소왕 2) 원참조사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다고도 하고,

경덕왕(742∼764) 때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한때 번창하던 사찰 였으나,

 

 

 

 

근래에 와서 거조사는 퇴락하여 은해사의 말사로 편입되어 거조암(居祖庵)이라 불리고 있는데,

거조(居祖)는" "아미타불이 항상 머문다"는 뜻이라 하지만,

“선종(禪宗)의 조사 스님인 조(祖)가 거(居) 한다”라는 의미로 보기도 합니다.

 

 

 

 

거조암을 찾으면 국보로 지정된 영산전(靈山殿)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인 삼층석탑(三層石塔)을 나란이 볼수있어,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04호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삼층석탑(永川 銀海寺 居祖庵 三層石塔)"은,

거조암 영산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는데,

위층 기단의 네 면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갔고 밑면에 계단모양의 받침을 새겨 두었고,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모두 사라져 버린 상태이며,

삼국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석탑 뒤에는 국보 제14호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永川 銀海寺 居祖庵 靈山殿)"이 자리하고 있어,

정면 7칸, 측면 3칸의 소박하고 간결한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지붕의 건물로,

 

 

 

 

영산전(靈山殿)은 거조암의 본전이며,

석조(石造)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시고 있는데,

해체 보수할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우왕 원년에 건립 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졌다고 하며,

 

 

 

 

영산전(靈山殿)의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던 영축산의 준말로 부처님의 세계를 상징 합니다.

 

 

 

 

영산전(靈山殿)은 고려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불규칙하게 채석된 장대석(長臺石)과 잡석(雜石)으로 기단이 축조되어,

측면 중앙에 간단한 돌계단을 가진 비교적 높다란 기단 위에 선 길쭉한 건물로,

가구(架構)는 간략한 수법으로 되었으며,

측면 중앙간을 형성하는 두 개의 고주(高柱)와 그 앞뒤의 평주(平柱)에는 뚜렷한 배흘림이 있으며,

 

 

 

 

전면의 처마 아래에는 여러개의 편액(扁額)들을 볼수 있는데,

거조암의 내력을 알려주는 현판으로 보이는데 워낙 희미하여 내용은 알수 없으며,

 

 

 

 

거조암의 영산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같은 고려시대의 건축물 중에,

맞배 지붕의 담백한 건물 정면에 나무로 된 창살이 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중앙에 있는문 단 하나 뿐인데,

그래서 스님이건 신도건 관람객이건 차별없이 모두 하나 뿐인 문을 이용해야 하며,

 

 

 

 

영산전(靈山殿)의 안으로 들어서면,

526분의 각기 다른 자유분방한 표정의 석조 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보통 사찰의 나한전은 계단식 단 위에 차례대로 나한들을 배치한데 비해,

거조암 영산전의 오백 나한은 법당 안에 통로를 만들어 두어,

이쪽과 저쪽의 통로를 따라 다니며 대하게 되는 나한들과 눈을 맞출 수 있는 특별한 곳여서,

이런 친근한 형식의 나한전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건물의 세부를 보면 주두나 소누(小累)가 다포집과 같은 형태로 된 것 이외는,

주심포 양식의 초기적인 형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가구인데,

주심포 양식의 초기적인 고주머리에는 뜬 창방(昌枋)을 돌리며 기둥 뒤에는 주두(柱頭)를 두고,

포작으로 대들보 끝을 받고 끝은 중도리를 받쳤으며,

대들보 중앙에는 키가 큰 제형(梯形)의 부재(不在) 위에 2중으로 된 포작을 올려 마루도리를 받치게 하였고,

마루도리는 내반(內反)된 소슬합장으로 받쳐 지고 천장가구(天障架構)는 없이 연등천장으로 되었으며,

 

 

 

 

영산전의 주두나 소로가 다포집과 같은 형태로 된 것 이외에는,

주심포집 양식의 초기적인 형태를 충실히 나타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유구(遺構)인데,

공포의 살미첨차 끝이 거의 수직으로 잘렸고,

첨차 하단의 S자형 곡선이 2단으로 꺾인 매우 간단한 선으로 되었으며,

대들보 또는 퇴보의 단면이 주심포집 양식의 특징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산전은 건물의 공포의 형태나,

마룻도리를 받는 솟을합장의 곡률(曲率: 굽은 정도)이 작은 점 등으로 보아,

국보 제13호인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無爲寺 極樂殿)"보다 오래된 양식임을 보여주고 있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 이기도 합니다.

 

 

 

 

나한(羅漢)신앙의 본산지 이며,

지금은 쇠락하여 은해사의 말사로 편입되어 산내 암자로 남아 있게 되었지만,

고려 후기의 건축양식을 살필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있는곳으로,

경북 영천의 은해사 거조암(居祖庵)의 영산전(靈山殿)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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