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 에서의 문화재 탐방에서,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673번길 12-1에 위치하고 있는,

산청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斷俗寺址 東,西 三層石塔)을 찾았습니다.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동쪽 단속사의 금당지 앞에 있는 2기의 3층석탑은,

높이 각각 530㎝의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동 3층석탑은 보물 제72호, 산청 단속사지 서 3층석탑은 보물 제7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절터에 남아 있는 탑 두 기 중 서쪽에 세운 탑으로,

보물 제73호로 지정된 단속사지 서 삼층 석탑(斷俗寺址 西 三層石塔)이며,

 

 

 

 

서탑은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동탑에 비하여 많이 부서지고 안에 봉안된 사리함이 도난당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는데,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아랫단은 가운데에 2개씩을 두고 윗단은 1개씩 두었습니다.

 

 

 

 

탑신의 지붕돌은 처마를 직선으로 처리하였으며,

밋밋한 경사가 흐르는 윗면은 네 귀퉁이에서 하늘을 향해 살짝 들어 올렸는데,

지붕돌을 경쾌하게 처리한 점이나,

탑의 윗부분으로 갈수록 크기가 알맞게 줄어드는 수법에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계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아랫기단의 너비가 넓어지고 4면에 새긴 가운데기둥의 수가 아랫기단은 2개, 윗기단은 1개로 줄어든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수법을 잘 보여주는 작품 입니다.

 

 

 

 

서탑은 동탑에 비해 노반·복발만 남아 있으며,

단속사지에는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유명한 화가 솔거(率居)가 그린 유마상(維摩像)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단속사지(斷俗寺址)는 748년(경덕왕 7) 대내마 이순(李純)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763년 신충(信忠)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단속사(斷俗寺)는 경덕왕 때 직장(直長) 이순이 일찍부터 발원하기를,

나이 50세가 되면 출가하여 절을 짓겠다고 하였는데,

748년 마침 그의 나이가 50세가 되었으므로 조연(槽淵)의 작은 절을 중창하여 단속사라 하고,

스스로 삭발하여 법명을 공굉장로(孔宏長老)라 하였다 합니다.

 

 

 

 

보물 제72호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斷俗寺址 東 三層石塔)으로,

동쪽에 세워진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모습인데,

 

 

 

 

동탑은 기단의 아래층은 "ㄴ"자 모양의 돌을 이용해 바닥돌과 동시에 만들어 졌으며,

그 위로 기단을 한층 더 올린 후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쌓은 탑신을 올려 놓았는데,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이 붙은 4매의 석재로 이루어졌으며 각 면마다 우주와 2개의 탱주를 모각 했으며,

갑석의 윗면은 약간의 물매를 잡고 중앙에 2단 굄을 각출해 상층기단을 받치도록 하였고,

상층기단의 각 면에는 2우주와 1개의 탱주를 모각하고, 그위에는 밑에 부연이 있는 갑석을 놓았습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는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옥신에는 우주만 새겨져 있고,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5단이고 합각 부분에 약간의 반전이 있으며,

 

 

 

 

동탑의 상륜부는 노반·복발·앙화까지 남아 있습니다.

 

 

 

 

9세기 후반 쌍탑의 배치와 더불어 통일신라 후기의 조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신라중기 이후의 전형적인 신라양식을 갖추고 있는 석탑으로,

경상남도 산청에서 만난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斷俗寺址 東,西 三層石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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