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國立民俗博物館)을 찾았습니다. 

 

우리나라 국보의 모습을 본 떠서 만든 국립민속박물관(國立民俗博物館)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사용했던 건물로 1972년 완공 되었으며,

역사책이 말하지 않았던 옛사람들의 삶을 살펴 볼수있는 곳으로, 

정면 계단은 불국사의 "청운·백운교"(국보 제23호)를 건물 중앙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의 모양을 차용해온 것으로  2030년 철거 예정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國立民俗博物館)에는 세 개의 상설전시장관이 있어,

제1 전시관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았던 역사를 알 수 있는 "한민족 생활사"를 살핑수 있고,

제2 전시관인 "한국인의 일상"관은 과거의 조상들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곳이며,

제3 전시관은 조선시대 양반가 사람들의 주요 의례 생활을 알 수 있는 "한국인의 일생"을 테마로 전시하고 있어,

이번 장 에서는 제1 전시실의 "한민족생활사"편을 추려서 살펴 보기로 합니다.

 

 

 

제1 전시실의 "한민족생활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전시물 3가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솥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이며,

이름 그대로 둥근 솥처럼 생긴 반구 안에는 가로선과 세로선이 그어져 있는데,

침의 그림자 끝이 닿는 지점의 가로선이 절기를 나타내고 세로선이 시각을 나타내고 있어,

앙부일구는 시각과 동시에 그날의 절기까지 알려주는 달력 겸용 시계 였으며  옆에 흰색의 "휴대용 앙부일구"도 있으며,

기장 작은 끈이 달린 "선추(扇錘)"는 부채의 자루 끝에 달아 장식으로 쓰는 소품으로 해시계가 달려 있는데,

선추는 말단직이라도 반드시 벼슬아치라야만 장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며,

양반들이 풍류와 더불어 멋을 풍기는 사치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일용지결(日用指訣)"은 1880년 퇴계학파의 인물인 윤최식(尹最植)이 선비들을 위하여 저술한 생활 지침서로,

선비의 하루 생활을 12등분하여 시간마다 선비들이 지켜야 할 행동세칙을 기록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방일한 마음을 거두고 성인의 도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선비의 부단한 노력이 잘 표출된 저서라 할수 있습니다.

 

 

 

옛 선비의 일상에서 봉제사 접빈객(奉祭祀接賓客)은 중요한 덕목으로,

손님을 맞아(接賓客) 다과상 등으로 예를 다해 음식을 대접하고 학문과 시(詩)를 짓는등 교류를 통하여 다양한 정보를 접 하였고,

 

 

 

유교에서 군자(君子)는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이르는 말로

곧 선비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단정히 앉아,

진흙으로 만들어 낸 사람처럼 감정이 없는 양 엄숙하게 지내는 생활 습관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그가 저술하는 글이나 이론이 돈후하고 엄정하게 되며 그러한 뒤에야 위엄으로 뭇사람을 승복시킬 수 있고 명성이 퍼져나가게 된다"라고,

군자(君子)가 지녀야할 덕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찰(視察)"이란 화두로 관리(벼슬아치)의 복장을 진열해 두어,

관리는 마을또는 지역을 다니며 살피고 주민의 어려움을 듣고 불편함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업무로,

관리가 해야 하는일 가운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왼쪽의 "농서부책(農書簿冊)"은 1799년(己未) 2월에 전라도 남평(南平) 유학(幼學) 이형복(李馨福)이 작성한 필사본으로,

수리시설의 진흥(興水功), 농기구의 사용(利農器), 토질 관리(相土宜) 등의 관점에서 농업 문제를 해결하자는 내용의 농서(農書)이며,

옆의 "법왕동 두창리 동중약조절목"은 충청도 충주시 법왕동 두창리의 동약(洞約) 규정을 적은 책으로,

여유있는 이들이 돈을 걷어 학문에 뜻을둔 살람을 돕거나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행사에 보태어 주는 공동체의 결속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긴 모양의 나무상자는 "김 이 조 합기"로,

김씨(金氏), 이씨(李氏), 조씨(曺氏)의 집안에서 함께 마련하여 마을행사와 같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릇 등을 보관하는 도구이며,

 

 

 

통나무로 만든 "구유"는,

소 또는 말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먹이 통으로 가축의 외양간에 두거나 설치하여 사용하였고,

 

 

 

구유 옆에 있는 짚으로 만들어 둔 닭의 보금자리인 "닭둥우리"로,

곁에 닭과 병아리를 두어 이해하기 쉽게 해 두었습니다.

 

 

 

옛날 식재로를 구하기 어려웠던 겨울철의 밥상과,

농사가 없는 겨울철에는 실을 뽑거나 도구를 짜는등 실내에서 할수있는 도구들로 겨울생활을 보여주고 있어,

 

 

 

솜이나 고치에서 실을 자아내는 틀인 물레와 실패 등의 모습으로,

겨울철 부녀자들은 실을 감아 베를 짜는 준비 하는일을 하였슴을 알려 줍니다.

 

 

 

1766년(영조 42)에 내의 유중림(柳重臨)이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증보하여 엮은 농서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로,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이 아니라 노동력을 덜 들이고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며 농산물의 상품화를 전제로 하는 등의 내용으로,

농업의 백과사전이라 할수 있는 책입니다.

 

 

 

겨울철에 봄의 농사 준비를 위한 것들로,

바닥에는 곡식을 담기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섬(가마니)"이 있고 짚으로 새끼를 꼬는 도구인 "자세"가 있으며,

거적을 짜는 도구인 "거적틀"이 있어 주로 남자들의 작업도구 입니다.

