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찰/영남지역

양산 통도사(通度寺)와 홍매화_190204

겨울섬. 2019. 2. 7. 00:04

설 연휴를 맞아,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靈鷲山)에 있는 사찰,

양산 통도사(通度寺)를 찾았습니다.

 

통도사(通度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며,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사찰이며,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습니다.

 

 

 

통도사(通度寺)는 서기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 하였으며,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며,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신라 이래의 전통 법식에서 벗어나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향하였는데.

서쪽에서부터 가람의 중심이 되는 상로전(上爐殿)과 중로전(中爐殿)·하로전(下爐殿)으로 이어지며,

서쪽 끝에 보광선원(普光禪院)이 자리잡고 있어 사찰의 배치도를 미리 보아 둡니다.

 

 

 

산문 앞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3호 통도사 석당간(通度寺 石幢竿)이 있어,

당간(幢竿)이란 사찰 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사찰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 큰 깃발을 달아 외부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며,

높이는 7.54m로 고려 말 조선 초의 것으로 추정하며,

당간 중앙에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개울을 건너면 마주하는 "통도사 부도원(通度寺 浮屠院)"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85호로 지정되었으며,

통도사 부도전(通度寺 浮屠殿)은 17세기부터 현재까지 통도사를 대표하는 역대 스님의 부도 60여 기와 각종 비석 50여 기가 안치되어 있어,

이곳에 있는 부도와 탑비들은 원래 통도사 주변과 산내암자에 흩어져 있던 것인데,

1993년 가람을 정비하면서 모두 이곳으로 이전하여 부도원(浮屠院)으로 조성한 것으로,

부도의 형식은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형태인 종형을 비롯하여 구형, 전각형 등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통도사만의 독특한 부도가 많습니다.

 

 

 

통도사 초입에 있는 성보박물관 앞에는 나이어린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고,

 

 

 

성보박물관을 지나면 통도사 일주문通度寺 一柱門)이 자리하고 있어,

고려 충렬와 31년(1305년)에 세웠으며,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 글씨인 "영취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의 글씨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친필이며,

 

 

 

일주문 안쪽 옆에는 수양매(垂楊梅)가 있어,

 

 

 

수양매(垂楊梅)는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지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매화로,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0호 "통도사천왕문(通度寺天王門)"이 있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 건물로 1337년(충숙왕 6)에 취암대사(翠巖大師)가 초창했다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19세기 이후의 건축양식을 보이며 내부는 중앙칸에 통로를 내고 좌우 퇴칸에 거대한 목조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배치 하였으며,

 

 

 

천왕문 옆에는 통도사에서만 볼 수 있는 전각인 가람각(伽籃閣)이 있어,

가람각(伽籃閣)은 경내 12개 법당 중 가장 작은 1칸으로 1706(숙종 32)에 세웠고, 

현재의 건물은  원명(圓明)스님에 의해 다시 지어졌으며,

 

 

 

가람각(伽籃閣)의 외벽에는 적마(赤馬)의 그림이 그려졌으나 없어졌고,

사찰의 토지를 관장하는 토지대신을 모신 곳으로 도량의 수호를 위해 안치하고 있으며 사찰의 토지를 관장하는 신(神)이라 합니다.

 

 

 

천왕문을 나서면 왼편에 정면3칸 측면2칸으로 중층 누각형식의 건물인 "범종각(梵鐘樓)"이 있어,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하는 목어(木魚)와 허공을 나는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운판(雲版)이 있으며,

법고(法鼓)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법음을 전하며 범종(梵鍾은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여 깨달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범종각 옆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있어,

극락보전은 아마타여래를 모신 불전으로 하로전 영역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말 공민왕 때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지나 19세기 초에 크게 중건한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다포계공포에 팔작지붕으로 약간 작은 규모의 건물이나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18세기 후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극락보전(極樂寶殿)의 뒤면 벽에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가 있어, 

연꽃 사이로 출렁이는 물결을 헤치고 용선은 피안(彼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반야선은 중생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정각(正覺)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반야(般若 : 일체의 사물과 도리를 밝게 통찰하는 더없이 완전한 지혜)를,

