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살찌우게하는 여행/강원도

봉평 이효석 생가, 문학관_180422

겨울섬. 2018. 5. 19. 22:36

강원도 평창을 여행하면서,

봉평의 새로 복원된 이효석 생가와 그의 문학관을 찾았습니다.

 

주차장에서 생가로 가는 길목에는 아직 벚꽃과 살구꽃이 화려하게 피어있어,

5월을 눈앞에 두었는데 역시 강원도는 봄이 늦게 찾아옴을 실감하게 합니다.

 

 

 

생가의 초입에는 효석 달빛언덕 이라는 곳이 있어 개관을 준비하는듯 하고..

 

 

 

돌 담장으로 일각을 이루고 있는  이효석 생가를 만나게 됩니다.

 

 

 

이효석(李孝石,1907~1942) 은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며,

호는 가산(可山)으로 1936년에 한국 단편 문학의 수작 중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 하였습니다.

생가는 이효석이 태어나 자란 곳이며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무대인 평창군에서는,

2007년 지역 원로들의 고증을 토대로 이효석 마을 안 생가터로부터 약 600m 아래쪽에 이효석의 초가집 생가를 다시 복원 하였는데,

 

2남 3녀 중 장남이었던 이효석의 유년시절이 떠올리게 하는곳 입니다.

 

 

 

 


 

 


이효석(李孝石,1907~1942)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가산(可山)이며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하였으며,

이시후(李始厚)의 맏아들로 태어나 가정 사숙에서 한학을 배웠고,

1920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재학시절 조선인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했고,

K. 맨스필드, A. 체호프, H. J. 입센, T. 만 등의 작품을 즐겨 읽으며 문학관의 정립에 힘썼습니다.

당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비슷한 경향의 소설을 써서 유진오 등과 동반자 작가로 불렸으며,

1930년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보름 정도 근무하다 경성으로 내려가,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근무 했으며 이때부터 작품활동에 전념하여 1940년까지 해마다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 했습니다.

1933년 구인회에 가입했고, 1934년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되었고,

1940년 아내를 잃은 시름을 잊고자 중국 등지를 여행하고 이듬해 귀국했으며,

1942년 뇌막염으로 언어불능과 의식불명 상태에서 사망했습니다.

 

 

 

복원된 생가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작은 뒷간이 있고,

본채 앞에 아담한 외양간이 있어..

 

 

 

외양간에는 소는 보이지 않고 소 먹이인 볏짚만 가득 합니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정도의 규모로,

초가집 이지만 강원도의 옛집 치고는 제법 규모가 있는 편으로,

 

 

 

부엌 앞에는 나무절구가 자리해 있고,

 

 

 

부엌에는 옛날 살림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습니다.

 

 

 

두칸으로 이어진 방은 부엌과 가까이 있어 안방으로 보이며..

 

 

 

낮은 탁자와 생활도구를 두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의 느낌을 줄인듯 합니다.

 

 

 

한칸의 중간방에는 다듬이 돌이 방가운데 자리해 있고,

 

 

 

왼쪽의 방도 두칸의 규모로 병풍과 책읽는 낮은 탁자가 있어 사랑채로 보입니다.

 

 

 

생가 본채의 뒤편으로 가보니..

 

 

 

어릴적 시골에서 보았던 지개가 벽을 의지해 기대어 서있고,

 

 

 

본채의 오른쪽에 있는 두칸의 작은 건물의 용도는 알수 없으나,

 

 

 

한칸의 자그마한 방이 있고,

 

 

 

아궁이만 있고 부엌은 없는것으로 보아,

일꾼이나 하인등이 기거 하는곳으로 여겨집니다.

 

 

 

외벽의 처마아래에는 멍석을 말아 걸어둔 모습이 보이고,

 

 

 

예쁘게 만들어둔 의자는 똥통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생가를 돌아보고 "이효석 문학관"으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잡습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일찍이 재산을 탕진한 뒤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장돌뱅이 허 생원의 얘기를 중심으로 펼쳐 지는데,

장돌뱅이 허 생원은 밥집 충주댁에게 농짓거리를 하던 젊은 장돌뱅이 동이를 꾸짖게 되고,

이 일로 두 사람은 어색한 사이가 되나 곧 화해하고 함께 달빛 속에 밤길을 걸어갑니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을 보며 허 생원은 새삼스럽게 감회에 젖는데,

젊을 적 어느 처녀와 잊지 못할 인연을 맺은 밤도 메밀꽃이 가득 피어난 달밤이었던 것으로,

허 생원의 이야기에 이어 동이는 자신의 출생과 어머니에 얽힌 얘기를 털어 놓습니다.

그런데 동이가 허 생원과 마찬가지로 왼손잡이임이 드러나면서,

소설은 두 사람이 아비와 자식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며 끝나게 됩니다.

이효석은 그의 대표작인 단편 "메밀꽃 필 무렵"에서 개연성이 옅은 우연의 연속으로 말미암아,

자칫 통속화로 흐를 수도 있는 줄거리를 사건 전환이나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상징과 암시, 여운을 적절하게 사용해,

마치 밑그림이 비치는 담채화처럼 드러내어 줍니다.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언덕위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합니다.

 

 

 

문학관으로 오르는길은 정원을 대하듯 잘꾸며 놓았고,

 

 

 

암시를 하듯 물레방아와 연필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고,

 

 

 

가산 이효석 문학비(可山 李孝石 文學碑)가 자연석을 머리에 이고 서 있습니다.

