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인근의 도개면에는,

신라불교의 초전지로 알려진 모례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회관입니다.

문화 마을임을 알려나 주려는듯 특이합니다.

 

이곳 모례마을의 주소는,

경북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龜尾市 桃開面 道開2里) 입니다.

한글로 읽으면 같은글 이지만,

한문으로는 복숭아 도挑 열 개開 도개면挑開面 이고,

도개리는 길 도道 열 개開 도개리道開里 라고 쓰기 때문에 특이합니다.

 

 

 

 

이곳이 신라불교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곳이라는 기념비가 있고,

초전지의 역사와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으며,

 

 

 

 

초전지 마을의 조형물이,

소규모 공원에 설치가 되어있습니다.

 

 

 

 

마을 안에있는,

신라불교 초전지의 기념관입니다.

가져온 역사기록 입니다.
삼국유사 아도기라 신라본기(阿度基羅 新羅本紀)에 의하면,

신라 제19대 눌지(訥祗)왕 시대에 묵호자 사문(墨湖子沙門)이 신라 일선군 모례장자(毛禮長者)의 집에 오셨다.

모례장자는 묵호자 사문을 맞이하여 집안에 굴실을 만들어 편히 지내게 하였다.
그런데 공주가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인데 그 병을 고쳐주고 얼마 후 간곳을 알수가 없었다한다.

 

또 신라 제21대 비처(毘處) 대왕시대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시자 3인(侍者3人)과 함께 역시 모례장자의 집에 오셨는데 묵호자 사문과 똑 같았다고 한다.
아도화상이 수년을 지난 후 병도없이 입적하시고 시자3인(侍者3人)이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강설하여 독송하니 왕왕히 믿고 받드는 자가 있었다.

이것이 신라불교의 시초이다.
그러기에 신라불교 초전법륜성사는 아도화상이시고, 초전법륜성지는 모례장자의 구지(舊址)이다.

독립운동가 33인 중 한분이신 용성진종조사께서 23세 되시던 해인 서기

1886년 음력 8월 29일 이곳에서 오도(悟道)하신곳이다.

 

불교 초전지 모례마을에 대한 역사 이야기 입니다.

 

 

 

 

 

"아도 모례원" 입니다.

곁에 있는 기념관과 함께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수가 없습니다.

 

 

 

 

다만..

건물의 외벽에 걸려있는,

한장의 특이한 사진이 눈길을 잡습니다.

 

 

 

기념관 뜰에도 가을의 결실이 탐스럽습니다.

 

 

 

 

모례샘 (毛禮井)입니다.

모례가정이라고도 불리며, 설화에 의하면..


신라불교의 전법(傳法)에 실패한 아도화상(阿度和尙)은,

도개리 모례장자(毛禮長者)의 집에 돌아와서 사문(沙門)의 신분(身分)을 변장하기 위해,

머슴살이를 하면서 양 1000마리, 소 1000 마리를 길러 모례장자를 거부가 되도록 하였으며,

아도(阿度)는 이렇게 5년간 보살행을 하고 냉산(冷山 현太祖山)으로 떠나려고 하였다.

 

이때 아도화상은 그동안 일해준 품삯을 한푼도 받지않았다.

모례는 화상이 떠나려하니 울먹이면서 아도의 가는길을 물었으나 가는곳을 알리지 않고,

다만 나를 만나려면 얼마후 당신집으로 칡순이 내려올것이니 그 칡넝쿨을 따라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것이오,

하고 말한후 떠나버렸다.

 

그 후 아도의 예언처럼,

정월(正月) 엄동(嚴冬)인데도 칡순이 모례장자집 문턱에 들어오므로,

모례는 곧 그 줄기를 따라가니 바로 지금의 냉산 태조산 산복(山腹)인 도리사 자리에 아도가 수행 정진하고 있었다.

두사람은 1년만에 해후한것이다.
이때 아도는 모례장자를 보고 이곳에 신라최초가람(新羅最初伽藍)을 세울테니 시주를 좀 하시오, 하고

망태기 하나를 내놓으면서 망태기 속에 쌀을 채워달라고 하였다.

모례도 흔연히 아도의 청에 승낙하고 그 망태기속에 채우려고 쌀을 100섬 나아가 1000섬을 부었을때,

망태기가 차자 아도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절을 창건하자 지금의 도리사가 이루어졌다.

바로 이곳이 신라불교의 초전법륜지(新羅佛敎初傳法輪地) 이고 최초사원(最初寺院)이 되었다.

 

지금도 모례부근에는,

아도가 양 1000마리 소 1000마리를 기른 곳이라하여,

주민들의 소골(牛谷)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으며, 모례장자터의 모례우물을 먹었다는 모례샘이 있다.

 

모례가정에 대한 가져온 글입니다.

 

 

 

 

 


모례정에대한 또다른 이야기 이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불교가 공인이 되기 전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위해,

아도모례원이 소재한 도개리에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모례장자가에 머슴살이를 하면서,

포교 활동을 하고 도리사를 창건했다고 하며, 유적으로 모례장자우물이 있다.


위의 이야기 내용과 비슷합니다.

 

 

 

 

 

신라 초전지 기념관의 안쪽에 있는 인가에는,

 

 

 

 

커다란 감나무에 탐스런 감이 엄청 많이 열려 있습니다.

크기는 작은편이나 이미 나무에 달린채 홍시가 되어버린것도 있어서,

보기에도 맛이 있어 보입니다.

 

 

 

 

마을분으로 보이는 분들이,

탐스럽게 익은감의 수확에 열중입니다.

 

 

 

주인이신듯 할머니 한분께서,

저희에게도 필요한만큼 감을 따가도 좋다고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이분들도 이곳을 찾았다가 주인 할머니께서 사다리까지 내어 주시며,

넘치도록 넉넉한 시골의 인심을 베풀어 주십니다.

 

 

 

 

신라의 불교 전래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고구려 소수림왕(불기 915, 서기 372)이 중국의 전진왕으로부터 불상을 받은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인도 출신인 가야국의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로부터 불교를 직접 가져왔다는 설도 잘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수림왕 이전에 이미 불교가 우리나라 에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넉넉한 시골인심과 함께했던,

구미 도개의 모례마을의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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