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시 궐동에 소재하고 있는,

화성 궐리사(華城 闕里祠)를 찾았습니다.

 

화성 궐리사(華城 闕里祠)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명칭으로 인해 화성에서 찾을수 있을듯 하나 소재지는 오산에 있고,

사찰 이름으로 오인 할수도 있지만 서원이나 향교와 비슷한 성격으로 보시면 됩니다.

 

 

 

입구 앞에는 5기의 비석이 나란이 서있어 궐리사(闕里祠)가 있기 까지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들로,

오른쪽 부터 성균관 전교 공신택(孔信澤) 공적비, 문재 공상을(孔相乙) 공적비, 화성군수 석적 이재원 공적비,

공재헌(孔在憲) 석적도판각조성비, 화성 궐리사(華城 闕里祠) 재건 공적비 입니다.

 

 

 

화성 궐리사(華城 闕里祠)을 들어가는 입구로,

홍살문과 솟을 삼문이 차례로 서있고,

 

 

 

입구 앞에는 안내문이 있어 건물의 배치를 살펴 봅니다.

"궐리(闕里)"란 중국 산동성 곡부시에 있는 공자가 태어난 마을이며,

궐리사(闕里祠)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을 통칭하며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강릉과 충북 제천에도 있었지만,

현재는 논산의 노성과 이곳 경기도 오산(화성)에만 남아 있다고 하며,

 

 

 

솟을 삼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2010년에 세운 공서린(孔瑞麟)의 유허비와 은행나무가 있어,

공자를 상징하는 은행나무는 수령 400여년으로,

문헌공(文憲公) 공서린(孔瑞麟)이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고 후학을 가르켰다고 하며,

그 후 은행나무는 죽었다고가 공서린이 죽은지 200년이 지난 후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궐리사(闕里祠) 왼편에는 성상전(聖像殿)이 자리해 있어,

성상전(聖像殿)은 공자님의 성스러운 상(像)을 모시고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공자의 성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앞에는 왼쪽에 공자님의 생애를 요약적으로 새겨 놓은 약전문(略傳文)과 오른쪽에 성상봉수기비(聖像奉竪記碑)가 있고,

좌우로 안.증.사.맹(顔.曾.思.孟) 4성(四聖)의 석상들이 시립(侍立)하고 있으며,

 

 

 

성상전(聖像殿)의 주존(主尊)인 공부자(孔夫子) 성상(聖像)은,

1993년 7월 6일 경제문화사절단으로 내한한 중국 취푸시(曲阜市) 인민정부 허전준(許傳俊)시장이 헌증한 것으로,

같은해 10월 9일 기공식과 동시 봉수공사에 착수 2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 되었다고 합니다.

 

 

 

궐리사(闕里祠)의 내삼문인 솟을 삼문으로,

 

 

 

삼문의 들어가는 문턱이 높아 문턱 양쪽으로 디딤돌을 두었는데,

솟을 삼문을 들어 가려면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집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삼문에는 "성묘(聖廟)"의 현판이 있고,

 

 

 

노거수 향나무를 곁에 둔 성묘(聖廟)는 공부자(孔夫子)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제례의 행사가 있는지 성묘(聖廟) 앞에는 대형 천막이 세워져 있으며,

 

 

 

사당에도 성묘(聖廟)의 현판이 있고,

 

 

 

사당의 내부에는 공자의 영정과 위패, 그리고 공자의 일생을 화폭에 담은 성적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가 있다고 하는데,

안으로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문 한쪽에 작은 유리를 내어두어 들여다 볼수 있게만 해두었습니다.

 

 

 

이곳 궐리사(闕里祠)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이자 공자의 64대 손인 공서린(孔瑞麟)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이후 정조 16년 (1792년) 칙령으로 창건된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되었으며,

조선 정조가 재위 16년(1792)에 공서린(孔瑞麟)의 서재 자리에 화성 궐리사(華城 闕里祠)를 창건하고 친필을 사액한 곳으로,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으로 없어졌다가 1900년에 다시 세우고 1981년에 강당을 세웠습니다.

 

 

 

1981년에 세운 강당인 행단(杏壇)으로,

행단(杏壇)은 공자님이 제자들을 가리켰다는 중국의 것을 따온 건물이나 조선의 양식이 많이 적용된듯 하며,

1층의 4 벽면에는 공자님의 어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후기 정조임금이 왕권강화책으로 신도시 건설을 화성에 추진하면서 수원(화성)의 고적을 탐사하던 중,

이곳이 중종 대에 경기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한 공서린(孔瑞麟)이 기묘사화 후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던 서원의 터임을 확인하고,

수원부사에게 명하여 사당을 건립하고 공자의 유상을 보내 봉안하도록 하였으며,

중국 곡부(산둥성)의 공자의 고향인 "궐리"를 일컫는 말인 "궐리사(闕里祠)"라는 이름을 하사 하였는데,

일반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궐리사는 정조의 명에 따라 세워진 왕립(국립)학교인 셈 입니다.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공서린(孔瑞麟,1483~1541)은,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는 휴암(休巖)이며 공자의 64대 손으로,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1507년에 생원이 되고 그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간을 역임하고 좌승지로 부임할 당시 기묘사화에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파 인물과 연루되어 15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석방 후 1524년 남곤(南袞)의 주청으로 공조참의가 되었고 그뒤 경기,황해도 양도 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하고

청백리(淸白吏)로 녹선 되는 등 성품이 곧고 기개가 높으며 문장이 뛰어 났으며 사림파의 무죄를 주장 하였던 인물로 시호는 문헌(文獻) 입니다.

 

 

 

공자의 후손인 공서린(孔瑞麟)의 유허를 찾을수 있고,

그런 연유로 공자(孔子)를 모신 사당으로 남게 된 곳으로,

충남 논산의 노성궐리사(魯城闕里祠)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단 두곳만이 남아있는 곳으로,

경기도 오산의 유적 "화성 궐리사(華城 闕里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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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오산시 궐동 147 | 궐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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