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청룡사(靑龍寺)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선리에 있는 작은 사찰로,

신라시대 문무왕 16년(676)에 의상조사가 세웠다고 전하는데,

의상은 영주 부석사를 세울 때 기둥이 자꾸 무너지고 공사가 어려움에 부딪치자,

부석사 서천의 기운이 허하기 때문이라고 여겨,

예천 주마산 남쪽에는 한천사를 선리에는 청룡사를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또한 이 절터는 원래 큰 호수였으며,

이곳에서 청룡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본 어느 교도가,

못을 메우고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도 전해오고 있으며,

 

창건설화 이후의 역사는 현재 전하지 않는데,

1935년에 김준팔(金俊八)씨가 초라한 불당을 세워 불상을 안치 하였고,

그 뒤 자비화(慈悲華)라는 노보살이 40년 동안 홀로 절을 지키면서 불심을 일으킨 후,

조계종의 비구니 스님이 일시 주석하다가 현재는 대한불교법화본종 소속의 사찰로,

혜선(慧禪)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며 불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예천 청룡사(靑龍寺)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2기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어,

 

 

 

 

대한민국의 보물 제425호인 "예천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醴泉 靑龍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과,

보물 제424호인 "예천 청룡사 석조여래좌상(醴泉 靑龍寺 石造如來坐像)"으로,

 

 

 

 

예천 청룡사 석조여래좌상(醴泉 靑龍寺 石造如來坐像)은,

불신 높이 93.5㎝에 머리 높이 32㎝이며,

대좌와 광배를 갖춘 완전한 불상으로서 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 되는데,

원래 광배는 같은 전각 내에 봉안된 고려시대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25호)과,

이 석조불좌상 중 어느 것에 부착되었던 것인지를 판별할 수 없어 중간에 걸쳐 놓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 조각 수법이나 실측치 등을 볼 때 이 여래상의 광배로 확증되어 현재 여래상에 부착시켜 놓았으며,

 

 

 

 

불상의 광배는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유행한,

전형적인 주형 광배(舟形光背)로서 장식 문양이 다채로운데,

2조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 하였으며,

두광의 가운데에는 홑잎의 8엽연화문을 두르고 주위를 보상화문(寶相華文)으로 장식 하였고,

신광에도 보상화문을 두르고 있으며,

광배 둘레에는 화려한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머리에는 높고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고 머리카락은 나발(螺髮)이며,

얼굴은 온화한 편으로 둥글면서도 갸름한 모습으로,

활꼴의 눈썹 사이로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이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가늘고 긴 눈, 평평한 코, 작은 입 등은 비교적 정제되고 원만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턱 밑에는 둥근 홈이 패어 얼굴이 한결 풍만한 느낌이 듭니다.

 

 

 

 

통견(通肩)의 법의로 감싼 신체는 8세기의 이상적 사실주의(寫實主義)에서 벗어나,

9세기의 위축되고 긴장감이 빠진 듯한 불상의 신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그러나 무릎이 넓어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며,

옷주름은 각선(刻線)이 뚜렷한 평행 옷주름 선으로 사실적이며 유려하며,

양어깨에 걸쳐 흘러내린 법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한 두 손을 덮고,

무릎 옆으로 평행한 주름을 이루었으며,

하의의 옷주름도 역시 결가부좌한 무릎 위로 평행한 주름 선을 이루며 부드럽게 감싸고 있습니다.

 

 

 

 

무릎 아래로는 주름치마와 같은 옷자락이 늘어져 있으며,

이것은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된 여러 불상들 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이 불상의 옷주름이 가장 사실적이며 정제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당당하면서도 움츠러든 것 같은 조각 수법에 긴장감이 줄어든 부드러운 신체의 표현,

대좌와 광배의 형식 등에서 볼 때 8세기경의 이상적 사실주의 형식에서 출발하여,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넘어가기 전인 9세기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조여래좌상 안쪽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이 안치되어 있어,

 

 

 

 

보물 제425호인 "예천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醴泉 靑龍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으로,

신체 높이 111㎝에 머리 높이 33.5㎝이며,

 

 

 

 

이 불상은 대좌만을 갖추고 있으나,

불상의 뒷면에 광배를 부착하였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광배도 갖추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에는 넓고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으며 머리카락은 나발(螺髮)이며,

얼굴은 거의 사각형에 가까워 넓고 풍만하지만 볼륨이 별로 없고 평판적이고,

가늘고 긴 눈은 거의 직선에 가깝게 표현 되었고,

코는 파손되었으며 코와 입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아 특이한 인상을 주는데,

목에는 삼도(三道)가 희미하게 표현 되었습니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무겁게 처리 되었고,

옷주름은 평행선으로 나타 내었는데,

어깨부터 양손에 걸쳐 흘러내린 옷주름 선은 유려하기는 하나,

형식화되어 부자연스러운 주름을 형성하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 부근에서 오른손을 위, 왼손을 아래로 포개어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있으며,
두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나,
법의가 두꺼워 다리의 윤곽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대좌는 방형 대좌(方形臺座)로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 졌는데,

상대석의 4면에는 각 면에 3엽씩 모두 12엽의 단판연화문(單瓣蓮花文: 홑잎의 연꽃잎무늬)이 조각 되었고,

연화문 안쪽에는 꽃무늬가 장식 되었고 상대석 아래에는 2단의 각형(角形)과 1단의 굄으로 받침을 삼고 있습니다.

 

 

 

 

대적광전에 모셔졌던 청룡사 석불여래좌상 보호각은,

공장에서 제작해서 현장으로 운송하여 설치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고 하며,

향후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용이하게 이동식한옥으로 제작 설치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남아 있는 사찰인 청룡사(靑龍寺)에서 만난 불상으로,

경북 예천의 보물 문화재인 "예천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醴泉 靑龍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과,

"예천 청룡사 석조여래좌상(醴泉 靑龍寺 石造如來坐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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