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거창군 농산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조 불상인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居昌 農山里 石造如來立像"입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農山里 石造如來立像)은,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23-1번지를 찾으면,

강천리와 농산리를 이어주는 말목고개길의 주차장이 나타나고,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있고,

 

 

 

주차장 한쪽에는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있어 약200m정도 들어가면 되는데,

 

 

 

산아래 나있는 밭옆으로 오솔길을 걸어가면,

 

 

 

 

송림의 숲길이 나오기도 하며,

 

 

 

 

마침내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에 이르게 되어,

 

 

 

 

석조 불상 주변으로는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있고,

 

 

 

 

입구에는 특이하게 생긴 바위가 있어,

 

 

 

 

들여다 보니 바위 아래에는 치성을 드리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1436호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居昌 農山里 石造如來立像)"은,

높이 2.62m의 원각상(圓刻像)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의 입불상으로,

같은 돌로 조성된 주형광배와 불신(佛身)은 윗면에 두 발을 새겨 놓은 대좌에 끼워 두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는데,

광배는 상부가 파손 되었으며 대좌는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조성 되었고,

 

 

 

 

두 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곧게 펴 내린 특이한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향하는,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맺고 있는 수인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체에 비하여 목이 굵고 머리가 크게 조성되어 있는데,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큼직하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 되었고,

양 볼이 부풀어 올라 풍만한 얼굴은 부분적으로 마멸되었으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서려 있으며,

양 어깨와 가슴은 장대하며 법의는 얇아 신체의 굴곡이 잘 드러나 있는데,

 

 

 

 

상체에서 여러 겹의 U자형의 주름을 이루다가 허리 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져,

다리 부분까지 대칭적인 옷주름을 이루는 우전왕(優塡王, Udyana王) 형식의 통견을 입고 있는데,

중앙의 밑단의 옷자락은 V자형으로 늘어지고 양 팔목에 걸쳐 내린 옷자락은 몸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어,

 

 

 

 

이러한 우전왕 형식의 유래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후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어머니에게 설법을 하였는데,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님이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불상을 최초로 조성하였다고 하며,

이 최초의 불상을 우전왕식이라고 합니다.

 

 

 

 

대좌는 자연암반을 이용 하였는데,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윗면을 둥글게 다듬어 양발을 양각 하였고,

 

 

 

 

왼쪽 윗부분이 떨어져나간 주형(舟形)의 광배는,

조각이 선명하지 않으나 가장자리를 따라 불꽃무늬가 돌려져 있습니다.

 

 

 

 

광배와 손 등의 부분적인 파손은 있으나 비교적 규모가 크고 환조에 가깝게 조성되어 있으며,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상으로 주목 되는데,

또한 법의가 신체에 붙어 드러난 볼륨 있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양 다리의 표현은 전신에 양감이 뚜렷하고,

당당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와 형식화되지 않은 법의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실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비록 부분적인 파손이 있으나,

이 불상은 야산의 구릉에서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귀중한 불상으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정제된 조각수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거창 북상면의 모리산 아래에 자리한 석조 불상으로,

광배와 받침대를 모두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석불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경남 거창의 문화재인 "농산리 석조여래입상(農山里 石造如來立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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