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 답사/수도권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과 삼층석탑(三層石塔)_190512

겨울섬. 2019. 5. 17. 12:51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인,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과 함께있는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河南桐寺址三層石塔)을 찾았습니다.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과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河南桐寺址三層石塔)은,

각각 보물 제12호와 보물 제13호로 나란이 지정되어 있으며,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과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河南桐寺址三層石塔)이 있는,

하남 동사지(桐寺址)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절터로 사적 제352호로 지정 되었으며,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리고 있어,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있어서 인지,

사찰의 입구에서 연등과 함께 보이는 영가전이 들어오고,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는 현재 다보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어,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는 동북으로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보이는 분지에 있는 대규모 절터로,

1988년 판교∼구리 간 고속도로가 건설될 당시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는데,

이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 등 4곳의 건물터가 드러나고 금동불상, 기와, 도자기, 동으로 만든 불기류 등이 출토되었으며,

기와 중에서 “광주동사(廣州桐寺)”라는 글씨를 새긴 명문기와(銘文蓋瓦)가 발견되어,

이곳이 동사(桐寺)의 옛터라는 사실과 10세기경 새롭게 지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며,

 

 

 

 

출된 금당(金堂) 터와 불대좌(佛臺座), 건물배치 등이 독특하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중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 초기 하남을 중심으로 한 한강 이남 지역 불교계의 중심 사찰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사찰로,

후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 전기에 이르는 시기에 지어 졌으며 조선 전기 이후의 어느 시점에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남 동사지 금당 불상이 있던 곳으로,

금당 터는 현재의 법당 주변의 넓은 평지로 약 2m 높이의 기단 위에 거칠게 다듬은 사각 초석이 줄지어 있는데,

초석 배열로 미루어 볼 때 금당은 정면 7칸 측면 6간의 2층 불전이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이러한 규모는 신라시대 경주 황룡사의 금당에 필적하는 규모라 하며,

금당의 중앙에는 본존불대좌의 하대석으로 생각되는 팔각형 석재가 남아 있는데,

지름이 5.1m에 달하여 당대 최대 규모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동사지(河南 桐寺址)에 자리하고 있는 다보사라는 사찰은 규모가 작은 편여서,

 

 

 

큰 법당만 건물안에 있고,

산신각으로 보이는 이곳과 영가전 등의 전각은 건물없이 바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보사의 안쪽에는 2기의 석탑이 나란이 있어,

 

 

 

높이 3.6m의 보물 제13호로 지정된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河南桐寺址三層石塔)으로,

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이중 기단의 정사각형 석탑으로 기단의 일부가 땅속에 파묻혀 있고 일부 부재가 깨지고 없어 졌는데,

윗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윗층 기단의 면석은 모든 면이 1매씩 모두 4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면의 돌 1매가 없어 졌으며,

지붕돌은 아래면이 반듯하고 윗면도 완만한 경사를 보이지만 네 귀퉁이가 치켜올려져 있어 경쾌한 느낌을 주며,

탑의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단의 아래층 받침돌은 바닥돌과 면석을 붙여서 만들었는데 면석에는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을 새기지 않고 몇 구의 안상(眼象)을 조각 하였고,

덮개돌 윗면에는 둥글고 각진 굄이 새겨져 있지만 대부분 땅에 묻혀 있고 석재의 일부도 없어 졌으며,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각 면이 1장씩 모두 4장으로 구성 되었는데 남쪽의 면석은 없어졌고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고,

덮개돌로는 2장의 널돌을 놓았는데 밑면에는 얕은 부연(副椽)이 있고 경사가 뚜렷한 윗면에는 네모지고 둥근 굄이 있으며,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 졌으며,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만 있을 뿐 다른 조각은 없고 지붕돌의 추녀 밑은 수평이고 받침은 1층과 2층이 5단이지만 3층은 4단으로,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한 편이고 처마와 처마가 맞닿은 전각(轉角)의 반전은 뚜렷한 편 입니다.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는데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진 상태이며,

 

 

 