차안(此岸)의 중생이 생사고해를 건너 피안(彼岸)의 정토에 이르기 위해 타고 가는 배에 비유한 것으로,

앞에는 인로왕보살 뒤쪽에는 지장보살께서 사공처럼 서서 이들을 인도하는 반야용선에는,

한복차림에 갓을 쓰거나 상투를 튼 남자들, 쪽 찐 머리를 한 여자들, 그리고 스님들 모두가 합장하고 서방 극락세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옆에는 영취매와 통도매의 홍매화 두 그루가 있어,

한 그루 작은 매화나무는 연분홍 꽃을 피우고,

또 하나의 큰 매화나무는 진분홍 꽃을 피워 극적인 대비를 이루어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있어,

 

 

 

큰 매화나무인 "영취매"는 진분홍 꽃을 피우고,

 

 

 

작은 매화나무인 "통도매"는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어 대비를 이루는데,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여 만개는 며칠더 걸릴듯 합니다.

 

 

 

범종각 안쪽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 "통도사 만세루(通度寺 萬歲樓)"가 있어,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본래 법회(法會)나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할 때 사용하던 누각(樓閣)으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44년(인조 22) 영숙화상(靈淑和尙)이 중건 하였다고 하며, 

법회를 열기 위해 별도로 지어진 건물로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세워지기 전에는 유물 전시관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만세루 안쪽에는 보물 제1471호 통도사 삼층석탑(通度寺 三層石塔)이 있어,

원래 영산전의 남동쪽에 있었으나 1987년에 해체, 복원 당시 원래의 위치에서 약 150㎝ 정도 동북쪽으로 이동하여,

현재는 극락전(極樂殿)과 영산전(靈山殿)의 중심축에 있으며,

 

 

 

"통도사 삼층석탑(通度寺 三層石塔)"은,

방형의 이중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갖춘 통일신라 때의 전형적인 양식의 석탑으로,

하층 기단은 각 면에 우주(隅柱)와 탱주를 생략하고 안상(眼象)을 조식한 네 개의 면석이 사용되었으며,

하층 갑석은 두 개의 면석, 상층 기단은 두 개의 우주와 한 개의 탱주로 구성된 면석 네 개, 상층 갑석은 두 개의 면석으로 구성 되었고,

탑신부의 경우 몸돌에는 아무 문양이 없으며 지붕돌은 층급 받침이 네 단이며,

지붕돌에는 전각이 양끝에서 반전된 상태이고 아랫면에는 낙수 홈이 있고,

삼층 옥개석 상단의 상륜부는 대부분 유실되고 현재는 노반만 남아 있습니다.

 

 

삼층석탑 옆에는 보물 제1826호 "통도사 영산전(通度寺 靈山殿)"이 있어,

영산(靈山)은 영축산의 줄임말로 석가모니가 가장 오랫동안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던 곳으로,

영산을 이 땅에 재현한 것이 영산전(靈山殿)으로 건축 연도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건물은 숙종 30년(1704년)에 송곡 선사가 중건한 것이라고 하며,

 

 

 

영산전(靈山殿)에는 보물 제1041호 "통도사영산전팔상도(通度寺靈山殿八相圖)"가 있어,

부처님의 생애 중 중요한 부분을 8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로 세로 233.5㎝ 가로 151㎝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1740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8폭이 완전하게 잘 남아있으며,

화면 구성이 뛰어나 많은 인물과 사건을 수목과 바위, 건물 등으로 적절하게 구분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하였으며,

특히 수목과 바위는 청록산수에 수묵기법을 혼용하여 일반산수화적인 요소도 보여주고 있으며,

인물은 생동감이 넘치며 건물은 공포와 단청까지도 세밀하게 묘사 되었고,

심지어는 화문석의 문양까지도 자세하게 표현되는 등 세밀하면서도 섬세한 필치가 돋 보이는 불화 입니다.

