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정자, 모현정(慕賢亭)과 수포대(水瀑臺)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에 있는,
모현정(慕賢亭)과 수포대(水瀑臺)를 찾았습니다.
모현정과 수포대는 가조면 소재지에서 합천 가야쪽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가다,
대학동 양지마을에서 들어가면 오도산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어,
모현정(慕賢亭)을 지나 수포대(水瀑臺)를 먼저 보기위해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수포대(水瀑臺)는 모현정을 지나 골짜기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만날수 있는데,
수포대(水瀑臺)는 두무산과 오도산의 여러지류들이 합하여 맑은 계류를 이루는 곳으로,
김굉필, 정여창, 최숙량이 만나 도학을 강마하던 유서깊은 명소이며,
평평하고 너른바위가 펼쳐진 한쪽에는,
바위에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어,
"훤두 양선생 장구지소(暄蠹 兩先生 杖屨之所)"의 훤두(暄蠹)는 한훤당 김굉필(寒喧堂 金宏弼)과,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을 의미하고,
"평촌 최공 강마지지(坪村 崔公 講磨之地)"의 평촌 최공(坪村 崔公)은,
평촌공 최숙량(坪村公 崔淑梁)을 말한다고 하며,
옆에는 흐르는 물로 인해 잘보이지는 않지만,
"수포대 흥해최씨 세장지지(水瀑臺 興海崔氏 世葬之地)"라고,
흥해최씨 대대로 묘를 쓰고 있는 땅이라 적혀 있으며,
옆에는 큰글씨로 "수포대(水瀑臺)"라 붉게 쓰여져 있습니다.
수포대에서 내려와 지나온 모현정(慕賢亭)을 찾습니다.
모현정 옆에는 재실로 보이는 오도재(吾道齋)가 자리해 있고,
한쪽에는 평촌공(坪村公) 최숙량(崔淑梁)을 기리는,
"평촌 최공 유적비( 坪村 崔公 遺蹟碑)"가 서 있으며,
거창 모현정(慕賢亭)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6호 이며,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규모로 누하주를 구성한 누각 형식의 정자 건물로,
가운데 방을 들이고 사방에 마루를 둔 호남식 정자의 배치구조를 하고 있으며,
정자 앞에는 모현정(慕賢亭)의 현판이 있고,
정자는 옆으로 오르게 되어 있어 마루로 오르면,
마루 위에는 많은 편액들이 올려져 있어,
옛 시인과 묵객들이 모여 앉아 제목을 지어 시를 짓고 읊은,
제영시(題詠詩)의 편액(扁額)들이 있고,
이곳에 있는 시판(詩板)들을 알아보기 쉽게 풀이하여 둔 해석판이 있어,
알아보기에 편하게 해 두었으며,
"모현정중수기(慕賢亭重修記)"를 비롯하여,
"모현정기(慕賢亭記)"외 기문(記文)의 편액들도 올려져 있습니다.
정자의 평면은 우물마루를 깔고 계자난간을 두른 형식이며,
중앙에는 1칸의 온돌방을 들였는데,
온돌방 위에는 작은 다락을 두어 눈길이 가고,
정자에 있는 1칸의 온돌방은 아담합니다.
모현정은 1898년(광무 2년)에 동방의 5현에 속하는,
문경공(文敬公)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과 함께,
학문을 강마하던 김굉필의 동서인 평촌(坪村) 최숙량(崔淑梁)을 추모하기 위하여,
1898년 후손과 향림 30고을 1000여 명이 정성을 모아 건립 했다고 하며,
정자는 누각 형식을 채택하면서도 짧은 누하주를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입면형식을 유지토록 한 수법이나,
튼실한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간결하고 소박한 가구 기법 등 조선후기 건축의 양식과 기법의 건축물이며,
정자의 옆쪽에는,
예전에는 처마를 받치는 활주가 있었는듯,
돌기둥인 석주의 모습이 보이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서 인지 돌기둥만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이지역에서 보기힘든 형태인,
가운데 방을 들이고 사방에 마루를 둔 호남식 정자의 구조를 볼수있으며,
최숙량(崔淑梁)의 생을 도돌아 볼수있는 곳으로,
경남 거창의 유적인 모현정(慕賢亭)과 수포대(水瀑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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