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에 위치한,

고대 남북국시대인 통일신라의 삼층석탑인 "술정리 동 삼층석탑(述亭里 東 三層石塔)"입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東 三層石塔)"은,

국보 제34호로 지정 되었으며,

 

 

 

 

창녕읍 도심에서 찾을수 있는 삼층석탑으로,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모습이며,

석탑이 위치한 곳은 오랜 시간 도심화가 진행되어 다른 유구는 찾아 볼 수 없는데,

기단부의 결구수법이나 탑신부의 구성은,

경주 왕경에 건립된 석탑과 비교될 정도의 안정감과 정교한 조각 수법을 지니고 있어,

왕경내 장인이 직접 파견되어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탑이 세워져 있는 창녕군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곳이며,

진흥왕 때부터 신라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던 지역으로,

 

 

 

 

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탑신을 지닌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이며,

현재 탑 지대석 외곽으로 1열로 구획한 석렬이 남아 있는데,

 

 

 

 

한쪽 모서리에 탑구로 보이는 석재가 남아 있는데,

따라서 원래 외곽에 판석으로 탑구를 형성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述亭里 東 三層石塔)의 안내문은 별도로 있지만,

석탑 앞에는 별도로 석탑에 대한 내용이 담긴 비석을 세워 두었고,

 

 

 

 

탑의 기단부는 상하층 2중으로 되어 있는데,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한 돌로 하여 5매의 판석으로 결구 하였고,

하대갑석도 5매로 구성되었는데 갑석 상면은 끝 부분 쪽으로 약한 경사가 있으며,

갑석 중앙에는 호각형(弧角形)의 2단 괴임으로 상대면석을 받치고 있고,

상층기단 면석은 1면 1매의 판석으로 엇물림하여 결구 되었으며,

상대갑석은 4매로 하단에는 1단의 부연을 두고 상면 중앙에는 2단의 각형 괴임을 두어 초층탑신을 받치고 있으며,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구성 되었는데,

탑신부는 모두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고 표면의 문비 등의 장식은 생략 되었고,

옥개석은 3층이 모두 처마 아래로 5단의 층급받침을 가지고 있으며,

상면에 2단의 각형 괴임을 두어 위층 탑신을 받치고 있고,

옥개석의 낙수면은 모서리에서 경쾌한 반전을 보이고 있으며,

각 옥개석 모서리에는 양쪽 전각부에 1개씩의 풍경공이 뚫려 있습니다.

 

 

 

 

탑의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었고,

3층 옥개석 윗면 중앙에는 지름 13.5㎝, 깊이 13.5㎝의 찰주공이 있으며,

 

 

 

 

석탑을 구성하는 부재는 기단부에 18매, 탑신부 6매로,

상하층 기단 탱주숫자 2:2의 석탑과 거의 유사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8세기 경주지역 석탑들이 하층기단 면석을 구성할 때 "ㄱ"자형 귀틀석을 쓰는 것과는 달리,

판석만으로 결구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기단부 외곽에 나타나는 탑구의 흔적이라든가 탑의 외관상 보이는 비례는,

전성기 신라석탑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으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東 三層石塔)의 위치한 사찰에 대하여 확실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인근 창녕읍 교동에 위치한 창녕 인양사 조성비(또는 탑금당치성문기비, 보물 제227호)에 기록된,

인양사(仁陽寺) 혹은 대곡사(大谷寺)로 추정되는 곳이며,

한편 석탑은 1965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전면 해체수리를 진행하였는데,

3층 탑신석 상면 방형사리공에서 동제잔형사리기와 황색유리사리병, 향편 및 소형 구슬 등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제작된 우수한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이 알맞은 점과 정제된 석재의 가공 등은 불국사의 3층석탑에 비견될 만한 석탑인,

경남 창녕의 문화재인 "술정리 동 삼층석탑(述亭里 東 三層石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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