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주변의 문화재 돌아보면서 찾은곳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에 있는 건축물인 지수당(池水堂)입니다.

 

지수당으로 들어가기전,

남아있는 두개의 연못중 서쪽 연못에 있는 관어정(觀魚亭)을 먼저 돌아봅니다.

 

 

 

 

지수당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3개의 섬중 소도에 있었다고 하는 관어정터 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있습니다.

 

 

 

 

관어정(觀魚亭)이 있었다는 소도의 모습으로,

쪽배를 타고 정자를 오가며 물고기 노는 것을 보고 즐겼다'는 곳입니다.

 

 

 

 

관어정(觀魚亭)에 대한 이야기로,

춘추전국시대에 수나라의 대군이 쳐들어 오는데,

제갈공명이 한가하게 관어정에서 잉어들이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군주인 유비가 "공은 지금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한가하게 잉어들이 노니는 것을 보고만 계십니까?"

그러자 제갈공명이 "지금 잉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수나라의 대군을 어떻게 물리칠까 병법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하였다.

라고 전하는 유명한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지수당의 못 가운데 있으며 한 채의 기둥이 6개로 되어 있었으며,

순조 4년(1804) 유수 김재찬(金載瓚)이 지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섬가운데의 향나무와 소나무가 관어정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듯 하는데,

고증을 통하여 하루속히 예전의 아름다운 정자로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바램입니다.

 

 

 

 

산성마을 안에 자리한 멋진 정자인 지수당(池水堂) 입니다.

"지수당" 이란 뜻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정 남한지"에 남학명 이라는 사람이 쓴 "지수당기"를 보면 "백성을 포용하고 기른다" 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1672년(현종 13) 부윤 이세화(李世華:1630∼1701)가 연못을 파고 건립한 정자로,

 

 

 

 

당의 앞뒤에는 세개의 연못이 있어,

당시 고관(高官)들이 즐기던 낚시터였으나 지금은 연못하나가 매몰되고,

두 개의 연못과 누각 한 동이 남아 있으며 제 3연못지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논이 있다고합니다.

 

 

 

 

지수당의 건물구조는 방형 초석 위에 각주(角柱)를 세운 목조와가로,

팔작지붕으로 된 굴도리(둥근 도리)계 누각이며,

정자 옆의 연못은 'ㄷ' 자형으로 파서 연못이 정자를 둘러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이것은 1925년의 대 홍수때 매몰된 정자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래 'ㅁ'자 형의 연못에 있는 정자를 완전 복원하지 못한 것이 현재의 정자 모양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안내문에 있는 지수당(池水堂)의 옛모습으로,

고풍스런 당시의 멋을 느낄수있는 옛사진 입니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물길의 동편에 자리한 지수당은,

건너 보이는 서쪽의 소도에 있었던 관어정을 마주하고 있어,

두개의 정자가 함께 했었을 그옛날 이곳의 정취를 되새겨 봅니다.

 

 

 

 

누각 앞에는 1714년(숙종 40) 이세화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둔 공덕비가 있으며,

앞면에는 ‘부윤 이세화의 청덕민 선정비’라는 글이,

뒷면에는 ‘숭정후 87년 갑오년 3월일립(崇禎後 八十七年 甲午年 三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세화의 호는 쌍백당(雙栢堂)이며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문관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진노로 정주로 유배되었으며,

그뒤 진실을 알게되어 크게 뉘우친 숙종이 대사헌, 호조판서로 발탁했으나 사양하였다가,

후에 세자빈객, 공조·형조·병조·예조 판서 등을 지내고 풍계의 충렬사(忠烈祠)에 향사되었으며,

고향에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진 인물입니다.

 

 

 

 

지수당(池水堂)의 현판이며,

 

 

 

 

잘다듬어 세운 주춧돌과,

나즈막한 디딤돌 위의 마루는 높지않게 깔아두어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천정의 공포의 모습도 살펴보고..

 

 

 

 

팔작지붕 아래의 우물반자와 단청의 모습도 살펴봅니다.

 

 

 

 

남한산성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명확한 고증으로 제대로된 지수당의 주변환경과 관어정의 복원을 기원하며,

관어정(觀魚亭)터와 지수당(池水堂)의 답사를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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