 

 

 

영산전(靈山殿)은 다포계의 화려한 장식을 사용하여 건물의 품격을 한층 높인 것이 특징이며,

전반적인 공포의 구성이 조선 전기에서 18세기 이후에 법식화(法式化)되는 과도적인 모습을 갖춘 불전(佛殿) 입니다.

 

 

 

영산전 안쪽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 "통도사 약사전(通度寺 藥師殿)"이 있어,

정면 5칸, 측면 1칸의 다포계 맞배지붕건물로 1369년(공민왕 18) 성곡선사(星谷禪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이후 중건된 것으로,

우아한 장식 솜씨 등이 건물의 완성도를 높여 주고 있는 약사전(藥師殿)은,

동방의 정유리 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불성을 닦도록 도와주는 약사여래(薬師如来)를 모신 법당 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통도사 불이문(通度寺 不二門)"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의 조선 중기의 목조 건축물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경내의 마지막 문으로 해탈문이라고도 하며,

"불이(不二)"란 법계(法界)의 실상(實相)이 평등하고 피차의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1305년(충렬왕 31)에 창건했다고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언제 중건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세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 중건된 것으로 보이며,

"불이문(不二門)" 현판은 송나라 화가 미불의 글씨로 전해지며,

아래의 "원종제일대가람(圓宗第一大伽藍)"의 현판 글씨는,

원래 일주문에 걸려 있던 것으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친필(親筆)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불이문 안쪽에는 새해를 맞아 띠별로 소원을 빌어 보는곳도 마련되어 있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통도사 관음전(通度寺 觀音殿)"으로,

통도사의 중로전(中爐殿) 영역에 있는 3개의 불전 중 가장 앞쪽에서 남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으로,

1725년(영조 원년) 용암대사(龍巖大師)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뒤에도 여러 번 중수하였으며,

불전 내부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앞뒤 기둥 위에 직접 대들보를 걸어 넓은 내부공간을 형성 하였고,

 

 

 

불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을 안치 하였으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중생의 고뇌를 씻어 주며 세상을 구하고 생명이 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아무런 인연이 없는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마음속에 새겨 공경하고 섬기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고 합니다.

 

 

 

관음전 앞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 "통도사 석등(通度寺 石燈)"이 있어,

절 안의 어둠을 밝히고,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 줌으로써 온갖 중생을 깨우쳐 선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통도사의 석등은,

조형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 시대 초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둥근 형태의 연꽃 받침대 두 개와 그 사이를 연결한 팔각 기둥과 불을 놓는 화사석과 지붕돌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뜻 보기에는 4각형의 석등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흔치 않은 부등변 8각 석등 이라고 합니다.

 

 

 

관음전 뒤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통도사 용화전(通度寺 龍華殿)"이 있어,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건물은 외이출목(外二出目), 내오출목(內五出目)의 다포계이며,

앞면과 측면에는 공포가 짜여 있으나 측면에는 공포가 없으며 공포는 중앙 어칸에 2구의 공간포를 배치하였고,

좌우 협칸에는 각각 1구씩의 공간포를 배치 하였으며,

1369년(공민왕 18)에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지만 지금의 건물은 1725년(영조 1)에 청성대사(淸性大師)가 다시 건립한 것으로,

 

 

 

용화전(龍華殿)에는 미륵불(彌勒佛)을 봉안하고 있어,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땅에 출현하여 석가모니가 미처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님 입니다.

 

 

 

용화전 앞에는 보물 제471호 "통도사 봉발탑(通度寺 奉鉢塔)"이 자리하고 있어,

높이 260cm의 봉발탑(奉鉢塔)은 석가모니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로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봉발탑은 석가의 발우를 바쳐 장차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신앙상의 의미에서,

미륵불이 봉안된 용화전 앞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지며,

연꽃 무늬가 새겨진 하대 위에 간주와 상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육중한 뚜껑을 지닌 발우를 안치하였는데,

이러한 조형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합니다.

