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이 아름다운 영월의 여행지중,

영월군 수주면의 요선정과, 요선암을 다녀옵니다.

 

요선암은,

영월에서 원주방향으로,

한반도지형과 주천을 지나면 찾을수가 있습니다.

 

 

 

 

요선정으로 오르는 초입에 있는 미륵사입니다.

요선정과 함께있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과 인연이 있는 사찰의 이름으로 보입니다.

 

 

 

 

강원도 에서는,

쉽게 볼수없는 무화과가 미륵사 마당에서 볼수가 있으며,

 

 

 

 

미륵사 옆에는,

요선정으로 오르는 작은 안내표지가 있고,

조금 지나면 돌탑하나가 요선정으로가는 길목임을 다시 알려줍니다.

 

 

 

 

오솔길을 잠시 오르면 요선정입니다.

남한강 지류인 주천강 상류에 위치하며 풍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조선 숙종의 어제시를 봉안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곳입니다.

 

 

 

 

이응호가 썻다고 전하는 요선정의 현판입니다.

 

 

 

 

요선정앞의 왼쪽에는,

"석명선" 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석명선은 일제시대에 영월군수를 지냈으며, 후에 조선총독부 관료를 지냈던 친일파의 이름입니다.

 

 

 

 

1917년 2월에 이곳을 다녀간 기념으로 새겨둔듯 한데,

죽어서 친일의 부끄러운 이름을 이곳 바위에 남겨두었습니다.

 

 

 

 

이곳 요선정에는,

조선왕조 19대 임금인 숙종대왕 (肅宗大王)의 어제시(御製詩)를 봉안하고 있으며,

원래 숙종대왕이 직접 하사하신 어제시는 주천강 북쪽언덕에 위치하였던 청허루(淸虛樓)에 봉안하였으나,

오랜 세월에 청허루가 붕괴 되었고,

 

숙종의 어제시 현판은 일본인 주천면 경찰 지소장이 소유하고 있던것을,

수주면의 원씨 元氏 ,이씨 李氏 , 곽씨郭氏 ,의 삼성이 조직한 요선계원들이,

일본인이 우리것을 소유하였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많은 대금을 지불하고 매입하여,

이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금의 자리에 요선정(邀僊亭)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입니다.

불상의 머리위의 갓은 본래의 바위와 별개로,

따로이 올려둔 듯해 보입니다.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3.5m에 이르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정식 명칭은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입니다.

암벽 위에 높은 부조로 불상을 새겼고,

살이 찌고, 둥근 얼굴에 눈, 코, 입과 귀가 큼직큼직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두꺼워 신체의 굴곡이 잘드러나지 않는편 입니다.

상체에 비해 앉아 있는 하체의 무릎폭이 지나치게 크게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체의 길이도 너무 길어, 신체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손의 모양도 독특해,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손등을 보이고 있고,

왼손 역시 오른손과 평행하게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처가 앉은 자리인 대좌 역시 무릎폭에 맞추어 큼직하게 조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긴 하지만 균형이 전혀 맞지 않고,

옷 주름과 신체 각 부분의 표현이 형식화되어 있어..

고려시대 지방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처럼 암벽면을 깍아 만든 마애상의 유례가 강원도에는 드문 실정이어서 의미가 큰 불상조각입니다.

 

 

 

 

 

요선정은 정면 2칸 측면2칸의 팔작 지붕으로 건축한 작은 정자이며,

정자 옆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마애불좌상이 요선정 보다도 먼저 자리해 있습니다.

 

 

 

 

마애불 뒷쪽에서 볼수있는 풍경입니다.

백덕산에서 내려오는 법흥천이 만나는 강가 절벽에,

마애불과 요선정이 자리하며 그아래에는 옥빛 강물과 함께 비경을 연출합니다.

 

 

 

 

 바위위에 자리잡은 노송과,

법흥천이 함께하는 풍경에 한동안 자리를 떠날줄을 모릅니다.

 

 

 

 

요선정 앞에는 자그마한 탑하나가 자리해있고,

탑은 기단과 1층탑만 남았고 그위로는 본래의 탑과는,

전혀다른 형태의 탑신이 올라있어 본래의 모습은 알길이 없는것이,

탑의 곁에는 이곳 탑에 대한 안내문은 없습니다.

 

 

 

 

올랐던길을 따라 내려오다,

오른쪽의 갈림길로 내려오면,

널따란 반석들이 여기 저기에 널려있고,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돌개구멍이 복합적으로 발달된 특이한 지형을 만나게 됩니다.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의 요선(邀僊)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시인이며 서예가로 초서의 대가인 양봉래(양사언)가 평창군수 시절,

선녀들과 이곳에서 경관을 즐기던 반석 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긴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요선암의 특이한 모습을 한참이나 돌아봅니다.

 

 

 

 

마치 선녀탕을 연상케하고,

주천 강물이 부딪치는 약 30여m의 석벽과 함께하는 요선정의 주변입니다.

 

 

 

 

잠시 자리에 앉아,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는곳입니다.

 

 

 

 

요선암의 천변을따라 오다보니,

어느새 미륵사의 근처에 다다르게 됩니다.

 

 

 

 

활짝 피어오른,

미륵사 정원의 꽃을 즐기며,

요선정과 요선암 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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