 

 

 

언덕을 오르면 문학관의 건물이 안쪽으로 보이고,

 

 

 

길 건너에는 전망대가 있어 봉평시내가 한눈에 조망이 되며,

 

 

 

식당 뒤편의 너른 밭에는 길이 이러저리 나 있는데..

 

 

 

한켠에는 하트 모양으로 길을 내어두어 눈길을 잡습니다.

 

 

 

이효석 문학관으로,

문학관은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어른은 인당 2,000원 이며,

1907년 봉평에서 태어나 1942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자취를 꼼꼼하게 살필수 있습니다.

 

 

 

문학관으로 들어가는 현관에는 추억의 빨간 우체통이 맞이하듯 서있고,

 

 

 

큰 규모는 아니지만 문학관에는 이효석과 그의 세계를 꼼꼼하게 전시해 두어,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살펴보면 1925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가작으로 당선되고,

이어 〈매일신보〉에 소설 〈나는 말 못했다〉 등과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기우 奇遇〉 등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초창기에 발표한 〈노령근해 露嶺近海〉(조선강단, 1930. 1)·〈상륙〉(대중공론, 1930. 6)·〈마작철학〉(조선일보, 1930. 8. 9~20),

〈북국사신〉(신소설, 1930. 9) 등은 경향문학의 성격이 짙은 작품들이며,

1932년부터 생활이 점차 안정되자 초기의 경향문학에서 벗어나 향토적·이국적·성적 요소에 관심을 갖고,

〈돈 豚〉(조선지광, 1933. 10), 〈수탉〉(삼천리, 1933. 11), 〈산〉(삼천리, 1936. 1~3), 〈분녀〉(중앙, 1936. 1~2) 등을 발표 했습니다.

〈돈〉은 인간의 성적 본능을 돼지의 동물적인 성본능에 비유하고 있으며,

 〈분녀〉는 성적으로 타락해가는 분녀를 통해 유교적 도덕에 과감히 도전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말에는 자연과 인간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리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낙엽기 落葉記〉(백광, 1937. 1), 〈개살구〉(조광, 1937. 10), 〈장미 병들다〉(삼천리문학, 1938. 1) 등이 이에 해당되며,

이 작품들은 이전의 향토적인 소설과 달리 서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단행본으로 펴낸 장편 〈화분〉(1939)은 〈돈〉에서와 마찬가지로 관능적인 사랑을 그렸고,

이는 인간의 본연에 심취했던 작가의 특성을 잘 보여 줍니다.

소설집으로 〈성화 聖畵〉(1939), 〈벽공무한 碧空無限〉(1941), 〈황제〉(1943), 〈월야의 두 여인〉(1962) 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것은,

이효석의 단편으로 오늘의 봉평이 있게한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한국현대 단편소설의 대표작이기도 한 〈메밀꽃 필 무렵〉(조광, 1936. 10)은 그의 산문적 서정성이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작품의 배경인 메밀꽃 핀 개울가는 단순히 정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를 하나로 포함하며, 인연의 매체로 나타나 있습니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오래전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메밀꽃 필 무렵의 부분들을 디오라마(diorama)로 표현해 두어 소설을 상기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어,

먼저 성서방네 처녀의 울음이 보입니다.

 

 

 

물에 빠진 허생원을 동이가 업고 건너는 한장면 이며,

 

 

 

한밤중에 메밀밭을 지나는 풍경을 그려두었습니다.

 

 

 

봉평장날의 장터의 풍경을 재현해 두어 찬찬이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으며,

 

 

 

이효석은 향토색 짙은 전원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학창 시절부터 러시아의 체호프와 아일랜드의 극작가 싱그의 작품을 즐겨 읽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의 서양 고전 음악에 빠져 들었으며 세련된 의상 감각과 까다로운 식성을 지니고 있던 그는,

외국 영화를 좋아하고 샹송도 즐겨 들을 만큼 유럽 문화에 다양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여,

버터 냄새 나는 작가라는 말을 듣기도 한 이효석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장면으로,

음악 애호가답게 축음기와 레코드판이 보이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인상적인데 그의 옛 사진을 재현해둔 모습입니다.

 

 

 

이번 코너는 메밀이 주인공으로,

 

 

 

우리의 생활에서 메밀의 쓰임새를 알아볼수 있는곳으로,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숙한것은 메밀로 조리한 음식이며,

봉평은 이효석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면 주민은 고작 5천700 명인데 메밀꽃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25만 명을 넘는데,

봉평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 맛보고 돌아가는 것이 메밀음식 입니다.

메밀은 지금은 성인병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황작물로 생육기간이 짧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였는데,

전국 어디에서도 메밀은 자라지만 봉평이 유명한 것은 순전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때문 입니다.

 

 

 

1990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전국 제1호 문화마을'로 지정된 "이효석 문화마을"은,

해마다 9월 메밀꽃이 만개할 때 "메밀꽃 필 무렵 효석문화제"가 열리며,

문화마을 안에는 이효석생가터, 물레방앗간, 충주집, 가산공원, 이효석기념관, 메밀 향토자료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어,

메밀꽃이 흐드러지는 9월엔 다시찾고 싶은 곳으로 봉평 이효석 생가, 문학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