동사지 삼층석탑(桐寺址 三層石塔)은,

1966년에 보수공사를 할 때 석탑 안에서 납석(蠟石)으로 만든 작은 탑인 "납석제소탑" 29기와 동제여래입상 등이 기단부에서 발견 되었는데,

동사지 삼층석탑 석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각 층 몸돌의 체감률로,

1층 몸돌이 지나치게 넓고 높은 것에 비해 2층과 3층 몸돌의 그것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지붕돌도 몸돌에 비례해서 크게 줄었은데,

이와 같이 뚜렷한 체감률은 다른 석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으로,

뚜렷한 체감률에 비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고 석재 또한 양질의 것을 사용하여 명확하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단면의 정사각형 탑으로,

세부 수법에서도 신라 석탑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는 고려 중기의 삼층석탑(三層石塔) 입니다.

 

 

 

 

동사지 삼층석탑(桐寺址 三層石塔)의 뒤에는,

보물 제12호인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이 자리하고 있어,

지역명을 따라서인지 "광주 춘궁리 오층석탑(廣州 春宮里 五層石塔)"으로 불리기도 하며,

 

 

 

 

높이 7.5m의 크기로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계승한 방형 탑인 오층석탑(五層石塔)으로,

전체적으로 신라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기는 하나 석재결구에서 통일성이 없어 난조를 보이고 있으며,

기단과 1층 탑신부가 육중한 데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드는 강한 체감비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균형미가 부족한 편이며, 

오층석탑(五層石塔) 이면서도 장중한 맛이 적은 편이나,

 

 

 

각 부의 결구(結構)는 규율성이 있고 탑신부의 각층 비례도 조화를 이루어,

아직도 격을 잃지 않은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건립 연대는 고려 중기일 것으로 추정하며,

1965년 12월∼1966년 1월에 삼층석탑과 함께 보수공사를 할 때 2층 기단임이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기단은 여러 개의 판석으로 구성된 지대석 위에 설치되어 있으며 지대석 윗면에는 1단의 굄이 있어 중석을 받치게 되어 있어,

중석도 수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얕게 모각되어 있고,

중석의 남쪽 면이 파손되어 내부 중심에 높이 1.1m, 너비 0.93m의 탑의 중심기둥 돌인 찰주석(擦柱石)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갑석(甲石)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밑에는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윗면에는 탑신 굄대가 모두 낮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오층석탑(五層石塔)의 윗면은 현저한 경사를 이루며 탑 옥개석의 귀마루인 "우동(隅棟)"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탑신부의 구조는 특이하여 1층 옥신은 갑석 위에 네 개의 방형석(方形石)으로 1단을 만들고 그 위에 1판석을 얹어놓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층 이상의 옥신은 각각 1석으로 체감률이 강한 편이고 1층 옥신을 비롯하여 각 층의 옥신에는 모두 우주 모양이 얕게 모각되어 있는데,

옥개석은 1층부터 3층까지는 4판석으로 조성되어 있고 4층은 2판석, 5층은 1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옥개 아랫면의 받침은 1층이 5단, 2층부터 4층까지가 4단, 5층이 3단으로 차례로 줄어 들었고,

상층에 이를수록 옥신을 따라 급속한 체감률을 보이고 있어,

각 층의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었고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나 우동은 뚜렷하며 전각의 반전도 경쾌하며,

상륜부는 일반적인 법식을 따른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둔 장식인 "노반(露盤)"만 남아 있습니다.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은 탑신의 비례가 조화로운 작품으로,

이 탑 주변의 땅속에서 납석제수연(蠟石製水烟)이 출토되고 4층 옥개석 중앙부에서는 사리공(舍利孔)이 확인 되었으며,

이 탑은 신라 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정사각형 석탑으로 1층의 옥신이 2단으로 이루어진 점이 특징으로,

이것은 신라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으로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과 같은 양식이며,

각 부의 결구(結構)는 규율성이 있고 탑신부의 각층 비례도 조화를 이루어 격을 잃지 않은 우수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절터이며,

고려 초기 하남을 중심으로 한 한강 이남 지역 불교계의 중심 사찰 였으나,

조선 전기 이후의 어느 시점에 폐사 되어버린 "동사지(桐寺址)"에서 찾을수 있는 보물 문화재로,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과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河南桐寺址三層石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