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경치로 이름난 영월의 여행지로,

영월 시내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용이한 관풍헌과 자규루 입니다.

 

함께있는 관풍헌과, 자규루의 입구입니다.

 

 

 

 

단종 애사의 한맺힌 이야기중 하나를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관풍헌은 영월 객사의 동헌으로,

조선태조 7년에 건립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단종의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곳입니다.

 

 

 

 

1456년 청령포에 유배 중이던 단종이,

홍수로 인하여 이 곳으로 어소를 옮기어 사용하였고,

그 다음 해인 1457년 10월 24일 숙부인 세조가 단종 복위운동

(경북 순흥에서 금성대군과 부사 이보흠이 모의하였으나 실패)을 구실로,

금부도사 왕방연에게 명하여 사약을 내려 17세의 어린나이로 이곳 관풍헌에서 승하하였다고 합니다.

 

 

 

 

관풍헌의 현판입니다.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의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관풍헌과 함께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약사전입니다.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배부를 들여다 볼수는 없었으며,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이곳 일대를 포교당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약사여래를 모신듯합니다.

조선시대의 관청에 불교전각이라니?

그 연유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없어 아쉬움이 생깁니다.

 

 

 

 

관청인 관풍헌의 처마의 구조와,

 

 

 

 

약사전 처마의 꾸밈이 서로 달라서,

다른 성격의 건물이 나란이 함께 서있어서 한참을 돌아보게 합니다.

 

 

 

 

관풍헌에서 왼쪽의 너른 마당을 지나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우뚝하게 서있으며,

 

 

 

 

"자규루"를 만나게 됩니다.

자규루는 관풍헌 구내 동편에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팔작지붕 구조 입니다.

1431년(세종10년) 단종이 유배되기 25년 전에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며,

그 후 자규루의 서편에 관풍헌이 건립되었으며 당시 이 곳 주위에는 녹음이 울창하였고,

이곳 누각의 이름도 "매죽루" 였다고 합니다.

 

 

 

 

"자규시" 입니다.

 

 

 

 

1456년 단종이 관풍헌에 감어된 후에,

이곳에 올라 자규시를 지었다고 하여 그 후로 이 누각을 자규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르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지었다고 전합니다.

그 후.. 많이 퇴락해 민가가 들어섰는데,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이곳의 터를 찾아 복원하였다고 전합니다.

 

 

 

 

주춧돌은 대부분,

많이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했슴을 보여줍니다.

 

 

 

 

단종의 비극이 잠들어 있는,

영월의 관풍헌과, 자규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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