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정자를 꼽는다면,

경복궁(景福宮)에 있는 향원정 (香遠亭)과  수원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을 이야기 합니다.

수원 화성을 휘돌아 보면서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을 즐길수 있었는데,

방화수류정의 밤풍경도 빠트릴수가 없어서 하루동안의 낮과 밤을 살펴보았습니다.

 

방화수류정은,

수원 화성에 속해 있어서 화성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기에 살펴 보자면,

성 길이 5520m, 성내 면적 : 1.3㎢의 크기로 수원화성은 거중기와,녹로등을 이용하여 쌓았다고 하며,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화성은 중국,일본 등지에서 찾아볼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있는 동양성곽의 백미라 할수있습니다.

 

 

 

방화수류정을 들어가려면 북수문(北水門)곁을 지나가야 하는데 북수문 앞에서 볼수있는 이정표 입니다.

 

 

 

수원성곽 내의 북쪽 수문인 화홍문(華虹門)으로, 

일명 ‘북수문(北水門)’이라고 하며  아래에 수문이 있고 그 위에 문루가 있습니다.


수원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광교천(光敎川)이 여름에 자주 범람하므로,

1796년(정조 20) 성곽을 신축하면서 준설하고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는데, 그 중 상류에 해당하는 북쪽 수문으로,

성곽 내의 시설물 중 상당수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파괴되었으나 이 부분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된 모습으로,

수문은 모두 7개의 석조아치로 만들어졌는데 가운데 한 칸이 약간 넓고 나머지는 아치 너비가 8척, 높이 7척 8치로,

아치와 아치 사이는 네 개의 돌기둥을 세워 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습니다.

아치 위로는 다리돌을 놓아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바깥쪽으로는 벽돌로 낮은 성벽인 첩(堞)을 쌓았고  첩에는 네모난 대포 구멍을 뚫고 그 위에 소포(小砲) 구멍 14개를 뚫었습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입니다.

"수원 화성의 아름다움을 품다” 라는말이 무색하지 않게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줍니다.

1794년(정조 18) 수원성곽을 축조할 때 세운 군사용 누각 중에 하나인데,

특히 경관이 뛰어나 방화수류정이라는 당호가 붙여졌다고 하며,

수원성의 북수구문인 화홍문의 동쪽에 인접한 높은 벼랑 위에 있는데

2011년 3월 3일에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170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3칸의 아자형 평면구조이며,

지붕은 8각지붕을 기본으로 남북에 합각을 더 세워 십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삼절병통이 얹혀 있는 구조 입니다.

 

 

 

정자로 오르는 유일한 통로인 돌계단으로 견고하게 놓여진 모습을 볼수가 있고,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의 현판으로,

정자의 이름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 정명도의 시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 에서,

따온 것이며 현판의 글씨는 서예가인  원곡(象形)  김기승( 金基昇:1909 ~ 2000)의 글씨 입니다.

 

 

 

방화수류정으로 오르면 조금 복잡해 보이는 천정구조를 볼수가 있고,

 

 

 

정자에 올라 들어온 곳을 살펴봅니다.

방화수류정은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는곳으로,

 

 

 

용연이라는 이름의 연못의 한쪽이 보여지는데,

 

 

 

용연((龍淵) 이라는 이름의 인공 연못으로,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은 용연을 빼놓고 이야기 할수 없습니다.

 

 

 

정자안에서 뿐만 아니라,

길다란 마루에 난간을 두어 즐길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정자 아래로는 버드나무가 우거진 연못인 용연이 드리워져 있고,

곁에는 수원성의 수문인 화홍문을 두고 있어 방화수류정에 올라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입니다.

수원성에 꽃이 만발하는 봄날에 연못의 봄놀이를 즐기기에도 좋고,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 달밤의 정취를 즐기기에도 좋은곳 입니다.

 

 

 

수원시내와 함께 화성의 북쪽 관문인 장안문의 모습도 조망이 됩니다.

 

 

 

방화수류정의 정자에는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이,

전통 무관복식에 칼을들고 계시는 모습에서 이곳의 옛모습을 찾을수가 있습니다. 

 

 

 

아름답게 꾸며진 정자의 난간과 장식을 살펴보고,

 

 

 

초석과 기둥, 그리고 마루와 그아래 쌓아올려둔 벽돌 구조도 살펴봅니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정자라는 뜻으로,

조선 정조가 1794년 수원 화성을 쌓으면서 만든 화성을 둘러 싼 4개의 각루 중 하나이며,

화성 각루 중 화홍문 옆에 위치한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아름다운 건축양식과 섬세한 조각으로,

조선후기 한국 건축 예술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건축물로 조선 정자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방화수류정 자체의 아름다움도 훌륭하지만,

일대의 풍광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곳 입니다.

