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강정이라고 하면,
흔히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에 있는 "합강정"을 떠 올립니다.
그러나 경남 함안에도 합강정이 있습니다.
강원도 인제 합강정이 내린천과 북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면,
함안 합강정은 지리산에서 발원한 남강과 태백산에는 발원한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1km정도 아랫쪽 용화산 낙동강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용화산(龍華山) 기슭의,
낙동강변의 절벽위에 있는 정자 합강정(合江亭) 입니다.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마을을 지나 낙동강둑을 만나 용화산의 임도로 한참 올라서 돌아가면
임도 끝나는 즈음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며 임도에서 내려다 보입니다.
넓게 정비를 잘해둔 주차장이 있으며,
차를 내리면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은행나무 입니다.
수령 400여년의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남지의 너른 들녁 앞의,
확 트인 낙동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합강정의 입구에는,
이곳의 역사를 알려주는 비가 2기 서있고,
정자의 강쪽 담장 옆에도 노거수가 우뚝하게 서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합강정의 외삼문인 낙원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합강정(合江亭)이 자리해 있습니다.
조임도(趙任道)가 1633년(인조 11)에 은거, 수학한 곳으로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으나,
여기가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므로 합강정이라는 이름의 편액을 정자에 걸게 되었다 합니다.
합강정(合江亭)의 현판입니다.
간송은 인조때의 문관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으며 장현광에게 학업을 닦았고,
40여년 동안 큰뜻을 품고 자신을 편달하면서 숨어 살았다.
인조반정 후 벼슬이 공조좌랑에 이르렀고 현종때 어사 남구만의 서계로 행의의 표창을 받았으며,
진계의 소를 올리고 죽었는데 함안조씨 중 학문으로는 최고로 꼽는다.
간송 조임도 선생은 생육신 조여의 5대손이며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출생한 조선시대의 학자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가져온 글입니다)
대청의 안쪽에도 또다른 현판이 보이며,
아마도 예전에 사용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이곳도 문짝등 일부를.
부분적으로 보수를 해둔 흔적이 보이며,
이곳에 사람은 살지 않는듯 하지만,
외딴곳임에도 불구하고 개방이 되어있으며 관리를 잘해둔 모습입니다.
마루에서 들어왔던 낙원문쪽을 내려다 봅니다.
조임도는 장현광(張顯光)의 제자로,
학문에 전념하여 인조반정 후 학행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되어,
한때 공조좌랑(工曹佐郞)이 되었고,
인조·효종 때에는 대군의 사부로서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이 곳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정자는 1633년(인조 11)에 건립한 팔작 지붕구조의 기와집인데,
근년에와서 중수 하였다고 합니다.
정자 왼쪽에는 또하나의 건물이 있으며,
합강정을 보좌해주는역활을 하거나 서고의 용도인듯 합니다.
앞부분의 회벽이 일부 떨어져 나간탓에,
이곳 벽면의 구성부분을 들여다 볼수가 있습니다.
이곳에 소장되어있는 문화재로는,
간송 조임도의 문집을 인쇄용 목판으로 판각한것으로 190매가 있다고 합니다.
합강정에서,
주차장의 윗길로 나오다 보니,
산아래엔 예전의 우물로 사용한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얼마전 까지는 사용한 우물인듯,
주변과 우물의 물이 생각보다 깨끗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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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곁에 서있는,
나무의 가지의 형상이 특이합니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간송 조임도가 지은 정자 합강정 아래에서,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 등이 배를 띄워 유람을 했다는 유서깊은 곳이며,
"성재" "허전" 선생은 "노필연", "조응규" 등을 비롯한 70여명의 문도들과 함께 함안의 합강정(合江亭)에 모여,
유람을 그때 지은 시를 모아 ‘용화동주록(龍華同舟錄)’을 남겼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임도가 있어서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지만,
옛날에는 강과 산으로 막혀서 오지중의 오지라고 할만합니다.
마당앞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남지의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합강정(合江亭)을 나오며 학문과 자기수양을 했던 선비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