 

 

 

관음전 안쪽에는 문화재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오층석탑 (五層石塔)이 자리해 있고,

 

 

 

동편에는 "통도사 세존비각(通度寺 世尊碑閣)"이 자리하고 있어,

중로전(中爐殿) 영역에 있는 세존비각(世尊碑閣)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였고 평방은 가설하지 않았고 공포(栱包)는 출목(出目)이 있는 주심포식으로, 살미첨차는 쇠서의 형태로 조각 하였으며,

1706년(숙종 32) 승려 계파(桂坡)가 금강계단을 중수하면서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소장하게 된 내력을 자세히 밝힌 비가 세워진 다음 지은 것으로,

 

 

 

비석의 높이는 약 2.5m, 폭 1m 정도로 밀양의 표충비처럼 간혹 땀을 흘린다고도 하며,

비석에는 "사파교주석가여래영골부도비(娑婆敎主釋迦如來靈骨浮屠碑)"라는 또 다른 비명(碑銘)이 있고,

비문은 채팽윤(蔡彭胤,1669~1731)이 썼으며,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중국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가져온 일과,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석가모니 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둘로 나누어 금강산에 있는 서산대사에게 보냈더니,

서산대사가 하나는 묘향산에, 다른 하나는 현재의 계단에 두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존비각 옆에는 솟을 삼문이 자리해 있고,

삼문에는 "개산조당(開山祖堂)"의 현판이 있어,

 

 

 

해장보각으로도 불리는 "통도사 개산조당(通度寺 開山祖堂)으로,

개산조당(開山祖堂) 1727년(영조 3)에 창건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867년(고종 4)에 수리한 것으로,


유교 건축의 사당 형식을 취하고 있어 18세기의 전국 유명 사찰에는 원당의 설치가 유행이었는데,

대개 원당은 가람의 조직이 완비된 사찰의 기존 영역에 조성되었으며 유교 사당과 같이 솟을삼문을 세웠고,

 

 

 

개산조당(開山祖堂)에 봉안된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영정은 순조 4년(1804년)에 그려진 것으로,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신라에 화엄 사상을 최초로 소개한 승려로,

638년(선덕여왕 7)에 승실(僧實) 등 제자 10여 명과 함께 당(唐)나라로 가서 청량산(淸凉山)에서 문수보살에 기도하고 가사(袈裟)와 사리(舍利)를 받았고,

643년에(선덕여왕 12) 선덕여왕은 당 태종에게 글을 보내어 자장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여 귀국길에,

대장경 한 질과 번당(幡幢)·화개(華蓋) 등을 골고루 마련 하였는데 이때 가져온 400여 함의 장경(藏經)은 뒤에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에 봉안 되었고,

왕은 그를 분황사(芬皇寺)에 머무르게 하고 대국통(大國統)으로 임명 하였으며,

645년(선덕여왕 14)에는 황룡사(皇龍寺)에 9층탑을 세우고 제2대 주지로 취임 하였고,

646년(선덕여왕 15) 선덕여왕의 명에 따라 자장율사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은 것은,

통도사가 우리나라의 불사리(佛舍利) 신앙의 중심을 이루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만년에는 강릉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태백산에 석남원(石南院;지금의 淨巖寺)을 세웠으며 그곳에서 입적하였으며,

한국 남산율종(南山律宗)의 개조(開祖) 입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많은 이들이 찾는 통도사의 자장매(慈藏梅)는,

수령 350년의 홍매화로 통도사 경내 영각(影閣) 오른쪽 처마 밑에 자리하고 있으며,

1650년을 전후한 시기에 통도사의 스님들이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심은 매화나무로,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이름을 빌려 "자장매(慈藏梅)"라고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오층석탑 안쪽에는 국보 제290호 대웅전(大雄殿)이 자리하고 있어,

정면 3칸 측면 5칸으로 옆면이 앞면보다 긴 장방형의 건물이며 지붕도 "T"자 형의 합각지붕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로,

이러한 건물구조는 법당 안에 불상이 없는 대신 뒤쪽에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예배하고,

입구로부터 천왕문, 불이문, 탑을 잇는 직선상에 두기 위해 측면에도 합각을 만들어 놓은 것이며,

 

 

 

대웅전으로 오르는 양쪽의 계단은 고식의 아름다움을 찾을수 있고,

 

 

 

전면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의 현판이 있어,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이 각각 걸려 있지만 의미는 같으며,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었습니다.

