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의 사찰, 청량사(淸凉寺)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매화산(梅花山)에 있는,
고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이전에 창건된 사찰인 "청량사(淸凉寺)"입니다.
합천 청량사(淸凉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며,
창건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삼국사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에서 즐겨 놀았다고 하였으므로,
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구전에 의하면 이 절이 해인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하며,
그러나 이 절은 오랫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811년(순조 11) 회은(晦隱)이 중건할 때 3칸의 법당과 요사채를 지었으며,
최근에 주지 경암(景庵)이 요사채를 중건하고 법당을 중수 하였습니다.
청량사(淸凉寺)도 일반적인 산지 가람의 유형을 따라,
석축을 높이 쌓아 마련한 3단의 대지 위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적광전과 상락당(常樂堂)·감로당(甘露堂) 등의 요사를 갖추었는데,
누각인 설영루(雪影樓)를 지나면 오른쪽에 건물이 있고,
왼쪽에도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동재와 서재의 모습과 유사하여 마치 서원으로 들어온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마당을 가로지르면 축대가 가로막고 있어,
축대 아래에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서 돌아 올라가면,
너른 마당과 함께 사찰의 중심전각으로 금당인 대웅전을 만나게 되고,
대웅전 앞에는 보물 제266호인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陜川 淸凉寺 三層石塔)"이 있어,
높이 4.85m.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놓여진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탑 주위가 장대석으로 둘러싸여 있는 점이 특이하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랐지만 곳곳에 특이한 의장(意匠)이 더해져 있는데,
지대석 위에 있는 하층기단은 각 면에 우주와 탱주를 2개씩 표현한 데 비해,
상층기단에는 1개의 탱주만 새겨져 있으며,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갑석은 옥개석의 처마와 같이 끝부분이 약간 위로 올라갔으며,
그 윗면에는 호형과 각형의 2단 굄이 있어 상층기단과 탑신을 받치고 있고,
특히 상층기단의 갑석 밑에는 부연이 표현되어 있으며,
탑신부는 옥개석과 옥신석이 각기 다른 돌로 구성되었는데 옥신석에는 우주만 표현 했으며,
옥개석은 5단 층급받침으로 처마 끝부분이 살짝 반전되어 있고,
상륜부는 파손이 심하여 현재 노반만 남아 있습니다.
석탑 앞에는 어느불자님의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염주와 아주작은 동자승의 모형을 놓아두어 눈길이 가고,
이 석탑은 받침돌이나 몸돌에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각 부분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석재의 가공도 가지런하여 경쾌하고 우아한 기품을 지니고 있는 석탑으로,
1958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을 때,
2층 지붕돌의 윗면과 아래면에서 사리장치(舍利藏置)를 봉안하였던 둥근 구멍이 확인 되었고,
윗면의 구멍은 지름과 깊이가 각각 10㎝이고, 아래면의 구멍은 지름과 깊이가 각각 15.1㎝으로,
지붕돌의 윗면에 사리장치를 둔 것은 다른 석탑에서 찾을 수 없는 특이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탑과 대웅전 사이에는,
보물 제253호인 "합천 청량사 석등(陜川 淸凉寺 石燈)"이 있어,
높이 3.4m의크기로,
대웅전 앞의 축대 위 삼층석탑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의 석등은 9세기 석등을 대표할 만한 수작으로,
석등은 단면 8각의 전형적인 신라 석등의 모습이지만,
가운데받침돌이 장구를 세워 놓은 듯한 고동형(鼓胴形)이어서 특이한데,
네모난 바닥돌 위에는 제법 넓은 아래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나뉘어 조성 되었으며,
아랫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오목새김되었고,
안상 안에는 사자와 함께 구름 속에 있는 누각인 운상누각(雲上樓閣)이 8면에 교대로 조각되어 있고,
윗단은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가 각 모서리마다 1개씩 모두 8개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
모서리에 조각된 꽃잎의 끝부분은 꽃잎을 말아 올린 작은 귀꽃으로 장식 되었으며,
불을 켜 놓은 부분인 8각의 화사석(火舍石)은 하나의 돌로 조성 되었고,
화창(火窓)은 4면에만 뚫렸으며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 되었으며,
지붕돌은 매우 얇은 편으로 처마 밑은 수평이지만 추녀 위에는 경쾌한 반전이 있고,
밑면에는 여러 단의 굄을 두었으나 꼭대기에는 복련의 연꽃 무늬를 조각하지 않았으며,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대체로 없어졌는데 그 부재로 보이는 파편은 남아 있어,
이 석등은 가운데 받침돌에 변화가 나타났고,
조각 수법에서 입체성이 줄어든 것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대체로 9세기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찰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大雄殿)으로,
정면 3칸에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규모이며,
대웅전의 내부에는 보물 제265호인 "합천 청량사 석조여래좌상(陜川 淸凉寺 石造如來坐像)"이 있어,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경주 석굴암 불상의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석굴암이 경도(京都)의 장인(匠人)에 의하여 조성된 8세기를 대표하는 걸작 이라면,
이 불상은 지방의 장인에 의하여 이룩된 9세기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불상은 붓다의 몸에서 나온 빛의 표현인 광배(光背)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전체 높이 2.85m이며 이 중 불상은 2.1m이고 대좌는 70㎝이며,
청량사 석조여래좌상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알수 없으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옷을 입는 것인 편단우견(偏袒右肩) 형식으로,
불상의 옷인 법의(法衣)를 착용하고,
마귀를 항복시키고 이를 지신(地神)에게 증명하게 하는 손 자세로,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배 앞에 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고 있는 불좌상이며,
불상은 입체감 있는 조형과 당당한 자세를 갖추고 있고,
목에는 세 개의 선인 삼도(三道)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며,
편단우견 형식으로 법의를 입고 항마촉지인을 결하였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시대 8세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상호의 특징과 간략화된 법의 주름, 광배의 문양,새로운 형식의 대좌 등을 통하여,
통일신라시대 9세기 중엽에 조성 되었다고 합니다.
대웅전 옆에는 법당 내에서 사용 하는듯한 그리 크지않은 종이 나와 있으며,
대웅전 옆에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을 이고있는,
아담한 전각인 적광전(寂光殿) 있어,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도 불리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으로 모시는 전각으로,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本殿)으로 건립 하는데,
청정한 법신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 항상 고요와 빛으로 충만한 상적광토에서 설법한다고 합니다.
대웅전 앞의 마당으로 나오니,
용도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옛날에 사용했던 석재들을 모아두고 있어,
청량사(淸凉寺)의 역사를 대신하는듯 하며,
내려 오는길에 만난 설영루(雪影樓) 옆에는,
산사여서 인지 때늦은 매화가 한창 입니다.
매화산(梅花山) 월류봉(月留峰) 아래에 자리한 사찰로,
신라시대의 다양한 석물(石物) 문화재들을 찾을수 있는곳으로,
해인사의 그늘에 가려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찰인 합천의 청량사(淸凉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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