 

 

 

그런 연유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를 꼽으라면,

단연 수원 화성의 각루인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을 빼놓을수 없는 이유입니다.

 

 

 

"控長安 接華虹 ?角相須 以制一面者也" 이란 문장에서

『화성성역의궤』에 나오는 화성의 방화수류정에 대한 설명으로,

“장안(문)을 끌어 당기고 화홍(문)과 맞붙게 함으로써  서로 앞뒤에서 도와가며,

적을 견제하는 형세를 취할 수 있어 서로 협력하여 상승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로써 한 면의 장소(곳)은 규격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화성을 한바퀴 돌아본후,

저녁식사를 마친후 방화수류정을 다시 찾았습니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야경이 더욱 아름답다는 이야기 덕분에 기대감으로 가득합니다. 

 

 

 

북수문인 화홍문의 야경은 낮과는 또다른 신비감이 있습니다.

무지개를 의미한다는 일곱개의 수문이 있어 다욱 운치있는 화홍문 입니다.

 

 

 

낮과 같은 코스로 화홍문을 지나 방화수류정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화홍문 옆면의 성과 각루의 맞닿는 부분을 살펴 봅니다.

 

 

 

이른 저녁에는 화홍문의 누각도 개방이 되어  루에 올라 방청취를 즐길수도 있습니다.

 

 

 

밤의 방화수류정입니다.

이 정자는 전시용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히 사용해 조성된 건축물로,

이 건축물의 특징은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자의 형태는 처마나 기둥은 ㄱ자로 꺾이면서 다시 튀어나오고,

지붕도 꺾이길 반복하며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로 지었다고 하는데,

방화수류정의 지붕구조를 제대로 보려면 지대가 높은 동쪽 북암문에서는 볼수가 있다고 하며, 

조선후기 건축의 백미인 이 정자에서 멀리 내려다보면, 동으로는 연무대와 동북공심돈, 서로는 장안문과 팔달산이 한눈에 조망이 되며, 

과거에는 이 일대는 노송이 우거져 장관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보는 위치에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데, 

밤의 방화수류정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낮에 올랐던 계단을 다시 올라봅니다.

 

 

 

늦은 시간여서인지 아무도 없는 텅빈 정자에 들어섭니다.

 

 

 

정자에 올라보니 멀리 서장대의 불빛이 아득하게 들어옵니다.

 

 

 

화성의 성벽과 장안문의 모습이 함께하여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합니다.

 

 

 

방화수류정의 단짝으로 빠질수없는 용연의 야경입니다.

 

 

 

연무대 방향으로 화성의 성벽을따라 동북포루의 야경도 눈에 들어옵니다.

 

 

 

고개를 돌려 장안문의 아름다운 밤모습도 다시 살펴 보고 방화수류정에서 내려옵니다.

 

 

 

정자를 내려와 북암문으로 내려가 봅니다.

 

 

 

정자의 바로 아래에 있는 북암문(北暗門)으로,

적이 알지 못하도록 후미진 곳에 문을 내어, 평상시에 사람, 가축, 수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 암문(暗門)이라고 합니다.

 

 

 

북암문으로 나가면 용연(龍淵)으로 바로 닿을수 있어 용연에서 정자를 감상할수도 있습니다.

 

 

 

북암문을 뒤로하고 화홍문을 거쳐 용연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북암문에서 동북포루는 좀더 가까워진 모습이고..

 

 

 

왔던길을 찾아 화홍문을 지나 용연으로 가는 길을 향합니다.

 

 

 

화홍문 아래로 흐르는 유천(수원천의 옛이름) 주변의 모습도 고요합니다.

 

 

 

용연(龍淵)에서 보이는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용머리라는 이름의 암벽위에 날개를 펼친 봉황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용연(龍淵)은 수원천 방향으로는 돌로 용머리를 만들어 그곳으로 물길을 내어,

호수에 물이 넘칠 때를 대비했는데 세월이 흘러 용연 주위가 많이 매몰됐지만,

창건 당시의 방화수류정 일대의 풍광은 대단히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는데,

정조는 화성행차 시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조선의 문화와 서구의 문화가 공존하는 거대한 도시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용연(龍淵)은 당시의 사람들은 용연에는 용이 사는 곳으로 믿었는데,

용은 왕을 상징했으며, 용연은 용지대월(연못에 달빛이 스며드는 아름다운 곳)이라 불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용연에 비친 달빛을 보며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했다고 하며,

그래서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수원유수부사는 백성들과 함께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화홍문의 휘날리는 깃발을보며,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7~1800)가 꿈꾸었던 세상과,

그 뜻을 완전히 펼치지 못하고 장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려서 커다란 아쉬움이 가득 합니다.

 

 

 

"방화수류정을 보지 않고는 수원을 간 적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허언이 아님을 알게된, 

낮과 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나라안 제일가는 빼어난 정자 방화수류정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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