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것을 들려주는 정자와 누각/영남권

포항의 정자, 도원정사(桃源精舍)

겨울섬. 2021. 3. 27. 00:26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현내리의,

두봉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도원정사(桃源精舍)"입니다.

 

도원정사(桃源精舍)는 포항시 북구 기북면 성법리의 박사골 아래,

기계천이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솟을 삼문이 높이 올라있는 도원정사(桃源精舍) 를 만나게 되는데,

 

 

 

 

문옆에는 정사를 보수하였다는 머릿돌이 있고,

 

 

 

 

도원정사(桃源精舍)는,

도원(桃源) 이말동(李末仝,1443~1518) 성균진사(成均進士)의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1928년에 후손들이 세운 정자각으로,

 

 

 

 

지금의 정자는 당초 건물이 크게 퇴락하자 70여년 전에 문중에서 다시 중건한 것으로,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3칸의 솟을대문을 설치 했으나 당초의 형식은 아닐 것으로 여겨지며,

 

 

 

 

도원(桃源) 이말동(李末仝)은 원래 경주부 부남 중리에서 출생하였으나,

조선시대 훈련원의 군사일지 기록을 담당하던 무관 벼슬인,

수의부위(修義副尉)를 지낸 부친 퇴재 이윤흥을 따라 한양으로 이주 하였으며,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김종직(金宗直. 1431~1492)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경사를 통달하고 시문에 능했으나,

관직에는 뜻이 없고 오직 독서와 실천궁행(實踐躬行)을 학행의 근본으로 삼았으나,

양친(兩親)의 권유에 못 이겨 37세의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과거에 응시하여,

1480년(성종 11년)에 사마(司馬) 양시(兩試, 진사시와 생원시)에 합격 하였습니다.

 

 

 

 

이말동(李末仝)의 유고 "도원선생문집"에 따르면,

이 때 함께 합격한 이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지지당(知止堂) 송흠(宋欽. 1459~1547),

인재(仁齋) 성희안(成希顔. 1461~1513) 등이었는데,

특히 한훤당 김굉필과는 김종직 문하에서 함께 동문동학하였고 동년계를 결성하여 도의로서 평생을 사귀었으며,

김종직 문하생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454~1492)과도 깊이 교유한 것으로 전합니다.

 

 

 

 

도원정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다락집으로 건물의 평면은 "一"자형이며,

두 팔로 안아도 남음이 있는 소나무 기둥들이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은 팔작지붕을 떠받치고 있는데,

건물 중앙에는 확 트인 대청마루가 있고 마루 양편으로 2개의 방을 들여 놓아,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평면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도원정사(桃源精舍)의 현판으로,

도원(桃源)이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줄인 말이고,

정사(精舍)란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수양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며,

 

 

 

 

마루에는 경주이시 분파도를 두어,

이곳을 찾는 경주이씨 집안이면 자신의 위치를 알수있게 해 두었고,

 

 

 

 

오른쪽의 방에는 마루 방향으로는,

접어서 들어 열수있게 만든 큰 문인 오분합문(五分閤門)을 두었고,

 

 

 

 

방문 위에는 산택헌(山澤軒)의 현판이 올려져 있어,

산택이란 산과 시내 즉 자연을 의미하며,

 

 

 

 

방문에서는 겨울의 찬바람을 막기위해,

미닫이와 여닫이로 2중창을 해두어 조선후기의 양식을 엿볼수 있습니다.

 

 

 

 

도원 이말동의 스승인 김종직은 조선 유학사에 있어,

사림의 종조로 추앙받는 인물로 수많은 시를 남긴 뛰어난 문인이었고,

정몽주에게서부터 내려오는 도학의 계승자였으며,

김굉필을 비롯하여 김일손, 정여창, 남효온, 남곤 등 많은 사림파 제자를 육성하였습니다.

이른바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시초가 되는 인물로 나중에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훈구파와 갈등을 빚으면서 몇 차례 사화를 일으키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 되기도 합니다.

 

 

 

 

마루 건너 왼쪽의 온돌방도 오른쪽과 같은 구조이며,

일반적으로 정자의 들문은 삼분합문이나 사분합문이 대부분인데,

특이하게 문짝이 다섯개인 오분합문(五分閤門)으로 되어 있으며,

 

 

 

 

왼쪽방의 문위에는 "삼외재(三畏齋)"의 현판이 있어,

삼외(三畏)란 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말로 천명(天命), 대인(大人), 성인지언(聖人之言) 등,

세 가지를 두려워함을 의미 한다고 하며,

 

 

 

 

마루위에는 도원정사중건기(桃源精舍重建記)의 기문(記文) 편엑이 있고,

 

 

 

 

도원정사(桃源精舍)의 원운(原韻) 편액(扁額)이 있습니다.

 

 

 

 

정사(精舍)의 마루에서 보이는 풍광으로,

삼문을 지나 연못을 건너온 나무다리의 모습이 들어오고,

 

 

 

 

멀리로는 드넓게 펼쳐진 기계평야가 바라다 보이고,

멀리 어래산(572m)의 능선들과 함께 우측으로는 봉좌산(鳳坐山, 626m)의 능선들이 이어집니다.

 

 

 

 

정사(精舍)서 내려와 연못의 주변을 천천이 돌아 보며,

 

 

 

 

이 주변의 정자 대부분이 주변 경관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누하주를 설치하고,

계곡에 걸쳐 건물을 짓는 독특한 형식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서,

이 정자는 그저 두봉산 남쪽 산자락에 숨은 듯 위치해 있는데,

 

 

 

 

고졸한 멋이 살아있는 정자는 아니지만,

근대의 모습으로 연못과 화단을 꾸려두어 나름 운치가 있습니다.

 

 

 

 

정사(精舍)의 안쪽에는 별채격인 또하나의 건물이 있어,

정면 5칸에 측면 1칸반의 팔작지붕으로,

 

 

 

 

정면의 처마 아래에는 안락와(安樂窩)의 현판이 있어,

안락(安樂)은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말하며,

 

 

 

 

정사(精舍)와 비슷한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구조 이지만,

왼쪽에는 온돌방을 하나더 들였는데,

대청 앞 에 오르기 쉽도록 대청을 물리고 별도로 턱을 낮춰 설치한 나지막한 마루를 두어,

정자 살림을 돕기도 하며 손님을 따라 온 하인들이 잠시 거처하던 용도로 쓰였던듯 합니다.

 

 

 

 

도원정사에서는 솟을대문을 따라 둘러쳐진 높이 1m 남짓의 낮은 흙돌담을 볼수가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쉽게 넘을 수 있는 높이여서 담장을 그저 마음의 경계로만 여기고 살아 왔던,

선조들의 넉넉한 마음씨를 이곳에서 찾을수 있으며,

 

 

 

 

오는 봄을 앞에두고,

지나가는 겨울이 아쉬운지 동백들이 붉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수해를 막기 위해 마을 주위에 대규모 솔 숲을 조성하는 한편,

이 정자에서 후손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호를 도원(桃源)이라 짓고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는,

도원(桃源) 이말동(李末仝)의 생을 돌아볼수 있는곳으로,

경북 포항의 정자인 "도원정사(桃源精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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