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에 있는,

고려시대 승려 대각국사 의천의 탑비를 찾았습니다.

 

보물 제251호로 지정된 "칠곡 선봉사 대각국사비(漆谷 僊鳳寺 大覺國師碑)"는,

좁은 산길을 따라 승용차로는 겨우 오를수 있는곳에 작은 암자 규모의 "선봉사"를 찾으면 되는데,

선봉사(僊鳳寺)는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 선봉사는 과거 대찰 이었으며 선승들의 이름난 수행처 였다고 합니다.

 

 

 

 

비석의 크기는 귀부(龜趺) 길이 1.97m, 너비 1.82m, 이수(螭首) 높이 56㎝의 규모로,

고려 인종 10년(1132)에 세웠으며,

 

 

 

 

비문은 37행에 행마다 71자를 해서로 썼으며,

제액(題額)은 "천태시조대각국사비명(天台始祖大覺國師碑銘)"이며,

자경(字徑) 8.4㎝의 전서(篆書)이며,

비문은 임존(林存)이 짓고, 승(僧)려 인(麟)이 쓰고 전액도 하였으며,

 

 

 

 

비문에는 국사가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예대후(仁睿大后), 휘는 석구(釋煦), 자는 의천(義天)이라는 것과,

송나라 유학에서의 구법활동과 천태교(天台敎)를 확립하는 과정 및 교화,

그 밖에 국사가 남긴 유교명(遺敎銘) 등이 실려 있습니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은,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해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준 고려의 승려로,

속성은 왕씨(王氏) 이름은 후(煦) 호는 우세(祐世)이며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인주이씨(仁州李氏) 가문 출신의 인예태후(仁睿太后)이며,

불교전적을 수집하고 화엄학과 천태학의 교리상 차이점을 알아보고자 송나라에 유학할 것을 결심하여,

송에 머물면서 당시 활동하고 있던 거의 모든 종파의 고승들을 만나 불교에 대해 토론 했으며,

이후 사신과 함께 귀국해 국왕과 태후의 환영을 받고 흥왕사의 주지가 돼 신편제종교창총록 3권을 간행 하였고,

1101년에 국사로 책봉 되었으며, 책봉된 지 이틀 만에 입적 하였습니다.

 

 

 

 

비석은 긴 장방형 대석 위에 비신(碑身)을 세웠고,

 

 

 

 

4주연(周緣)에 당초문대(唐草文帶)를 얕게 새긴 개석(蓋石)을 얹었으며,

 

 

 

 

비문 상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이 비는 남숭산(南嵩山)에 세웠다고 하였는데,

그 뒤의 문인인 지천(智遷)의 간자(刊字)를 인용하면,

이 비는 조선의 경상도 인동부(仁同府) 금오산(金烏山)에 송나라의 소흥원년(紹興元年) 8월에 세워졌으며,

그 이전에 오관산(五冠山: 개성 靈通寺址)에도 국사의 비가 세워졌는데(1125),

전자는 증시(贈諡: 임금이 신하에게 시호를 내려주던 일)를 위하여 세운 것이고,

이 비는 오로지 대각국사가 천태교를 수립한 시조임을 밝히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는 설명이 있으며,

글씨는 가로획이 가늘고 세로획이 두드러지게 굵어 당의 서호(徐浩)나 안진경(顔眞卿)의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각 내부의 윗부분에는,

이곳의 보호비각을 세우면서 올린듯한 기문(記文) 편액을 볼수 있으며,

 

 

 

 

대각국사비(大覺國師碑)의 관리는,

옆에 작은 규모 이지만 선봉사가 남아 있어 관리를 하고 있는듯 합니다.

 

 

 

 

천태교를 수립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의 공적을 기리는 석비로,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중국 송나라와 일본의 서적을 교정·간행하여 "속장경"을 완성한 승려로,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여 고려 불교의 융합을 실현하였던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생을 돌아볼수 있는곳으로,

경상북도 칠곡의 문화재, "선봉사 대각국사비(僊鳳寺 大覺國師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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