 

 

 

또한 농한기인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는 옛사람의 모습을 볼수 있으며,

 

 

 

다소 생소한 도구의 모습으로,

한자어 표기로는 목마(木磨)로 표기하며 지역에 따라서 통매 또는 나무매 라고도 하며,

벼 껍질을 벗기는 데 쓰이는 통나무로 만든 농기구인 "매통"으로,

맷돌과 유사한 원리로 벼의 껍질을 벗겨 쌀로 만드는 도구 입니다.

 

 

비바람에 꺼지지 않게 둥근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촛불을 켜는 등인 "조족등(照足燈)"은,

"불빛이 발밑을 비춘다" 하여 조족등(照足燈) 이라고 하며,

형태가 둥근 박과 같아 박등 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순라꾼들이 야경을 돌며 도적을 잡는데 사용하여 도적등이라는 별칭이 있는 도구로,

밤길에 길을 비추기 위해 들기도 하지만 궁중의 빈전(殯殿) 대들보에 달아 마루를 비추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사용계층은 궁궐 및 관청의 순라군들이 야간순찰을 돌 때 사용하였고 반가(班家)의 하인들이 야간에 어른을 모시고 외출할 때에도 쓰였습니다.

 

 

 

밤에 불을 밝히기 위한 또다른 도구들로,

오른쪽 뒤편에 우리가 잘알고 있는 실외용인 "초롱"이 있고,

왼쪽에 집안에 걸어두거나 외출시 밤길 밝히는데 사용하는 등기구인 "수동"이 있으며,

맨 앞에는 불씨를 옮기거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사용하는 "미심"이 자리해 있습니다.

 

 

 

발효음식인 장류와 김치 등을 저장하는 용도인 항아리로,

단지, 장독으로도 불리며 우리나라 각지역의 특성이 있는 항아리들을 모아 두었고,

 

 

 

나무가 많은 강원도에서는 나무로 만든 "나무독"이 대표로 나와 있어,

 

 

 

나무독은 굵은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들었으며,

아랫면에는 판자로 막음하여 두었습니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겨울의 외출시 의복을 볼수 있고,

 

 

 

양반가의 밥상으로,

먹고살기 힘들었던 서민에 비해 반찬 그릇이 제법 많습니다.

 

 

 

냉면을 뽑아 내는 기구도 전시 되어 있으며,

 

 

 

"소목장(小木匠)"은 나무로 창호(窓戶), 목기(木器), 목가구(木家具) 등을 제작하던 장인으로,

장인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화면을 통해 기구의 사용 용도와 작업 과정을 살필수 있으며,

소목장이 만든 장롱(欌籠), 궤함(櫃函) 등 세간들을 진열해 두었습니다.

 

 

 

각 지역의 "반닫이"를 진열해 두어,

반닫이는 정면의 반쪽만을 젖혀 열도록 두꺼운 궤(櫃) 모양으로 만든 가구로,

책, 두루마리, 의복, 제기 따위를 넣어 두는 데 사용 하였으며 반닫이 위에 이불을 얹거나 가정용구를 올려 놓기도 하는데, 

장이나 농을 구비하지 못하는 서민 가정에서는 필수 가구였으며 서민 혼수의 기본 품목 였다고 합니다.

 

 

 

양반가의 자제분과 어머니의,

겨울철 바깥 나들이의 복장도 볼수 있으며,

 

 

 

하나의 공간에 가구및 소품들이 있어 양반가의 규방의 모습으로 보이며,

책을 읽는 책상이 보이지 않고, 앞에 바느질 도구가 있어 아녀자 전용임을 알수 있습니다.

 

 

 

"방성도(方星圖)"는 별의 크기와 위치를 밝힌 한역천문도(漢譯天文圖)의 일종으로,

육면체로 접어 하늘의 별을 볼수있도록 하였고 별의 밝기에 따라 여섯등급으로 나누어 두었으며,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천문도 입니다.

 

 

 

보물 제1318호로 지정 되었으며 이곳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인 "신,구법 천문도(新舊法天文圖)"로,

1720∼1730년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기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7세기 이후 서양식 신법 천문도가 함께 구성되어 있어 18세기 초 조선 지식인층의 우주관을 알 수 있으며,

한국과학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과학문화재의 하나로 평가되는 문화재 이기도 합니다.

 

 

 

오른쪽 앞의 "칠성도(七星圖)"는 무속 신앙에서는,

인간이 무병장수하고 소원을 성취하며 자손을 얻도록 도와 준다고 해서 민간에서 널리 숭배되었던 칠성신을 그린 그림이며,

왼쪽의 "수성 노인도(壽星老人圖)"는 남극성(南極星)인 노인성(老人星)을 신선처럼 인격신으로 형상화하여,

인간의 수명을 맡고 있고 장수를 상징하는 노인성(老人星) 신앙 입니다.

 

 

 

"양은"으로 된 밥상과 전기곤로가 등장으로 근대기에 왔슴을 알수 있으며,

요즘에는 볼수 없는 전기 곤로는 요즘의 전기레인지인 "인덕션"에 가까운 생활도구로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바늘로 바느질하던 시절에서,

근대기에 미싱의 도입으로 쉽고 빠르게 바느질을 대신해 주는 편리함이 더해졌고,

 

 

 

1960년대 초반의 출근부와 출근카드 등으로 현대사회와 가까워 졌슴을 보여줍니다.

 

 

 

조선시대의 생활 도구와 살아가는 모습 등이 있으며,

선비의 자세와 생활 및 계절에 따라 사용했던 용품들을 볼수 있었고,

겨울철이다 보니 겨울중심으로 꾸린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우리민족의 생활사를 볼수 있는 곳으로, 

국립민속박물관(國立民俗博物館) 제1전시관 한민족생활사 탐방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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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 1-1 | 국립민속박물관 (2030년대철거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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