 

 

 

대웅전 앞에는 통도사 명부전(通度寺冥府殿)이 자리하고 있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로 지정된 정면 6칸 측면 4칸의 주심포 팔작지붕 건물로,

1369년(공민왕 18)에 창건되었으며 중건 중수의 기록은 알 수 없으나,

통도사 사적비(事蹟碑)에 따르면 1760년(영조 36) 춘파대사(春波大師)가 개건(改建) 하였다고 전하며,

법당의 중앙에는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을 봉안하였고, 좌우에 다섯개씩 시왕탱(十王幀)을 안치 하였습니다.

 

 

 

명부전과 마주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 "통도사 응진전(通度寺 應眞殿)"이 있어,

정면 3칸 측면 3칸의 외2출목(外二出目) 주심포 맞배지붕의 건물로 1667년(숙종 3)에 지성대사(智聖大師)가 창건하였으나 중수연대는 알 수 없으며,

중앙에는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을 봉안하고,

좌우에 석가여래의 일생보처(一生補處)인 미륵보살과 과거불(過去佛)인 제화갈라보살(提華鞨羅菩薩)을 봉안하여,

삼세(三世)의 불상을 다 모시고 주위에 십육나한(十六羅漢)을 봉안하고 있으며 가장자리에 범천(梵天)과 제석(帝釋)을 같이 봉안 하였습니다.

 

 

 

대웅전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신라로 돌아와 영축산 아래 이곳 연못에 살았던 아홉마리 용 중에 마지막 한 마리의 용은 통도사 터를 수호할 것을 맹세하자,

자장율사가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그 용이 머물도록 하여 지금도 금강계단 옆에는 작은 상징적인 못으로 남아 구룡지(九龍池)이며,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 영험함이 있다고 합니다.

 

 

 

구룡지 옆에는 삼성각(三聖閣)이 자리해 있어,

일반적으로 다른 사찰의 삼성각에는 산신과 칠성여래, 나반존자을 모시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통도사 삼성각에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七星如來)와 홀로 깨우침을 얻은 나반존자(那畔尊者)와 함께,

지공선사(指空禪師),  나옹(懶翁), 무학대사(無學大師)등 고려와 조선 초의 고승 세 분을 삼성이라고 하여 모시고 있습니다.

 

 

 

삼성각 안쪽에는 담장을 두른 산령각(山靈閣)이 자리해 있어,

일반적으로는 산신각이라 하는 산령각(山靈閣)은 정면과 측면이 단칸으로 남향하고 있는 아주 작은 건물의 맞배지붕으로,

1761년(영조 37)에 처음 지어져 철종(哲宗) 대에 중수(重修)를 거쳤으나 1986년에 소실되었다가 당시 주지 원명(圓明)화상에 의하여 중건 되었으며,

건물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산신탱을 안치 하였으며,

산령각에서는 낮은 담장 너머로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외부에서 볼수 있어서,

 

 

 

대웅전(大雄殿)과 함께 국보 제290호로 지정된 "금강계단(金剛戒壇)"으로,

계단의 사리탑 속에는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되어 있어,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하며,

 

부처의 신골(身骨)인 사리를 봉안 하였으므로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고,

내부에는 불상 대신 거대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이 조각되어 있을 뿐이며,

 

 

 

통도사의 중심이 되는 금강계단 불사리탑(佛舍利塔)이 있어,

이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를 세 곳에 나누어 황룡사탑·태화사탑, 그리고 통도사 계단에 봉안하였다고 하는 바로 불사리 계단으로,

통도사의 특징은 이 불사리 계단에 있으며 또 이로 인하여 불보(佛寶)사찰의 칭호를 얻게 된것 입니다.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사찰이며,

수많은 문화재를 거느린 사찰로 고색의 멋을 느낄수 있는 우리나라 3대 사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먼저 피어나는 매화의 모습을 찾을수 있었던 곳으로,

경상남도 양산의 고찰(考刹) 통도사(通度寺) 방문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